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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호 Sep 13. 2024

요가 초심자


<11일 차>

 약간의 위기가 왔다. 11일 차 밖에 안된 요가 일지인데 뭐 이리 위기가 잦은 건지! 이걸 내가 100일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이렇게 써봤 자 누가 봐주겠냐 하는 생각 사이에서 현타가 오려고 했다. 그러나 이왕 하기로 마음먹으면 나는 멈추지 않는 기관차와 같지. 너무 생각 말고 이 글을 쓰는 이유와 본질만 보자.


 비트요가를 다녀왔다. 컨디션이 안 좋아 하루 쉬려고 했는데, 아랫배가 꿍실 꿍실 이상한 기미를 보이기에 곧 생리가 시작될 느낌이라 어떻게 스케줄을 분배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냥 하루 쉬고 싶은데, 오늘 쉬고 다음 주 내리 생리면 도대체 얼마나 빠져야 하는 건가. 그리고 이 글은 얼마나 또 길게 가져가야 하는 건가 생각하니 아득했다. 되도록이면 미리 타이트하게 가두자고 마음먹고는 저녁 늦게 라도 마지막 타임 요가를 가기로 했다.


 저번 비트요가 때는 동공이 풀리는 아찔한 경험을 했었기에 살짝 가기가 주저되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다. 더 이상 나약하게 살 수 없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겨울의 초입답게 어느덧 차가워진 밤공기를 뚫고 성큼성큼 요가원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요가원. 오호라. 마지막 타임 요가는 나 포함 네 명 밖에 없다. 이 의미인 즉, 한 명 한 명 동작이 적나라하게 잘 보인다는 의미! 요령 따윈 피우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의미! 속으로 아뿔싸-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왕 온 거 어쩔 수 없다. 일단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두근거리는 인도풍의 음악이 요가원에 울리기 시작했고, 원장님의 구령에 맞춰 비장한 마음으로 나의 두 번째 비트요가가 시작이 되었다.


 한 10여분을 했을까, 갑자기 몸에 힘이 잘 안 붙는 게 느껴진다.

 ‘어라. 오늘 진짜 날이 아닌 건가. 벌써 너무 지치는데.’

 보통 40분 정도 달려야 풀리는 동공이 벌써부터 풀리고 난리다. 전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자꾸 초점 풀린 렌즈처럼 흐리게 보인다. 아무리 초점을 맞추고 모습을 선명히 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아. 모르겠다. 그냥 동공 풀린 채로 해야지…하하하하하’

 눈에 힘을 풀고 좀비처럼 동작을 이어 나갔다. 비록 동태눈이었지만 몸은 그래도 차근차근 잘 따라왔다. 나름 한 번 경험을 해봤다고 몸에 조금 익었는지 저번 타임보다는 덜 허둥댔다. 하지만 허둥대지 않는다고 쉽게만 끝날 비트요가가 아니다. 비트요가의 절정은 마지막 10분여의 시간 동안 이루어진다. 지난번 첫 수업 때의 ‘윗 배가 터질 듯이 움직여대는 마지막 복근운동’은 정말이지 사정없게 느껴졌다. 그걸 알고 시작을 해서인가, 다른 수업과는 달리 비트요가는 후반으로 치닫는 게 약간은 두려운 수업이 되어 버렸다.


 마지막 10여분. 드디어 복근 운동이 시작되었다. 복근운동은 누워서 고개를 살짝 들고 다리를 바닥으로부터 30도 띄운 채 쭉 뻗었다가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번갈아 가며 가슴팍으로 붙여 움직이는 동작으로 시작한다. 아. 무섭다. 원장님도 이 앞의 동작들보다 더 파이팅을 외치시는 느낌이다. 아아. 네 명 밖에 없는 이 수업에서조차 원장님은 요령이란 걸 피우지 않으시는데 내가 뭐라고 요령을 피우겠다고 앙큼한 생각을 했던 건지.

 ‘네. 네. 해보겠습니다. 할게요! 엉엉’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어라? 저번수업보다 조금 수월하게 느껴지는 거다.

‘오호- 그래도 일주일 지났다고 배에 근육이 좀 붙었나? 다리도 덜 힘들고 배도 덜 아프네. 히히.’

내심 속으로 엄청 뿌듯했다. ‘됐다. 히히. 이걸로 이제 끝이겠지. 생각보다 가볍게 끝나겠는걸?’ 싶었는데, 아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누운 자세에서 다리를 또 들어 올려 팔꿈치를 왼쪽 오른쪽 갖다 대는 복근 운동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잠시 끝났다며 방심했던 나는, 이내 페이스를 잃고 말았다.

 ‘아. 너무 아프다. 아. 아. 아.’

