나의 끝은 너였고, 나의 시작점은 그였다. (마지막회)

Episode 28. 절망 없는 사랑이 어디에 있나.

by Jin

그 일 이후, 그와 나는 다시 평소로 돌아갔다. 한번 쯤은 겪었어야 했을 일을 치뤄낸 우리는 오랜만에 찾아온 이 여유로움을 즐겼다.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누는 익숙한 일상이었지만, 전보다 조금 더 깊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격렬한 감정의 계절을 지난 우리처럼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이글거리던 한여름의 햇빛은 누그러졌고, 바람은 그제서야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노곤노곤해지는 공기에 사람들은 나른해졌고, 하늘은 한 없이 높고 청량해 졌다. 계절은 그렇게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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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요즘, 괜찮다 했지.

강이서 인생에 평탄한 삶이란,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찰나와 같았고, 일은 터졌다. 아버지 쪽 집안에 분란이 생긴 것이다. 할머니의 노후자금을 아버지의 형제, 그러니까 입에 담고 싶지 않은 단어지만. 작은 아버지와 그 가족이 가로챘다.


그들은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노후자금을 잃어버렸다며 우리집으로 찾오셨고 고모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그 돈을 되찾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그 집에 갈 사람은 나와 어린 동생 뿐이었다. 할머니와 동생, 나는 그들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 해는 기울고, 시간은 흐른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때 쯤.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보지 못했는지, 우리를 향해 걸어왔고 맞닥트렸다.


"내 돈 줘라, 이놈아."


할머니의 목소리에 그들은 흠칫했다. 도망치려는 기색이 보이자 나는 그들의 가방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온기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해를 가하진 않겠지라는 마음도 있었다.


"할머니 돈 주고 가시면 되잖아요."


그들은 가방들 놓치 않는 나에게 침을 뱉었다. 이까짓 침.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가을이라 머플러를 두른 게 잘못이었나. 할머니의 아들은 내 머플러를 양쪽으로 쥐고, 목을 졸랐다. 나를 정말로 죽일 생각은 아니였겠지만 목을 졸리는 동안 '살인미수로 신고할까' 라는 사고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눈으로 아파트 씨씨티브이 위치를 찾는다.


하지만 내 동생은 '하지 마세요.' 하며 울기만 했다. '야, 이 멍청아, 동영상 찍고 112에 신고해야지.' 속으로 외쳤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놀라서 내 손을 그들의 가방에서 떼어냈다. 그제야 그들은 내 목을 조르다 말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신고를 위해 파출소에 갔더니, 응급실에서 진단서를 떼야 다시 부를 수 있다고 했고, 그 과정에서 할머니가 많이 놀래셔 집에 모셔다 드리고 진단서를 떼는 중간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나 응급실이야."


전 후 사정을 들은 그가 달려왔다. 나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베시시 웃으며 손을 들고 그의 눈 앞에 손가락 사이를 살짝 벌리며 말했다.


"응, 괜찮아. 침 좀 맞고, 목 조금 졸린 정도?"

"너 정말. 진짜 겁도 없다."


당혹스러운 그의 얼굴. 아마.. 그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할머니와 그가 마주칠 일은 없었을 수도..? 아니, 정말 그랬을까? 어쩌면, 어떻게든 만났을 인연이 었을 수도 있다. 나를 집으로 데리고 온 그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마치 운명처럼 단번에 마음에 들어하셨고, 그날 이후 어머니와 통화할 때마다 나와 그가 계속 만나고 있는지 물으셨다.


"가랑 잘 만나고 있제."
"네, 어머니."
"그래, 그럼 댔다. 이서 저거 성격 받아줄 사람은 저놈 뿐이다."


