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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호 Oct 04. 2024

궁극적으로, 요가를 하는 이유


<26일 차>

 월요일 아침이다. 올겨울 최강 한파였던 지난 주말, 호기롭게 가평에 놀러 갔다가 오는 길에 빙판길에서 가벼운 사고가 났었다. 사고를 수습하는 동안 강추위에  오들오들 떨어서인지, 아니면 사고의 후유증인지는 몰라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몸뿐만이 아니라 멘탈도 나갔는지 가만히 앉아 있으니 온갖 서러운(?) 생각들이 물밀듯 올라와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요가를 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가를 가면 놀라 굳어 아픈 몸이 풀릴 것 같았고, 한 공간에서(친분은 없지만) 다른 회원님들과 함께 호흡을 하면 내게 위로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내 나이 즈음 되면 사람에겐 누구나가 감추어진 깊고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 같은 게 있다. 특히나 힘들고 서글픈 일 같은 경우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린 날 보다 더 묵직하고 더 큰 것들이 오는 경우가 있어서 각자가 말은 하지 않아도 가지거나 지나 보낸 덩어리들이 하나씩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각자들이 모여 호흡을 하고 몸으로 명상을 하며 마음을 다지는 이 공간이 왜인지 모르게 위로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역시나 요가원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 예감은 들어맞았다.


 아쉬탕가 시작 전의, 약간은 추위에 들뜨고 어수선한 그 웅성거림부터가 신기하게 위로가 되었다. 곁에 딱 붙어 서로의 속사정을 하나하나 나누지 않아도 이런 건강한 웅성거림이, 각자 위치한 자리가 잔잔히 위로가 될 수도 있구나. 남몰래 기분 좋은 명상을 하나 더 하고 온 기분이다.


 논다고 쉬고 아파서 굳어 더 잘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요가인데 오늘은 신기하게 몸이 평소보다 더 부드럽다.  힘도 들어가고 스스로가 기운이 좋은 게 느껴진다. 어제 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왜 나만 이렇게 부침이 잦을까? 왜 유독 올해 이렇게 힘든 걸까?’ 하며 지레 약해져 겁먹고 울적했는데, 이 요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정말이지 그 힘듦이 절반은, 아니 오버 좀 더 보태 80프로는 날아간 기분이 든다.


 오늘도 역시 작은 용기 내어 궁둥이를 떼고 요가원에 온 내게 칭찬하며 아침시간 웃으며 맞이해 준 선생님과 회원분들이 있어 감사하다. 그리고 어제 함께 힘든 시간을 슬기롭게 보낸 가족들과 도와주신 이름 모를 분들께도 감사드리며 새로이 건강한 힘을 또 얻어본다.


 나마스떼!




<27일 차>

 오늘은 일주일 중 제일 힘든 빈야사 요가 시간이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비교적 근력도 생겼으니 ‘음. 가서 또 열심히 배운다는 마음으로 하면 되지!’하고 호기롭게 요가원으로 향했다.


 올해 첫 한파시기답게 평소처럼 입고 나갔더니 너무 춥다. 후다닥 요가원으로 들어갔는데 정말이지 부지런한 회원님들… 이미 뒷자리는 만석이었고 남은 건 앞줄의 창가 자리뿐이다. 어쩔 수 없이 창가 자리로 다가가 매트를 깔고 앉았다. 헌데 외풍이 장난이 아니다. 어딘가에 살짝 창문을 열어놓은 걸까? 조금 추웠지만 제일 몸을 많이 쓰는 시간이니 만큼 땀도 많이 나고 더워질 거라 생각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장님의 씩씩한 빈야사 요가가 시작이 되었고 몸은 슬슬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강추위라 그런가 이전 시간들만큼 몸이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일 수도 있다. 아무튼 평소보다 뻣뻣함이 쉬이 느껴졌고 손 끝, 발 끝까지 힘이 가닿지 않는 게 느껴졌다. 나는 평소 수족냉증이 심한 편이고 이런 경우 혈액순환도 잘 되지 않고 관절도 굳은 느낌이라 힘을 쓰는 게 영 수월하지 않다. 무리하면 다칠 것도 같고.


