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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18. 2021

한파 견디게 해주는 복국

오랜 인연의 만남을 이어주는 음식

쇼팽의 곡들은 가슴을 시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난 후 그 쓸쓸한 아쉬움을 달래주는 <이별의 곡>, 그리고 <이별의 왈츠>를 듣는다. 그가 걸었을 거리와 그가 만나고 헤어졌을 사람들. 그리고 그 끝에 그가 느꼈을 쓸쓸헌 아쉬움과 바르샤바의 거리와 크라쿠프의 거리를 상상한다. 아마도 살짝 바람은 불었을 테고 옆구리 시린 느낌을 받은 끝에 이 곡들을 쓰지 않았을까?




스물이거나 스물 직전, 스물 갓 넘은 청춘들이 만난 뒤로 어느덧 34년의 세월이 흘렀다.

학교 다닐 때 만들었던 스토리들은 졸업 후 정지화면으로 각자 장기기억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아주 가끔 만났었지만 그 스토리들은 쉽게 지워지지도 쉽게 인출되지도 않았다.

각자의 삶, 팍팍한 삶 혹은 멋진 삶 속에서 그 스토리를 꺼낼 여유가 없었던 탓일 게다.


살아왔던 날들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지면서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조금씩 느낄 수 있다.

각자 장기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꺼내서는

오늘의 일상적 삶과 버무리기 시작한다.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복어와 함께 버무려진다.




복불고기는 한 일가를 이룬 집이 알고 있다. 그 집이 내 입맛의 표준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그 표준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기로 했다. 

만만치 않은 가격 때문에 최근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다.

까치복을 재료로, 미나리와 콩나물과 버무려진 복불고기는 양도 제법이거니와 식감이 부드럽고

특히 양념이 자극적이지 않다. 가성비가 좋은 복불고기를 제대로 만난 느낌이다. 

복껍질 식감의 미덕은 쫀득함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쫀득하고 역시 자극적이지 않으며 양배추와 미나리와 잘 어울린다.

사실 복껍질의 식감을 제대로 살려낸 요리를 거의 먹어본 적이 없다.

복튀김은 튀겨낸 모양이 제법 예쁘다. 잘 입힌 튀김옷의 아삭함과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복어살이 입안 미각을 자극하며 오래 여운을 남긴다.  

때마침 추위를 이겨내고 술로 약간 상한 속을 달래줄 복국이 등장한다.

넉넉한 콩나물과 복어 사이를 헤집고 펄펄 끓어오르는 복국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아무 생각 안 난다. 저 국물이 마련해줄 아늑한 세계를 생각하며 군침을 삼킨다.

국물 한 모금 먹어본다. 아! 맛있다. 그리고 시원하다.

알아채지 못한 내 몸속 갈증을 달랜다는 느낌 !


나는 음식을 비교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다.

각자 다루는 식재료는 세상에 하나뿐인 식재료다.

같은 이름 같은 성질이더라도 시기가 다르고 자라온 토양이 다르다.

맞은 비의 양이 다르고 흡입한 양분이 다르다.

자라온 바다는 너무 넓어서 같은 곳에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각자의 가게에서 쌓아온 내공이 다르다.

프랜차이즈 건 자신의 노하우를 축적시켰건 간에 맛을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노고를

서툰 말로 비교하는 건 식재료와 사람 그리고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맛있으면 자주 가면 되고, 맛이 덜하면 발길을 멈추면 되는 일 아닌가!


밤도 깊어가고 추위도 더해가고 아늑한 가게 안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도 깊어간다.

아하 그러고 보니 우리의 인생도 정오를 지나 늦은 오후를 지나고 있구나.

언제 어디에 있고 무슨 일을 하건 다들 건강하기를 소망하며 가게 문을 나선다.

한파주의보가 발령되어 세찬 바람이 불지만 아늑한 몸과 마음으로 집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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