나는 친척들 사이에서도 성격이 까다롭고,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이런 날 보고 다들 어쩌냐며 수군거렸다. 그 걱정들은 아마 할머니의 마음속에도 있었던 것 같았다. 굽힐 줄 모르는 내 성향이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일들을 만나 일어날 줄 아셨을 테니까. 할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월급으로 속옷도 사드리며 저 사회생활 잘 하고 있어요를 어필했지만 할머니는 그가 자신의 손녀사위가 되었다라는 말을 가장 기뻐하셨다. 그는 할머니께 뭘 사드린게 없는데요..? 라며 나는 조금 억울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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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와 나는 결혼을 약속했다. 봄 처럼 부드러운 낭만이나 한 여름의 뜨거운 감정에 휩쓸린 것도 아니요. 마음이 낙낙해지는 가을의 정취에 이끌린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시리고 하얗게 얼어붙는 계절. 코끝과 손끝이 아려올 만큼 추웠던 그 겨울에. 말갛고 냉정한 마음으로. 결혼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있던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건,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적인 것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서야.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너한테 120%, 200% 이렇게는 못 해줘."
"언제는 해준 적 있고? 난 애초에 그렇게 무리한 마음. 원하지도 않아."


나를 바라보며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심한 일상의 틈에서 커피 한잔과 시작된 진심. 그는 '이런 이야기 여기선 좀 그런가?' 라는 늬앙스로 나에게 말 했다.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무엇인가 하던 중에 나눈 말이라 해도 나에게 건낸 의미와 진심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말이 가진 무게와 그 무게를 감당 할 수 있는 진심이었다.


"그런건 상관없어. 그럼 얼마만큼 나한테 마음을 쓸 수 있는데?"


나는 호록 소리를 내며, 따뜻한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그와 내가 '부부' 라는 역할을 가진다고 해서, 지나치게 친밀한 관계가 되는 걸 원치 않았다. 손 뻗으면 닿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 안에서 서로를 하나의 '다른 사람'으로 바라보는 정도가 좋았다. 그래야 서로 이해할 수 있다. 서로가 완전히 뒤섞여버리기보다는, 경계를 존중하고 이해로서 마주보는 사이였으면 했다. 그가 내가 되고, 내가 그가 되는 식으로 서로를 얽어매는 관계는 싫었다. 서로의 위안은 되어주되, 서로의 족쇄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와 온기를 나누고 싶었지, 너무 뜨거워서 타버리거나, 너무 차가워서 얼어붙는 그런 사이는 싫었다. 닿았을 때 편안하고, 함께 있어도 숨이 막히지 않는 그런 사이였으면 했다.


"70~80% 정도. 대신 평생."


70~80%, 평생이라.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초초해 보이는 건 착각이겠지. 이도윤이 초초라니,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 생각났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저 다루는 법을 익히며,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기준을 세울 때 비로소 불안은 희미해진다고. 그리고 사랑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지만, 그 사랑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며 결국 더 큰 불안에 빠진다.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그에게 웃어 보였다.


"좋아. 70~80%. 콜"