 ‘아 오늘 좀 안되는데…’하는 순간! 갑자기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다. 이건 감히 몇 안 되는 내 요가 생활의 최대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열어놓은 어딘가의 창밖에서 음식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공기 속에 섞인 무게감 있는 냄새는 아마도 제대로 기름진 음식의 냄새일 것이다!

 ‘아아. 닭인가? 튀김? 뭘 까? 근데 아침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음식 냄새의 공격이었다. 갑자기 배가 확 고파왔고,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매트에 눕고 싶은 충동이 마구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아. 본능이란 무엇인가.’

 ‘아아. 이것이 운동하는 이에게 가장 큰 고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아. 나는 진정 동물의 그것밖에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이닥쳤다. 말도 안 되는 기습 공격이었다. 분명 아침을 좀 먹고 왔는데 이 음식 냄새에 자연스레 반응하는 뇌와 몸이라니… 머릿속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순간적으로 ‘탕수육인가? 치킨인가? 아랫집엔 닭강정집이 아닌데? 아. 그 새로 생겼다던 마라탕 집인가?’ 따위의 잡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배꼽시계는 갑자기 요란하게 움직였다.

 ‘유혹을 이겨내자! 집중해! 정신력도 강해져라!!!’

 스스로 짐승이기를 온몸과 정신력으로 거부했다. 그러던 중 마치 나의 이런 내적 갈등들을 읽기라도 한 듯 원장님은 갑자기 평소 안 하던 동작을 추가하셨다. 이 또한 원장님의 조련술 중 하나겠지. 감탄을 마지않으면서도 너무 힘들어 숨이 달싹달싹 차오른다.

 ‘아. 오늘은 마라맛 빈야사로구나!’

 덕분에 몰아치던 잡생각들은 싹 사라졌고 다시 매트 위에는 나와 내 몸만 오롯이 남았다. 다행이다. 음식 냄새에 잠시 동요되어 마음과 몸이 많이 흔들렸었다. 내가 이럴 줄이야… 스스로가 웃기기도 했다.


 초반, 잘 풀지 못했던 몸은 중간중간 힘이 딸리고 근육이 아파와 평소와 다르게 매트에 기대어 쉬게 만들었다. 다른 날 같으면 ‘아. 역시 아직 멀었는가…’하며 쉬이 낙담했겠지만 노노, 이제 나는 낙담하지 않는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원래 뭐든 기복이란 게 있는 거니까! 다음에 잘하면 돼.’

 오늘도 한 시간 동안 충실하게 스스로를 빚어냈다.


 요가원을 나오며 심한 허기짐을 느낀 나는, 집으로 곧장 향하던 평소와 다르게 토스트를 하나 푸짐하게 포장했다. 모락모락 나는 김과 달큰한 토스트 냄새를 맡으니 행복이 별 건가 싶더라.


 최대 위기가 온 요가였지만,

 후- 오늘도 했다구우! 



<28일 차>

 28일 차의 요가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요가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이다. 어느 정도 근력이 생겼다고 생각했으나 두 팔에 내 몸을 의지하여 지탱한다거나 복근을 이용하여 두 다리를 들어 올린다거나 하는 힘들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선생님들께서 점점 고난도의 동작들을 추가하신다. 할 만해 보이니까 권하시는 거겠지? 그렇다고 해도 내겐 좀처럼 닿기 힘든 레벨로의 퀘스트들이 주어지는 느낌이다.


