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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Oct 18. 2024

왜 4년이나 헤맸을까

나라고 1년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18 

no gain, no pain. 최근 언니가 알려준 말이다. 얻는 것이 없다면 고통도 없다. 달려가는 것, 손에 익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던 내게 당황스럽게 다가온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게 꼭 틀린 모습인가? 모르겠다. 삶에 여러 가지 정답이 있고 하나를 골라잡으면 된다면, 나는 아직 어떤걸 골라 잡아야 내가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 4년간의 취업 여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내가 나를 잘 몰라서 생겼던 것 같다. 쉬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가도 열심히 일하고 싶기도 하다. 일단 나에게는 언제나와 같은 마음, 꾸준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

 

꾸준함은 왜 부족했던 걸까? 아마 불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을 하다가도, 집에서 잠을 자다가도 퇴근을 하다가도 출근을 하다가도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불안 때문에 나는 종종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회사가 망할까봐. 아이들이 다 그만둘까봐. 내 미래에 형편없이 끝날까봐. 내가 그럴싸한 경력을 가지지 못하게 될까봐 나는 시도때도 없이 불안했다. 불안은 하던 일도 끝마치지 못하게 하고, 자꾸 곡소리를 내게 한다. 듣는 사람 듣기 싫게.


그래서 오늘은 내 불안에 대해서 낱낱이 적어 보고,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려보고자 한다. 일단, 나는 이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서른 살 신입이 될까봐 두렵다. 학원 일을 평생 직장으로 가지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학원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적당한 지도를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나. 학원에서 책을 내고 싶었는데 일정상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원장님이 바라는 나의 모습은 학부모를 잘 컨트롤하는 사람이다. 나와는 같은 미래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끔은 슬프게 느껴진다. 


이 일에 끝이 정말 거기에 있다면, 세상을 바꾸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딱 거기에서 멈춘다면 언젠가의 내가 만족할지 모르겠다. 거기에서 모든 불안이 오는 것 같다. 나는 세상과 연결되길 바꾸고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길 바라는데 실제로 내 일상은 사소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다른 회사를 취직하면 바뀔까? 내 생각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문제는 다시 나로 수렴한다. 내 불안, 이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 된 채로 남아버릴까 두려운 내 마음이 나를 이곳에 가만있지 못하게 만든다. 다른 꿈을 꾸게 하고 가만히 있는 나를 매도한다. 마치 이러면 안될 것처럼, 다른 삶을 꿈꾸는 게 당연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들은 한 소리,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하는 말이 기분 나쁜 것도 그들이 보는 모습이 진실된 것이라는 불안함 때문이다. 그들이 진실되고 내가 가짜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늘 나를 감싸안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 그러지 말라고 하면 알겠다고 하면 될 일인데, 나는 나를 변호하고 싶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라고. 정정했으면 좋겠다. 아무도 나를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불안한 것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욕 먹을까봐. 


이렇게 말하니 답은 또 하나로 수렴한다. 불안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오늘이 내일 같겠다 생각하고 내가 쓸만하니 쓸만 하지 않으니 생각하지 않고, 내 인생이 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니 마니 고려하지 않고 여기서 멈춰 있으면 된다. 감정이 파도처럼 나를 쓸고 나갈 때 우뚝허니 서 있으면 된다. 이 얘기 전에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쉽사리 되지 않는다. 나는 자주 슬프고 외롭고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들어 버릇하는 습성이 있다. 


청사진이 이토록 확신한데 왜 이렇게 계속 맴도는 것일까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일만 해도 불만 가득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퇴사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 일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일하지 않는 사랑하지 않아서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또 다른 나 찾기’ 가 계속되었다. 4년간의 ‘나’ 찾기에서 나는 ‘나’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바라던 나는 늘 지금의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퇴사를 하는 그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나가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나도 다 사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더 버티지 못했던 근본적인 이유에는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크다. ‘나’를 안다면 무어을 해도 행복할텐데. 지금의 나는 어찌하였든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없다. 하루 아침에 모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나는 이 자리에서 좀 더 버텨보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찌보면 멈춰버린 것 같은 나도 좀 견뎌보려고. 그러려니 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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