나는 사람마다 평생 쓸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가 있다고 믿었다. 영원히 100일 수도, 영원히 0일 수도 없는. 물론 쓰면 찬다. 하지만 100%를 빠르게 모두 써버리면, 다시 차는 속도는 더디다. 사람들은 흔히, 100%를 쓰면 금세 100%가 다시 생긴다고 착각한다. 그건 재고분이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통, 두 통 알뜰하게 모아둔 마음이 있었던. 하지만 재고분이 없다면, 한 번 다 써버린 마음을 다시 채우는 일은 몹시 버겁다. 속도 차이는 있겠지만,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120%, 200%의 마음은 빚이다. 굳이 연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친구 관계에서도,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그 마음은 사채와 같아서 갚아야 할 마음은 가득한데, 아무리 채워도, 메워지지 않는다. 차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날은 겨우 10%만 줄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날은 30%, 또 어떤 날은 모아둔 50%를 기꺼이 내줄 수 있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처음 부터 120%, 200%를 받았기에 10%, 30%, 50%를 준들 '마음이 식었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또한, 처음부터 자신이 가진 것 보다 많은 % 주는 사람은 상대에게도 그렇게 받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하지만 각자가 가진 % 자체가 다르다. 나의 100%가 그의 100% 와 같을 수 없다. 거기서 오는 마음이 어긋나면, 서로를 이상한 굴레에 가두고, 서로를 놓게 만든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아무도 이득이 없는 감정 낭비임을.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없는 경우엔 더 그렇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와 나는 마음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고, 그와 내가 서로에게 70~80% 정도만 쓴다고 가정했을 때, 차는 속도를 생각하면 그와 나는 50% 정도의 애정을 꾸준히 주고받으며 살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가 나에게 120%, 200%는 해줄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오히려 안심하고 그와 인생을 함께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마음을 쓰는 일이 이성적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내 마음 속에서는 그렇게 정해 둬야 했다. 나의 불안이 나를 집어 삼키지 않도록. 나의 결정은 겨울처럼 차가웠고,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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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봄을 기점으로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살랑이는 바람과 햇살,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귀찮은 마음. 춘곤증인가봐. 하며 모른 척 잠들고 싶은 그 마음. 에너지 보존 질량의 법칙은 이런 데서도 발휘되는 건가 싶었던. 커피 믹스 봉지를 뜨거운 물에 넣어 저어 먹어도 안 죽어요.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내 성격 그대로 결혼 준비를 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내가 바란 건 하나였다.


'스튜디오 사진은 많이 찍고 싶어.'


나는 사진에 진심인 사람이었고, 남이 찍어주는 내 모습이 도대체 어떤지 너무 궁금했다. 항상 내가 찍었기에 그래서 발품을 팔아 정성껏 스튜디오를 골랐다. 그 외의 것들은 비교적 심플하게, 간단하게.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 물질이든, 감정이든 최선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에, 남들이 뭐라 하든 그와 함께 결혼식을 준비했다.


결혼식장은 그의 집과 가깝고 나의 친척들이 내려올 수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앞, 작은 예식홀로 정했다. 생각해보면 신부대기실은 정말 작았다. 소파 하나에 흔한 꽃도 없이 친구들 네댓만 들어와도 금세 온기가 가득했다. 버진로드? 걸을 수 있으면 됐다. 신혼여행도 거창하지 않았다. 비행 시간은 무조건 4시간 이내. 멀리갈 수록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했으면 나는 그랬을거다. 신혼여행이란 기분만 낼 수 있음 되었다.


결혼식이 딱 한 달쯤 남았을 무렵 그가 말했다.

'할머니 한 번 뵙고 오자.' 나는 그때, '신혼여행 다녀와서 보면 되지 않아?' 했지만 그는 웃으며 말했다. '보고 돌아와서 또 보면 되지.' 라고 해서 그와 나는 함께 할머니를 뵈러 갔고, 우리가 다녀간 후 이삼일 지났을 때 할머니는 중환자실에 들어가셨다. 친척들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할머니의 연세가 있었으니까.


의사는, 할머니의 임종이 우리 결혼 예정일쯤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겹쳐 돌아가시면 여러모로 곤란할 거라는 친척들의 걱정 섞인 말들도 이어졌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와 나의 결혼식을 딱 보름 앞두고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언제나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다는 느낌을 또 받았다. 기쁜 일 앞에 놓인 이별. 할머니를 떠나보냈다. 그는 몇 번이고 '내려갈까?' 물었다. 하지만 나는, '괜찮아'라고만 했다. 그가 고속도로를 타고 먼 지방까지 오는것이 싫었다. '오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해.' 라고 그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 했다.


난 늘 내 죽음의 뒷수습만 생각하고 살았었다. 그를 만나고 나는 누군가의 죽음이 무서워졌다. 나에게도 잃을 것이 생겼구나. 마음을 내어 준다는 건, 이런거구나. 대상이 바뀌니 내가 알던 그 단어보다 훨신 두려워 졌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나는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죽음이란 남은자들의 것이었다.