 자. 여기서 나의 성향이 드러난다. 전에도 썼지만 나는 쉽게 만족하는 스타일. 뭐 하나를 끝장 보는 성향이 아니다. 그것은 수능을 준비하던 고교시절에도 그랬다. 분명 조금만 더 공들이거나 궁리하여 파고들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챕터일 텐데 100점 만점에 90점이 나오면 그 챕터에 해당하는 문제만 늘 틀리더라도 그냥 ‘이 정도면 잘했어.’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러니 그 챕터는 영 영 내가 넘지 않는, 혹은 넘을 수 없는 마음속 장애물과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여기서 만족하고 멈출 것인가 아니면 이를 넘어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인가. 오래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나는 ‘성장’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자라나는 내 모습에 재미를 느껴야 한다. 내가 요가를 오래 할 운동이라 여긴다면 아마 나는 ‘성장’을 위해 느리지만 차근차근 도전할 것이다. 느리지만, 아주 느리지만 차근차근하다 보면 언젠가 되겠지. 겁도 많아서 어떤 동작은 지레 만족하는 척하며 포기하기도 하는데 사실 잘하고 싶다. 겁이 나면 안 다치는 방법으로 천천히 도전하면 될 거다. 너무 깊게 생각 말고 그냥 해보자.

*

*

*

 요가 6개월 차에 덧붙임: 이 글을 수정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읽어보니 그 사이 나는 생각이 좀 바뀌었더라. 오래 해야 하는 일이라면 성장이나 재미보다는 밥을 먹는 일과 같이 습관처럼, 별다른 기대 없이, 숨 쉬듯 대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물론 나는 자주 번복할 것이고 변덕도 부릴지 모르므로 도장 찍듯 ‘이거야’ 하고 결론 내리는 건 피하고 싶다. 일단 뭐가 되었건 계속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내게 요가의 본질은 ‘건강한 심신을 위한 몸의 명상’이다. 이걸 스스로가 잊지 않으면 좋겠다.




<29일 차>

 오늘 요가는 몸도 마음도 이렇다 할 감흥이 없던, 아주 노말 하고도 슴슴한 날이었기에 좀 뜬금없지만 요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왜 그 많은 운동 중 요가인가?

 첫 번째로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조금 겁을 내는 편이다. 특히 몸으로 하는 것들이 유독 그렇다. 다칠 까봐 두려운 마음들이 있다. 그래서 어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한 뒤 신중한 결정을 내리고 시작을 한다. 하지만 요가는 다르다. 이미 내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대학시절부터 문화센터를 가든 혼자 집에서 영상을 보든 쉬이 접할 수 있던 종목이라 다른 운동들보단 비교적 마음 편히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운동들처럼 첫 시작은 힘들었지만.


 또한 나는 척추측만증이 심한 편이다. 골반도 많이 틀어져 있고 어깨 높이도 다르다. 인지만 하고 있을 뿐 딱히 다른 방도 없이 불균형의 상태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이로 인한 통증들이 동반되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왼쪽만 아프다거나 턱이 아프다거나. 그래서 자세 교정이나 측만증이 더 심해지는 걸 막기 위한 목적으로 요가를 시작하게 된 것도 있다. 효과가 입증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뭐 하나 진득하게 하는 운동이 있다고 말하고 다니고 싶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많은 다른 성인분들도 꾸준히 다니는 것으로 봐서 꽤나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아닐까 싶다. 때마침 얼마 전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아저씨가 인스타그램에 머리서기를 하는 영상을 올린 걸 본 적이 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머리서기까지는 아니라도 나도 늙어서까지 꾸준히 하는 한 가지 운동을 갖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내면의 건강과 육체적 건강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시작했다. 이게 바로 내가 요가를 하게 된, 본질에 가까운 이유이다. 아쉬탕가 시간에 선생님 말씀이, 요가의 궁극적 목표는 동작 중에 얻는 명상이라고 하셨다. 그게 무엇인지 궁금했고 경험해 보고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열심히 다니는 중이다.


 그리고 시작한 지 30일 차가 된 지금, 나는 기대 이상으로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맛보고 있는 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며 실제로 주위 사람들에게 요가의 긍정적 측면에 관해 전파하고 다니는 중이다.


 나의 경우에는, 이건 누군가에겐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몸무게가 늘었다.

