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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Mar 18. 2022

맛을 포착해내는 한 순간

3주 전 이 가게를 들렀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게문은 닫혀있고 3월을 기약했다. 다른 곳으로 가기 번거롭고 시간이 없어 근처에서 식사를 해결했는데 주방이 없는 배달전문점에다가 식재료는 오래되어 먹는 둥 마는 둥 헤어졌다. 밥 사는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오늘 이곳을 다시 찾았다. 그때의 보상심리가 작동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맛을 포착해내는 바로 그 순간은, 혀에 와닿는 감촉과 후각으로 완전히 음식을 즐기는 것에만 몰입할 수 있을 때이다. 편육에 막국수는 지극히 평범한 메뉴다. 보통의 편육이 앞다리 살이나 뒷다리살 혹은 목살을 사용하는데, 이곳의 편육은 삼겹살이 재료다. 삼겹살은 가격이 가장 비싸서 수육으로는 보기 드문 편이다. 질감이 굉장히 부드럽다. 비계는 저항감이 별로 없고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이미 보기에도 살과 비계의 경계선은 희미했는데 입안에 들어오니 살과 비계의 경계선이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이 순간 편육 맛을 극대화시켜주는 또 다른 장치가 등장해서 혀를 간지럽힌다. 아주 어린 시절 반찬 가짓수가 많지 않았을 때는 새우젓에 밥을 먹기도 했다. 새우젓은 자체로서도 반찬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다른 음식의 맛을 더해 주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식 맛은 새우젓을 통해 그가 살던 바다만큼 넓어지고 깊어지고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새우젓이 몸 안에 들어가면, 돼지고기의 흡수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곧바로 소화되는 느낌이다. 


편육 접시에 등장한 무 무침은 보통의 무생채나 무침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 아삭한 식감 대신 수분이 약간 빠져나간 공간을 진한 양념으로 채워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고기의 비린내를 아예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매콤하면서도 자극적인 맛의 무 무침은 새우젓과 삼겹살 편육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입안은 역동적인 곳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물김치와 메밀면을 버무리니 환상의 조합이다. 


맛을 포착한 이 순간 음식을 먹으면서 음식에 대한 상상력은 계속 끌어올리고, 잠시 잠깐 세상 일은 잊고 완전히 여기에 몰입한다. 세상만사 귀찮고 어렵고 힘든 일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을 즐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삶은 단 한순간도 쉼 없이 직선으로 날아가고 있다. 매 순간 매 순간 삶에 대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그동안 그렇지 못했던 아쉬움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을 포착하고 느낄 수 있는 지금에 집중한다. 

메밀 막국수는 보통 비빔과 물막국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곳은 비빔과 물을 주인장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동치미 국물 한국자 반이면 비빔, 두국자 이상이면 물막국수다. 경계를 허무는 방법이 이보다 쉬울 수 있을까? 사람 간의 경계도 이와 같이 쉽게 허무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짜장과 짬뽕 사이의 갈등이나 물과 비빔 사이의 갈등은 비슷하다. 늘 선택의 순간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고 선택하고 난 뒤 후회를 하던 일을 안 해도 되니 편안하다. 메밀 막국수 곱빼기를 시킨 친구와 후배가 후회를 한다.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보통을 주문한 나도 양이 엄청 버거울 정도다. 막국수 양념은 자극적이지 않고, 메밀은 입안에서 자연스럽게 툭 끊어지는 걸로 봐서 50% 이상의 메밀일 것이라 추정된다. 굳이 주인장에게 그걸 물어보고 싶지 않다. 음식을 만드는 건 주인이 해야 될 일이지만, 맛을 보는 건 나의 일이고 그 음식의 성분이 어떤 건지를 생각하고 상상하고 하는 일 역시 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은 순간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장치다. 점심 한 끼였지만 단지 점심 한 끼가 아니라, 지나가면 다시는 먹을 수 없는 한 끼,  나에게 가장 소중한 한 끼, 같이 먹었던 사람들과 나누는 한 끼.  그리고 그 한 끼를 내어 놓기 위해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 왔던 주인, 이 모든 사람들의 조화 위에서 음식이 완성되고 그리고 내 몸속으로 들어가서 음식이 내가 되고 내가 음식이 되는 그런 경지로 들어간다. 오늘 이 음식의 맛을 포착해낸 순간은 영원히 하나의 점으로 남아 내 뇌 속에서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처럼 한가운데 떠 있을 것이다. 언제고 다시 기억으로 맛으로 인출할 때까지 다만 거기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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