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앵님 살려주세요." 하는 소리가 목젖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이성의 끈을 붙잡고 겨우 삼켜냈다. 아니다. 사실 삼켜낼 힘도 없었다. 모든 근육들이 난 이제 글렀어- 라며 아우성친다. 겨우 이성을 챙긴 근육이라면 괄약근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늘 요가는 진심(요단강 건너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오늘 어땠어요?^^” 라며 상큼하게 웃으며 물으시는 선생님.
“죽는 줄 알았어요^^” 라며 덩달아 웃으며 대답하는 나는 ‘어라, 이것이 조련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좋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하. 어질어질하다. 어쨌거나 당 떨어져 죽겠으니 집에 가서 빨리 포도당 사탕이나 먹어야지 하며 엉금엉금 기어 왔다.
할수록 늘어야 되는데 할수록 못한다. 확실히 어린 날 깡으로 버티며 하던 것들은 먹히지 않는다. 깡을 꺼내 쓸 여가도 없이 눈앞이 깜깜해진다. 허나 그럴 법도 한 게 걷는 것, 그리고 요가 외엔 평소에 움직이질 않는다. 하루 종일 앉아서 밀린 것들 처리하기 바쁘니 가만히 앉아 있을 때마다 하체 근육이 풀려 나가는 게 느껴진다. 이거 원. 주말마다 산이라도 타야 되나. 요령 피우는 건 싫고 무식하게 체력부터 따로 키워야 하는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원장님 말씀대로 한 번 속는 셈 치고 해 보자. 계속 계속하다 보면 언젠간 체력도 좋아지고 버티는 힘도 생길 거라 하셨으니 믿어보는 거다.
슬기롭게 버티기라고 제목을 썼는데 사실 요령이나 어떤 기술을 의미하는 슬기로움 따윈 없다. 혹시나 뒤늦게 라도 알게 된다면 다시 글을 써보겠다. 지금은 그저 일단 하다 보면 잘 되리라 믿는 마음밖엔 방도가 없는 듯하다. 체력이 약해 늘 살짝씩 주눅 들 때가 있는데 이런 마음 100번 먹으면 언젠간 나도 비교적 단단한 체력을 가지지 않을까? 그날을 위해 버티고 버텨보자!
<17일 차>
오늘은 다소 충격적인 요가 시간이었다. 마치 여태 배운 걸 리셋당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여느 때처럼 아쉬탕가 수업에 참여하였고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한 동작 한 동작 이어 나갔다. “호흡하세요.”라고 말하실 때마다 나름 내가 알고 있는 우짜이 호흡을 하려 애썼고 내뱉는 호흡마다 좀 더 몸에 긴장을 풀고 힘이 아닌 자연스레 맞닿는 동작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벼락같은 선생님의 한 말씀.
“복부는 풀리면 안 돼요. 계속 끌어올리세요.”
‘네… 네?’
혹시 나를 보고서는 하는 말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 복부는 한없이 풀려있었다.
‘잠깐, 호흡을 복부로 하는 게 아니었어? 나 뭔가 완전 잘못 알고 있었나?’
티는 못 냈지만 내면은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그제야 지난날 신기하게만 바라봤던 요가 유튜버분들의 자세가 떠올랐다.
‘아… 웃타나아사나 자세를 할 때에 배가 홀쭉하게 들어가던데 그게 복부를 계속 끌어올린 채 호흡을 했기 때문인 건가!’
그에 반해 나는 숙이는 전굴 자세를 할라 치면 배가 한없이 풀어져 왔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것도 모르고 뱃살 자랑을 해댔구먼!’
뭔가 처음부터 잘못 알아온 기분에 여태 나의 요가들이 몽땅 엉망이 된 기분이다. 아 물론, 17일 차 밖에 안된 햇병아리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우짜이 호흡에 관해 찾아보았다. 역시 복부는 뒤 척추 쪽으로 끌어올리고 갈비뼈 사이사이, 횡경막, 폐에 불어넣는 호흡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나 완전 잘못 알고 있었네.’
앞으로 요가 시에 신경 써야 될 사항이 하나 더 늘었다. 호흡은 아쉬탕가 내내 이뤄지는 행위이므로 뭔가 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어난 느낌이라 다소 벅찬 느낌이지만 편안히 마음먹고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하다 보면 또 자연스레 늘겠지.