 결국엔 두 번째 반복 때 나는 저번처럼 입을 벌리고 누워 버렸다.

 '하…한 세트만 쉴까?' 하는데 원장님께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힘들면 다리만 움직이세요! 할 수 있어요!”


 ‘헉. 헉. 네. 할게요. 합니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로 다리만 벌벌 떨며 움직여보았다. 볼품없이 떨리는 내 다리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땀이 땀이 말도 못 하게 흘렀다.


 마무리 운동까지 마치고 어느덧 사바아사나. 선생님들은 사바아사나 시엔 항상 조명을 모두 꺼주시는데, 불을 모두 꺼도 밝음이 느껴졌던 오전과는 달리 깜깜한 어둠이 금세 내부를 감쌌다. 그 나름대로 운치 있고 고요해서 좋았다.

 ‘하아… 이렇게 또 하나 했구먼. 힘들지만 그래도 다 했어.’

 잘하고 못하고는 모르겠고, 일단 하나 또 해냈다는 뿌듯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어둑해진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확히 다음 날 생리가 시작되었다. 역시 나는 내 몸을 너무 잘 안다. 어제 때맞춰 참 잘 다녀왔다.




<12일 차>

 생리기간이 끝나고 다시 활기를 되찾아 요가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빈야사 요가! 이즈음 되니 슬슬 빈야사와 아쉬탕가는 서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 둘은 무슨 차이점이 있을까? 초보자인 내게는 겹치는 동작이 많아 그게 그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궁금하면 찾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어떻게 든 명확한 차이점을 알아내기 위해 검색에 검색을 거듭했다. 헌데 정리된 많은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미궁에 빠져들었다. 무언가 ‘이거다!’ 하는 뚜렷한 차이점이나 경계가 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아본 바를 정리해보려 한다. 머릿속에 어느 정도의 큰 틀을 잡아 놓고 배우고 싶어서다. 대략적이라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서 배우는 것과 모르고 배우는 건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쉬탕가와 빈야사는 본디 구분이 없이 ‘아쉬탕가 빈야사’로 불리었으며 그걸 줄여서 아쉬탕가 또는 빈야사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내가 썼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쉬탕가는 최종적인 ‘깨달음’으로 향하는 요가 수행의 8단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8단계가 무엇인가 궁금하여 찾아보았지만 고차원적인 철학 혹은 심오한 수행과도 같은 그것들은 내게 너무 막연하고 어렵게 다가왔다. 직접 몸으로 부딪혀 배우면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믿는다. 호흡법으로는 우짜이 호흡이라 불리는 코로 하는 호흡법을 사용한다.


 빈야사는 순서를 의미하는데, 정해진 단계 없이 ‘수리야나마스카라’라고 부르는 태양 경배자세의 12가지 동작을 물 흐르듯 변형 또는 반복하며 연결하는 시퀀스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아쉬탕가와 달리 빈야사의 호흡법은 특별한 명칭을 지닌 호흡법은 따로 없어 보이고, 들이마시고 내쉬는 본인만의 일정한 호흡을 다스리는 방식이라고 한다. 네이버의 블로그와 지식인을 뒤져 간략히 정리해 보았는데 알 듯 말 듯하면서도 개념이 확실히 다가오진 않는다. 그럴 땐 그냥 해보고 부딪히며 몸으로 알아가는 수밖에… 하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되겠지.


 생각 없이 다니던 내가 조금씩 생각을 한다는 건 어느 정도 적응을 했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 적응한 게 아니라 심리적으로 이제 요가원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단 의미이다.


 웜 업을 하고 본격적인 빈야사 동작에 들어갔다. 빈야사에 대해 어느 정도 찾아본 뒤라 그런 가 원장님께서 “수리야나마스카라 동작 들어갑니다.”라고 말하시는 게 이젠 귀에 들어온다! 역시 아는 만큼 들리나 보다.


 머리가 나쁜 나는 아직도 동작이 헷갈려 버벅대지만 그 와중에도 동작들의 명칭에 대해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드디어, 전부터 궁금하고 헷갈렸던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라는 동작의 차례가 되었다.

 ‘흠.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동작은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동작인 다운독과 같은데, 그 다운독이 아닌가? 다운독처럼 하면 안 되는 건가?’ 초보는 수업을 따라가기 바쁘니 같은 동작이라도 명칭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조금씩 적응이 되는 이제서야 그 단어들이 하나씩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검색을 했다. 그랬더니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가 다운독이란다.

  ‘아! 역시!’