 난 모태 쭉정이인 인간이다. 대벌레 같다고나 할까. 소화기관이 약해서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다만 설사나 체를 잘할 뿐. 매우 슬픈 일이다. 어릴 땐 괜찮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같은 몸무게라도 사람이 이상하게 병약해 보이고 체력은 더 떨어져 주눅 들어 다니기 일쑤다. 작정하고 많이 먹어 위장이라도 늘리려고 하면 이내 곧잘 체하거나 배탈이 나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요가를 시작하며 배고픔을 수시로 느끼고 먹는 양은 똑같은데 살이 붙고 근육도 붙는 아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뒷 산을 타고 수시로 홈트를 해도 이뤄내지 못했던 것들인데 작년 같은 달에 비해 몸무게가 5킬로 정도가 늘었고 나는 드디어 사람다운 몰골을 하게 되었다. 몸에 힘이 붙는 게 느껴지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덜 괴롭다. 그러니 자연스레 자신감이 붙는다. 아파도 가라앉을 정도로 체력이 바닥나지 않는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또한 스트레스가 줄었다.  적어도 요가하는 동안은 동작에 집중하고 호흡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진다. 본디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 인간이라 머릿속이 쉴 틈이 없었는데 이젠 머릿속도 많이 가벼워졌다. 맑아졌단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비록 초반에는 몸의 적응이 느리고 아직도 근육은 당기고 아프기도 하지만 머릿속은 안개가 걷힌 듯 많이 맑아진 게 느껴진다.


 그리고 요가 덕분에 나와 좀 더 친해지는 중이다. 안 쓰는 근육을 쓰고, 나만의 힘으로 버티고 힘주다 보니 나의 약한 부분이라던가 잘 되는 부분 그리고 점점 잘 되어가는 자세 등을 좀 더 면밀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아픈 곳은 호흡을 넣어 좀 더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고 성장되는 부분은 매일 뿌듯해하며 칭찬해주기도 한다. 내 몸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운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나를 바라보고 느낀다는 건 의외로 살면서 겪기 힘든 것들이니까.




<30일 차>

 사람 몸은 누구나 비대칭이 조금씩 있겠지만 나는 유독 심한 것 같다. 아쉬탕가를 할 때면 더 여과 없이 느낄 수 있는데 요가 동작들이 그렇듯 왼쪽을 꼬아 숙이는 동작이 있으면 오른쪽을 꼬아 숙이는 동작도 있다. 왼쪽으로 비틀면 오른쪽도 비틀고. 이렇듯 대칭적으로 동작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방향은 잘 되는 반면 어떤 방향은 잘 되지 않거나 무척이나 아픈 방향이 있는데 나는 이 편차가 너무 크다. 사바아사나를 할 때에도 힘을 풀고 누워있으면 왼쪽 발과 오른쪽 발이 자연스레 양 옆으로 넘어가는데 그 각도도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요가원 원장님 눈에도 그게 보이는지 사바아사나를 할 때마다 한 번씩 내 발 밑으로 오셔서 두 다리를 모아 힘껏 아래로 쭈욱 늘려주실 때가 있다. 흑. 그렇게 해주셔도 여지없이 내 발은 왼쪽발이 덜 내려가고 오른쪽 발이 더 내려간다.  햄스트링도 오른쪽은 이제 주욱 주욱 잘 늘어나는 반면에 왼쪽은 요지부동, 통증만 더해진다. 왼쪽 햄스트링이 더 짧고 더 팽팽하고 수축된 느낌이다.


 도대체 내 자세는 언제부터 나빠진 걸까. 곰곰이 되짚어보다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학창 시절의 나는 공부할 때에 책상보단 주로 바닥에 상을 펴놓고 하는 걸 좋아했다. 그때 자세가 아마 양반다리가 아니라 한쪽으로 다리를 접어 앉는 자세였던 걸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시절의 공부기간 동안 아마도 주욱 그 자세를 했을 테니 척추가 휘지 않고 견뎌냈을까.


 지금 하는 요가가 내 몸의 균형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드라마틱한 결과까지는 주지 않아도 지금보다 최악이 될 일은 막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조금씩 하다 보면 언젠간 되겠지. 언젠간 조금씩 덜 아파 오겠지. 조바심 내지 말고 차근차근 이어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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