장례식장에 모인 친척들에게 인사를 나누다 보니, 내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슬픔을 나누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는 내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고 있다는 것이. 그 순간 할머니가 나를 위해 일부러 사람들을 불러 모아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할머니의 입관식과 장지에는 참석하고 싶었지만, 결혼을 앞두고 이 자리 지킨 것만 해도 많이 했다며, 친척들의 만류로 참석하지 못했다.


내 눈앞에서 멀어지는 운구차를 바라보며,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이서 저거 성격 받아줄 사람은 저놈 뿐이다.' 그 말을 남기고 떠난 할머니. 그땐 몰랐다. 그 말을 듣고 내 성격이 어때서요. 라고 볼멘소릴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정말이지, 오직 나만을 생각한 마음이었다. 이런 나를 만나 고생할 '그'는 생각하지 않은 자신의 '손녀'의 평안한 삶을 생각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 온전히 사랑을 받는 다는 건 이런거구나. 할머니는 조건 없는 내 편이었음을.


하지만 이젠 손녀사위가 손녀 속을 썩이면 혼내줄 수 없겠지? 라며 코끝이 찡해졌다. 장을 치르는 동안 울지 않았던 나는 점이 되어바린 운구차를 보다 밀려있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오로지 내 편인 사람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 생각한 그 마음을 나에게 남겨둔채로. 다신 볼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돌무더기 속에서 나팔꽃 한 송이가 조용히 싹을 틔웠다. 언제 부터 였을까. 잡초 하나 자라지 않을 것만 같은 거칠고 메마른 틈을 비집고 피어올라 기어이 꽃을 피워냈다. 그건 어쩌면, 할머니가 아꼈던 손녀인 내게만 따로 남긴 유산은 아니었을까. 거창한 무언가는 아니었지만, 살면서 가장 필요한 마음을.



Photo by Jin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결혼식 날이 되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식을 준비했다. 메이크업을 받는 자리에 앉아 나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히 굴었다. 이런 저런 요구를 하기엔 그 찰나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와 나.

이도윤과 강이서.


호감과 관심, 그 사이에서 시작된 관계가 여기까지 왔다. 나는 그를 마음 깊이 애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마음을 사랑이란 한 단어로는 표현이 어려웠다. 그는 나의 숲이자 바다였다. 나는 그의 숲에 사는 굶주린 포식자와 같은 짐승이었다가, 존재도 알 수 없는 작은 벌레 였다가, 때론 부드러운 바람이었다가, 예고 없이 그의 바다에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내는 변덕스러운 날씨.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었다.


그와 나는 서로가 이 관계의 주도권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와 내가 가진 주도권이란, 상대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였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관계도, 누군가가 따라가야만 하는 관계도 아니였다. 한번은 내가. 다른 한번은 그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서로를 붙잡아 줄 것이라는 괜찮은 믿음을 일컫는 말이었다. 비록 그 방법이 다소 거칠 순 있겠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언제든 그로부터 도망칠 준비도 되어있었다. 나의 모든 것을 관계에 쏟아붓지 않았다. 언제라도 그가 나에게 등을 돌려도 괜찮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그를 잃지 않겠다고 발버둥 친다면 아마도 그 불안은 나를 더 괴롭힐 것을 알기에. 이 관계가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굳이 나쁜 것일까? 언제라도 그만 둘 수 있다는 생각은 생각보다. 사람을 오래 버틸 수 있게 했다.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건강하게 관계를 유지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와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결혼이 예전처럼 두렵지만은 않았다. 결혼을 하더라도, 나는 나로써 존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사는 식물 같은, 그가 알아봐주길 바라는 꽃이 아닌. 팔랑거리며 정원을 떠다니는 나비처럼 나는 그의 정원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그의 시선을 빼앗고 싶었다. 누구보다 계절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나비이고 싶었다. 아무런 수식어 없는 나비처럼.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가 아닌 그냥 강이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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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할 시간이에요.' 라는 신부 도우미 분의 목소리에 넋이 나가있던 내 영혼이 다시 나에게로 팔랑거리며 돌아왔다. '힘들죠?' 하고 내가 넋이 나가 있는 것 처럼 보였는지. 웃으며 말을 건냈다. '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하고 내가 웃으니 '목은 말라도 물은 나중에 먹어요 우리' 라며 도우미 분은 친절히 웃으며 드레스를 정리해주셨다.


