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주거침입범이 산다 #7
살면서 마주한 수많은 문서 중에서도, 고소장만큼 낯설고 생경한 서류는 없었다. 파일을 열어 첫 페이지를 넘기자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인적 사항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고소인의 이름과 주소는 하얀색 네모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 아래 피고소인1, 2란에는 각각 엄마와 아빠 이름이 또박또박 박혀 있었다. 마우스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자 고소인이 주장하는 사건의 경위가 한 편의 극본처럼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Scene 1.
고소인은 귀가 중, 아파트 복도에서 배달 음식을 받는 옆집 딸(나)을 발견한다. 조심스레 딸에게 다가가 정중한 말씨로 대화를 건다.
고소인 : 아가씨, 안녕하세요? 층간 소음 때문에 여쭤봐요. 혹시 집에 안마기가 있나요?
그 질문에 딸은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Scene 2.
곧바로 딸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피고소인2(아빠)가 집에서 나와 큰소리를 친다.
피고소인2: 우리 집에 그런 것 없으니 들어와서 확인해 보세요!
고소인은 피고소인2의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선다. 집을 둘러보다가 피고소인1(엄마)에게 말을 건넨다.
고소인: 혹시 안방에 안마기가 있는지 볼 수 있을까요?
#Scene 3.
그러자 피고소인1이 갑자기 호통을 친다.
피고소인1 : 주거침입죄로 신고할 거예요! 나가세요!
고소인은 69년간 세상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범죄를 범한 적이 없기에,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 사이, 피고소인1이 고소인의 왼쪽 어깨를 손으로 콱 움켜잡고 비튼다. 고소인의 몸이 강제로 뒤로 돌아간다.
잠깐, 69세?
나는 마우스를 쥔 손을 내려놓고, 화면 속 글자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읽었다.
'고소인은 69년간 세상을 살아오면서···'
아주머니, 아니 어쩌면 할머니라 칭할 나이였다. 하지만 장담컨대 그녀를 실제로 대면했던 사람이라면 일흔을 코앞에 둔 나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사건 당시 그녀가 뿜어내던 넘치는 힘과 체격, 검고 풍성한 머리칼, 그리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까지······. 내가 본 모든 사람 중 단연 손꼽히는, 그야말로 최강 동안의 소유자였다.
잠시 터져 나온 실소도 오래가지 못했다. 자칫하면 우리 가족이 순식간에 심신미약의 노년 여성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가해자로 비칠 터였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음 문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Scene 4.
뒤이어 피고소인1이 고소인의 오른쪽 어깨를 여러 차례 때리며 피고소인2에게 말한다.
피고소인1: 당신 뭐 하고 있어? 당장 끌어내.
피고소인1은 고소인의 왼쪽 어깨를, 피고소인2는 고소인의 오른쪽 어깨를 움켜잡는다. 고소인을 억지로 잡아끌어 식탁 의자에 강제로 앉힌다. 피고소인들은 계속해서 윽박지른다.
#Scene 5.
약 30분 후, 경찰 두 명이 도착한다. 한 경찰관이 고소인에게 말한다.
경찰관1: 아줌마! 왜 여기 있어요? 이거 주거침입이에요! 주민등록증 내놓으세요.
고소인: 주민등록증은 저희 집에 있어요. 집에 가서 드릴게요.
고소인과 경찰관들은 함께 고소인의 집으로 향한다.
#Scene 6.
고소인은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경찰관 한 명이 고소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대답한다.
경찰관2: 알고 보니 피고소인들이 폭행죄네요. 두 명이 폭행한 것이니까 가중처벌이네요.
경찰들은 사건을 마무리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조금 뒤, 피고소인1이 슬그머니 고소인의 집에 찾아와 자신의 집을 확인해 보라고 한다.
컷. 여기까지가 고소인이 집필한 시나리오였다. 상황이 지나치게 심각하면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더니, 정말 그 말이 맞았다. 우리가 겪은 진실과는 전혀 다른, 마치 평행우주에서 벌어진 듯한 허구의 이야기였다. 지인들이 '고소장을 확인하는 것이 첫 단추'라고 조언했던 이유를 그제야 실감했다.
아직 스크롤바는 한참 남아 있었다. 참,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 건지. 다음 장으로 넘기자 새로운 소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고소인의 상해 사실.'
짧게 훑어보기만 해도 여기저기 상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빼곡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기상천외한 전개가 펼쳐질까. 나는 숨을 고르고, 남은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