나마스테-
<18일 차>
아프다. 왼쪽 다리 뒷부분이 불타오른다. 내 다리에 길고 굵은 끈이 더 버티다간 끊어져 버릴 거라고 외쳐댄다. 여태 그 녀석의 존재를 나는 몰랐다. 녀석이 또 소리친다. 아프다고. 그만하라고. 미안. 나도 그만하고 싶어. 하지만 도망갈 길이 없다. 미안해. 네가 좀 견디자......
나와 햄스트링과의 대화다.
오늘은 아쉬탕가 기초반 수업이 있었다. 기초반이니 간단하고 쉽겠구나 생각하고는 마음 놓고 갔는데 주말 동안 너무 격하게 쉬었나? 햄스트링이 너무너무 아프다. 18일 차라지만,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요가인데 어찌 이다지도 진전이 없단 말인가. 근력도 유연성도 왜 인지 모르게 제자리걸음 같다. 요가원에 가는 시간 외에 별도로 집에서 근력이나 유연성을 위한 연습을 해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 그렇게까지 하면 나는 쉽게 질려 나가떨어질 것이다. 더더군다나 100일의 요가를 기록하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꾸준한 글쓰기를 위해서라도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 암요! 아무럼요!
사실 오늘 살짝 주눅이 들었었다. 나는 아직도 아파서 벌벌 떨며 하는데 다른 회원님들은 쭉쭉 잘 뻗어 나가고 팍팍! 몸에 힘도 줘가며 굵직하게 버텨 내는 모습을 보니 혼자 괜히 비교하며 주눅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선생님이나 주위사람들이 하는 동작을 따라가기에 바빠서 주눅 들 여가도 없었는데, 조금 익숙해지고 나니 주위 사람들이 보이는 거다. 보고 싶지 않은데 보인다.
흠. 하지만 이건 곧 나의 자만에서 오는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배웠으니 이만큼은 응당 하겠지.’라는 자만. 그리고 욕심. 응당, 이 정도 할 수 있다.라는 건 없다. 못할 수도 있는 거지. 그래. 나는 느리다. 인정한다. 요가를 끝마치고 나올 때에도 다른 회원님들은 슉슉슉 매트들을 정리하고 빠릿빠릿 움직이시는데 나는 몸짓 자체가 느리다. 요가 플로우에 모든 기운을 다 써버려 힘이 없는 탓도 있지만, 뭐랄까… 야무지고 빠릿한 몸짓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너무 이런 식으로만 표현하면 지질하고 안쓰러워 보이니까 여유가 많다고 해두지. 하하. 게다가 오늘은 요가선생님께서 수업 초반에 “남들 의식하지 말고, 자신만의 특별한 포인트를 찾아 그곳을 응시하며 자신에게 집중하세요.“ 라며 일러주셨지 않았는가. 그 말을 따라 마음가짐도 늘 가다듬으며 차분하게 내게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선생님 말씀 따라 남과 비교하여 주눅 들고 ‘어라, 나 여전히 못하네.’ 싶을 때 나만의 포인트를 찾아 응시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니 다시 내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이 말은 비단 요가원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염두에 두면 좋을 말 같다. 남과 비교하여 작아지는 만큼 괴로운 일은 없으니까. 비교란 건 스스로 지옥을 사들이는 것과 같단 생각이 든다.
나는 비교 같은 걸 의식적으로 잘 안 하려 하는 스타일이고, 마이웨이를 고수하려 항상 스스로 다듬고 나름의 마음 정제를 하며 사는 스타일이라 자부했는데 난 여전히 하수인가 보다. 그런 것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누려보고 싶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충만한 삶.
무튼간에 요가 선생님의 저 한마디에 순간이지만 수업을 대하는 마인드 자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하니 의외로 칭찬할 거리가 눈에 보였다. 가령, 요가 수업 초반엔 탈수기처럼 탈탈거리며 떨어대던 다리가 지금은 어느 정도 근육이 붙어 전처럼 과하게 떨지 않고도 동작들을 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물론 아직 달달 떨며 하는 동작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말 어디 아픈 사람처럼 탈탈거리며 털어대는 모습은 없어졌다.
삶의 전반에도 이를 많이 적용하길 바라며, 요가가 내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일단은 믿어본다.
내일 또 가야지. 헤헤.
<19일 차>
꽤나 추운 아침이다. 오늘은 일주일 요가 중 제일 빡센 날이다. 근력이 없는 내게 오래 버티기를 요구하고 유연성이 없는 내게 많이 비틀어 또 버티기를 요구하는 빈야사 요가 시간.
