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12_20
최근에 드디어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 <파일럿>을 봤다. 예고편을 보고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원래 이런 코미디 영화는 내 취향도 아니었다. 다만 현시대 여성인권과 사회체제간의 부딪힘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평이 내 팔목을 잡았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궁금해서 봤고, 영화를 보니까 정말 적절한 평이지 아닌가 싶다.
반면 빅토리는 SNS에서 계속 좋은 평을 받았으나, 평에 비해서 관객수가 좋게 나오지는 않아 아쉽다는 말이 많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내가 무척 기대하던 영화만 아니면 평을 좀 보고 가는 편인데, 어찌보면 유치하지만, 그런 점을 상쇄해주는 매력이 있다는 말에 기대를 하고 봤고, 맞는 말이었지만 <빅토리> 쪽이 좀 더 아쉬웠던 것 같다.
우선 <파일럿>은 여성우선채용이라는 말이 안 되는 상황으로 현실을 부정한다고 비판받은 것에 비해, 영화 내에서부터 애초에 그런 일은 판타지에 가깝다는 뉘앙스를 주며 시작한다. 여성 CEO가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 일부러 무리한 선택을 했다는 서사는 한편으로는 그정도 '무리수' 가 없으면 우리 사회에서 그런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음을 먼저 시사하고 시작한다.
영화는 은은하게 그런 '현실적인' 지점을 깔고 있다. 애플워치로 녹화된 송년회때 발언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주인공을 불쌍하기보다는 '그러게 좀 잘하지 그랬냐'는 시선으로 그려낼 때부터 그랬다. 마치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모든 일이 일어나지만 주인공의 불행을 자세히 보면 다 본인이 자초했던 일이다. 주인공의 태도에는 일종의 '나이브' 함이 있었다. 이정도는 괜찮겠지. 이정도면 괜찮지 하는. 그러니까 지옥으로 가는 길은 '나이브'함, 즉 순진함이 문제라도 영화는 내내 꼬집듯이 말한다.
<파일럿>의 마지막 장면은 <아이 필 프리티> 와 비슷한 울림을 준다. 상미가 아닌 상우로 다시 한 번 사람들 앞에 서기로 한 주인공은 가발을 벗어 던지고, 남이 짠 판에서 사는 대신에 자기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기로 한다. 왜냐면 '나'라는 본질은 어디가지 않으니까. 복잡한 실을 끊어내는 일도 어렵지만 결국엔 쉬운 것이다. 상미도 결국은 '조종사'로서 살고자 했다가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우리 삶의 복잡해보이는 문제들, 특히 젠더 문제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해서 영화는 이런 답을 내리는 것 같다. 성별이라는 문제를 떼고 한 번 보자고 어떤 사람이 남나. 그렇다면 상미는 왜 친구에게 뺨을 맞을 수밖에 없었나. 분명해진다.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여자고 남자고를 떠나서. 내부고발을 했다고 피해를 본 그녀에게 있어 신뢰의 문제는 처음부터 상처였기 때문에.
여성으로 꾸며 면접을 본 남자. 라는 일도 결국에는 자기 문제에 매몰되어 남의 사정은 돌아보지 않는 상우라서 생긴 일이라고 꼬집는 게 이 영화의 유쾌한 지점인 것 같다. 또한 그렇게 영화에 주제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힘과 미술 디자인의 힘이 분명히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면 놀랄 때가 있다. <파일럿>은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라고 분명히 말씀드린다.
반면 <빅토리>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은데 다음으로 미루겠다. 다만 '응원'에 대해서 조금 더 용기를 낸 영화라는 점이 인상깊었다고 한줄 메모를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