가벼운 드레스를 선택한다고 했는데도 묵직한 느낌의 드레스는 내가 앞으로 겪어 나갈 삶의 무게같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드레스 앞 부분을 잡게 하고는 도우미분께서 뒤를 잡아 주셨다. '짧은 베일이라 다행이에요' 라며 내가 웃자. '왜 긴거 안하셨어요?' 라고 되묻는 도우미분께 나는 작게 속삭였다. '치렁거리는게 싫어서요. 그리고 이쪽이 좀 더 귀엽잖아요?' 내 말에 웃으시더니 ' 그러게요. 귀엽고 이쁘세요' 라는 말을 건내주셨다. 아마도 도우미분은 감사하게도 나에게 긴장을 풀기 위해 그렇게 말씀해주신 듯 했다.


"신부님, 신랑님 손 잡으세요."


도우미분의 말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드니 버진로드 위에 그가 서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없으니 삼촌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라 했지만, 내가 왜? 나는 누구의 손에서 누구의 손으로 옮겨지는 그런 사람이 아닌걸. 이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같이 걸어들어가지 않을래?'라고 물었다. 내가 선택한 그와 함께 결혼이란 시작점을 함께 걷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나의 결핍의 끝엔 언제나 네가 있었는데, 나의 시작점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와 내가 해볼 모든 처음들이 기대가 되었다.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려놓으니 그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들리지 않게 그에게 말했다. '큽.. 떨어?!' 그는 입을 작게 오물거리더니 '아니' 라고 대답했다. 아니긴 뭘 아니야. 오한 수준이구만. 키득키득. 아, 귀엽다. 이도윤, 정말 귀여워. 내가 이 맛에 결혼하지. 라고 생각하며 그를 향해 슬그머니 웃으며 '떨지마' 하고 말하곤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여러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버진로드를 걸으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우리는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는 아니었다. 적당히 마음을 나누고, 자연스레 서로의 삶에 스며든 관계였다. 하지만 이런 사랑도 사랑이지 않을까? 열렬한 같은 사랑은 기회가 되면 살면서 그와 천천히 해도 되니까. 지금은 서로 위안이 되는 관계면 되었다.


이 버진로드를 함께 걷듯, 생의 남은 시간 동안.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그와 나란히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 연애할 때처럼 다신 안 볼 듯 치열하게 싸우고, 또 둘도 없는 사이처럼 친한 날들이 반복되는, 냉탕과 열탕을 오가겠지만. 그와 함께라면 나는 괜찮았다. 오늘 만큼은 그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이서가 이도윤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저의 결혼 스튜디오 사진 중에서 AI로 이미지 변환한 사진입니다.



절망 없는 사랑이

어디에 있을까.


그 절망이 있었기에,

비로소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네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고,
모든 게 끝난 것 같았지만,

결국 모든 건 희미해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너 없이도 시간은 흘렀고,

계절은 쉼 없이 반복되었다.


너라는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서,

나는 이제,

나만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안녕하세요, Jin입니다.

「절망 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마지막 회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발행을 누르기 까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언제 올려도 부족한 것을 알기에. 오늘은 아침에 올립니다. 처음 도전한 연재라 부족한 점도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공감하며 읽어주신 분들 덕분에 큰 위로와 기쁨을 얻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 10년에 걸친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긴 시간이라 글 속에 모두 담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비록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었지만, '강이서'라는 인물에게만 무게가 실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에필로그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같이 달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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