  뭔가 하나 또 배운 느낌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자신 있게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를 할 수 있겠군. 역시 모를 땐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왜 하나로 통일하지 않고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와 다운독을 번갈아가며 말하는 걸까? 시퀀스마다 같은 동작이라도 부르는 명칭이 다른 건데 내가 아직 모르는 걸까? 명쾌한 해답은 모르겠지만… 이것 또한 언젠가 알게 되겠지? 요가의 세계도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다.



<13일 차>

 아쉬탕가 수업이다! 흠. 오늘은 얼마나 어려운 동작들을 할까? 아침 일찍부터 게슴츠레 뜬 눈으로 단백질 셰이크를 말아먹으며 벌써부터 살짝쿵 걱정을 한다. 그렇지 뭐든, 모르면 용감한데 알고 나면 겁이 조금 생긴다. 하지만 나는 이걸 극복하는 나름의 방법 한 가지를 알았다. 그건 바로 ‘겁이 날 땐 늘 처음 한다는 생각으로 할 것’이다. 그러니까… 더 정확히는 아무 생각 없이 하자는 의미 와도 같다. 늘 배우러 간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 이게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직 요가 병아리이니까! 헤-


 조금씩 날이 추워진다. 웅크린 몸을 이끌고 갔더니 오늘은 간단한 스트레칭부터 하고 시작하자 하시는 선생님.

 “원래 아쉬탕가는 준비 운동 같은 게 없는데, 너무 추워지니 굳은 몸을 조금 풀고 시작할게요.”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선생님의 음성을 들으면 하나하나 차분하게 잘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음. 그렇다. 착각. 선생님은 흐트러짐 없는 차분한 말투로 속도감 있게 아쉬탕가를 이끌어 가시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힘이 빠져 물에 푹 젖은 듯한 하체를 아주 힘겹게 들어 올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반박자씩 느리게 따라가고 있더라. 분명 나는 지상에 몸이 있는데 하체는 깊은 물속 어딘가에 혼자 머물고 있는 느낌이다. 하. 저 두 다리가 마음처럼 가볍게 따라와 주지 않는다.

 ‘오늘도 너희 두 다리와 나는 내외하는구나.’


 선생님은 일정한 속도로 조곤조곤 말하시며 중반부까지 거의 함께 하셨다.

 ‘후… 말을 하면서 동작을 끊임없이 하시다니 역시 선생님은 대단해.’

 내가 정말 감탄한 건 선생님의 ‘차투랑가 단다 아사나’ 동작이다. 아직도 복부, 팔 등에 힘이 딸리고 제대로 된 동작을 몰라 삐그덕 대는 나와는 달리 선생님의 동작은 정말이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속으로 감탄을 마지않았다.

 ‘와아아!’

 이런 표현이 감히 맞을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동작은 기름기 쪽 뺀 참치처럼 담백했다. 다른 동작은 모르겠는데 저 차투랑가 단다 아사나 동작은 정말이지 선생님처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뭔가 되게 단단해 보이고 멋있다. 저 동작을 잘 해내면 나도 단단해질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아직 그러기엔 나의 이 쭉정이 같은 팔과 거죽 같은 배가 잘 따라와 줄지 모르겠다만. 일단 그냥 계속 다녀보는 거다.


 때때로 나는 내가 요가하는 모습이 대벌레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벌레는 팔다리 몸통은 가느다란데 뭔가 유연성 없이 뚝딱거리는 느낌이라 내가 요가하는 모습이 흡사 대벌레와 비슷해 보일 때가 있다.

대벌레야. 살을 찌우고 근육을 키워 100일의 요가를 잘 채워보자.


 달달거리는 팔다리, 자꾸 풀리는 동공, 한없이 기력 없는 나의 몸. 체력적으로 살짝 한계가 온 것 같다. 나는 아직 초보라 숙련된 분들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하지 않고 초심자 전용의 동작으로 따라 하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여느 때처럼 그런 초심자의 동작을 하며 나와의 싸움을 고독히 하고 있을 때였다. 너무 힘들어 살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았는데, 아니, 내 앞의 회원님께서 물구나무를 서고 계신 거다! 나도 모르게 “우와” 하는 소리가 작게 터져 나왔다.


 ‘아니…… 어떻게 하신 거예요…? 뭣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동작이 나중에 저런 숙련된 동작들의 초석이 되는 동작이란 말 일 텐데, 그렇다면, 나도 언젠가 저것을 해야 한단 이야기잖아… 와, 내가 할 수 있을까?’


 정신이 혼미해지며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의 걱정 비슷한 걸 또 해버렸다. 얼마나 배워야 저 정도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해보자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180도로 물구나무를 선 사람, 90도까지만 다릴 들어 올려 물구나무를 선 사람, 나처럼 초심자 동작을 반복하는 사람 등. 각기 다른 모양으로 수련을 하고 있더라.