누구보다 강하게! 파이팅 넘치게 요가 시간을 이끄는 원장님의 구령을 따라 오늘도 정말이지 열심히 요가를 했다. 아마 일주일 중 제일 사력을 다하는 시간이 이 빈야사 시간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 원장님의 허스키하지만 스윗한 구령 아래에 어떤 최면에 걸린 듯 평소보다 조금씩은 더 버텨냈다. 보통 3분의 2 지점 즈음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고 힘이 딸리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원장님의 마법 같은 구령이 시작된다.
“에잇, 세븐, 식스, 버텨요! 강해집니다! 왼쪽을 좀 더 뻗어요! 파이브, 그렇~죠!! 포, 쓰리, 다 왔어요! 투, 원, 좋아요!!!”
한 동작을 버티기 위해 이 마법 같은 구령을 듣고 나면 신기하게도 1mm는 더 뻗을 힘이 생기고 1초는 더 버티는 인내심이 솟아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긍정적인 구령에 걸맞게 답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좋은 영향을 받는 건 나뿐만은 아닐 거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원장님의 구령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버티고 인내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역시나 오늘도 땀으로 옷이 흥건히 젖었다. 젖은 옷에 외투를 걸치고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집에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다리가 댕기고 약간은 후들거리지만 한껏 상쾌해진 기분이다. 19일 차라고 몸이 조금은 적응했는지 이젠 요가 후 체력이 딸려 하루 종일 조는 일도 줄어들었고 오히려 이젠 머릿속이 또렷하다. 항상 뭔가 안개가 낀 듯 머릿속이 무겁고 멍한 적이 많았는데 오늘은 오래간만에 정말 맑다.
기분이 좋다.
<20일 차>
나의 왼쪽 허벅지 햄스트링이 얼마 전부터 계속 힘들다고 소리쳤다. 그런 이유로 주말 내내 푹 쉬었고 집에서 나름의 스트레칭도 했었기에 이젠 좀 괜찮아졌겠지 했는데 아니 웬걸. 오늘은 역대급으로 아팠다. 참으면서 동작을 이어 나갈 수준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왼쪽 다리를 펴고 전굴이라도 하려고 하면, 시도함과 동시에 뒤 허벅지의 통증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순간적으로 누군가 크고 날카로운 물건으로 내 뒷다리 힘줄을 가격하는 느낌이랄까.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오늘은 왼쪽다리를 펴고 전굴 하는 자세는 거의 못하다시피 했다. 괜스레 또 주눅이 든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지만 3,4년 전 요가를 한창 배우려고 마음먹었을 때도 아파서 관둔 이력이 있었기에 ‘역시 난 무리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들며 주눅이 팍 들었다. 그때는 오른쪽 슬개골에 염증이 생겼었고, 무릎을 쓰는 동작이 많은 요가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사 선생님 말에 한두 달 만 쉰다는 게 영영 쉬게 되었던 적이 있다. 잠깐 쉬다 다시 시작해도 좋았겠 지만 무릎 통증이 다시 재발할까 봐 겁이 나서 선뜻 도전을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시간도 지났고 괜찮겠거니 싶어 요가를 다시 시작한 건데, 이번엔 햄스트링이라니! 그래, 뭐 애초에 나는 유연성도 없었거니와 갑자기 움직이거나 가동범위가 큰 운동을 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럴 수준의 통증을 넘어 선 듯 한 느낌에 또 덜컥 겁이 난 거다.
마음의 흔들림은 몸으로도 금방 나타나는 건지, 나는 오늘 늘 하던 동작도 엉망진창으로 해버리고 수도 없이 버벅 댔다.
‘아. 오늘은 글렀어.’
거의 반은 체념하고, 왼쪽 다리를 펴고 하는 동작은 쉬다시피 했다.
그런 날도 있는 거겠지. 하고 위로하지만 원체 체력적으로 늘 약하단 소릴 듣고 남들보다 힘도 딸리는 말라깽이 인간이던 나는 조금이라도 아프면 금세 주눅이 들어버리고 만다.
‘역시 내 몸은 어려워. 남들에 비해 너무 약해. 하지만… 포기는 말자. 더 천천히 가보자.’
스스로에게 괜히 더 천천히 가자고 이야기해 본다.
100일의 요가라고 썼지만 남들의 100일이 나의 100일과는 같을 리 없겠지. 뻔한 얘기지만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