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
칼국수, 평양냉면, 메밀막국수는 각기 다른 음식이지만 레벨 위로 상승하면 할수록 점점 비슷한 맛에 도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칼국수 맑은 국물은 사태나 양지를 끓여 만들어낸 육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골 베이스보다는 양지나 사태 베이스의 칼국수 국물이 맑고 맛도 더 개운하고 깔끔하다. 평양냉면 역시 고기를 끓여 우려낸 육수를 사용해서 맑고 시원한 맛을 선사한다. 희한하게도 동치미 베이스의 메밀막국수도 칼국수나 평양냉면 육수와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음식들의 유사성과 동질 성안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문어는 적당히 삶아야 한다. 부드러운 식감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 가게의 문어는 부드러운 질감과 씹는 맛이 있다. 오래 씹지 않아도 스르르 넘어간다. 최상이다. 문어 한 점 안에서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는 문어의 생동감을 상상한다.
음식을 먹으면 자연스레 음식과 관련된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기억의 흔적들이 슬며시 들어온다. 추석 차례상에 오를 생문어를 고르느라 이 가게 저 가게를 어머님과 같이 다녔었다.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문어를 잘 고르기 위해 어머님은 발품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어릴 적에는 데친 문어맛의 진면목을 잘 몰랐다. 그래도 어머님께서 데쳐놓으신 문어는 쫄깃하고 맛있었다. 다만 그 맛의 여운을 따라가지 못해서 몇 점 먹고 물러나곤 했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보니 데친 문어 맛의 깊이를 점점 더 느끼게 된다. 입안 가득 퍼지는 부드러운 질감.... 초장은 달지 않아야 한다. 문어의 맛을 그대로 살리되 거기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너무 무르지 않아야 하는데 그 덕목을 고루 갖추고 있어 살짝만 찍어도 맛있다.
생선전은 생물을 사용해야 한다. 생선전 역시 부드러움이 생명인데 아쉽게도 내가 생각하는 부드러움의 극한까지는 도달하지 못함을 확인했다. 생선전의 맛을 살리는 포인트는 역시 간장에 있다. 식초를 섞은 간장이 제격인데 먹는 동안은 그 생각을 못했다. 다음에 가게 되면 식초를 조금 달라고 해야겠다.
드디어 칼국수가 등장했다. 보통은 나눠 먹어야 할 정도로 양이 충분하다. 국물은 깔끔하고 개운하며 시원했다.
말간 국물을 한 숟가락 뜨면서 그 안에 담긴 세계를 상상한다. 소가 걸어 다녔을 풀밭의 풀들과 잠을 자던 곳, 인간이 어찌어찌하여 가축을 먹게 되었지만, 일단은 소에 대한 미안함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소가 되새김질했을 풀들의 풋풋한 내음과 땅과 빗물과 맑은 공기를 상상한다.
국물 안에 담긴 그간의 노력과 노하우를 연마한 장인의 손길을 상상한다.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그의 노하우, 수없는 실패의 시도 끝에 맛을 낸 그 장인정신, 세월이 흐르며 익어가는 솜씨와 깊고 넓게 퍼져가는 맛의 진화에 대해 생각한다.
파 줄기와 거칠지 않은 양념과 더 얹어진 후추를 버무려 칼국수를 마시고 먹는다. 이만큼 다가온 차가운 기운이 잠시 사라지는 동안 내 몸은 안식을 취한다. 먹고사는 일이 이렇게 소중한 일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먹고사는 일이 갈수록 소중해질 것이다. 먹고사는 일을 다른 이들과 즐겁게 나눠야겠다.
왜 어떤 브랜드를 달지 않고 손국수라고만 했을까 ? 모든 칼국수를 대표하는 맛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을까 ? 아니면 어떤 것도 내세우지 않는 소박함을 말하고 싶어서였을까 ? 묻지는 않으련다. 조금 더 궁금해지기 전까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