 ‘요가는 처음부터 무리하는 게 아니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차분히 하는 거라면 느려도 조금씩 해보면 되겠다.’

 다 같은 속도와 모양으로 물 흐르듯 끊김 없이 하는 게 요가라 생각했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꾸준한 수련을 하는 게 요가 인가 싶다.

 뭔가 오늘 매우 중요한 깨달음 같은 걸 얻은 기분이다.


 천천히 가보자, 병아리!



<14일 차>

 첫눈이 왔다. 인상 깊게도 요가를 하며 첫눈을 보게 된 거다!

 요가원엔 따스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때마침 오늘은 몸을 부드럽게 이완시켜 주는 힐링 요가 시간이었다). 요가와 첫눈이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어머~ 눈이네요!”

 “그러게요 어머!”

 “요가를 하며 첫눈이라니…”

 나는 속으로만 삼키는 말들을 적극적인 회원님들은 말로 표현하셨다.


 누워서 꽤나 특이한 자세로 첫눈을 맞이했던지라 살짝 웃기기도 했는데, 살며 기억나는 순간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힐링 요가는 편안히 릴렉싱하는 동작들이 많다. 불태우듯 근육을 쓰고 버티고 뒤틀며 땀이 뚝뚝 나는 동작들은 없지만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금요일엔 딱인 수업인 것 같다. 마무리를 이렇게 하니 꽤나 괜찮은 한 주를 보낸 듯한 기분이다.


 이렇게 또 오늘은 첫눈과 함께 요가를 했다!



<15일 차>

 15일 차다! 월요일 첫 요가시간에 출석했다. 초급반이라 그런가 나 포함 대여섯 명 밖에 되지 않는다. 좋다. 한적하고 고요하게 할 수 있겠군.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정말 우연찮게 어떤 생각의 한 꼬리가 늘어지며 갖가지 과거의 길로 인도해 버리는 그런 날. 재밌었던 추억으로 향하면 기분이 좋은데, 어떤 날은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인도해 하루 시작부터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그런 날이 있다. 이건 아마도 생각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가 가기 힘든 상황이긴 하겠지만. 종종 나는 이런 경험을 한다. 그리고 오늘이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아. 기분 별로다.’

 수치스러운 기억들이 나를 이끌고 간다. 그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뭐가 더 좋은 선택이었나. 하는 생각들로 범벅되려다 고갤 저었다.

 ‘아니. 못할 수도 있지. 못날 수도 있지. 내가 무슨, 정석대로만 바르게 흠 없이 살 수 있겠어? 신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얘기야. 요가원에 가서 그런 기억들을 다 떨쳐버리고 오자.’


 동작 하나하나를 할 때마다 그런 기억들을 날려 보내겠단 생각으로 요가를 하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쉬탕가 초급반이고 몇 번을 해왔던 동작인데 갑자기 잘 안된다. 다리가 더 당기고 근육이 더 말을 안 듣는다.

 ‘아. 원점인가.’

 내심 또 작아지려던 마음을 애써 다잡아 본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익숙해지니 긴장이 풀어져서 그럴 수도 있겠다.’


 잘 안 되는 게 선생님 눈에도 보였는지 저번보다 더 자주 내게 다가와 동작을 다잡아 주신다. 나름 이게 맞겠지, 이게 최대지, 이게 최선이지 싶은 동작인데도 선생님의 손길이 닿으면 몸이 더 늘어나고, 더 좁혀지고, 더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의 손에는 마법의 가루 같은 게 있기라도 한 걸까? 가령, 다운독 자세를 하면, 내게는 이게 최선의 동작인데 선생님께서 골반을 좀 더 뒤로 당기고 발 뒤꿈치를 잡아주고 등허리를 터치해 주면 몸이 살짝씩 교정이 된 상태에서 유지가 된다. 내가 모르는 내 몸의 공간들을 찾아서 배치를 해주는 느낌이다. 아마 혼자 했으면 이런 느낌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신기하다. 이 느낌을 기억했다가 다음번에도 살려 비슷하게 동작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쉽진 않겠지만.


 전보다 더 안되고, 전보다 더 떨리고, 전보다 더 아픈 동작들이었지만 쉽게 낙담하지 않고 오늘도 내 리듬과 컨디션에 맞게, 그러면서도 조금씩 도전을 해가며 아쉬탕가를 마무리했다.


 사바아사나를 하는데 순간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햇병아리 주제에 무슨 잡념을 떨친다고 떠들었나. 동작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욕심이 너무 많았구나.’

 요가를 할 땐 요가만 집중하는 것. 밥을 먹을 땐 밥 먹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땐 볼일 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그렇게 지금 하는 행위에 집중하는 게 제일의 명상이라 생각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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