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일 차: 아쉬탕가 선생님의 고민>
아쉬탕가 기초 수업이 있는 날이다. 어젯밤부터 ‘아 살짝 가기 싫은데’ 했던 마음은 오늘 아침이 되어서는 급기야 ‘하루 쉴까…’의 생각까지 번졌다. 하지만 아니 된다. 가야 한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끊김이 없이 갈 수 있는 날은 무조건 나갈 것!
'좋다. 가자!'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 본 요가원. 어라. 오늘은 신발장에 신발이 몇 켤레 없다. 몇 분 안 오셨나 보다. 기초반은 특이한 날을 제외하고는 참여 인원이 다른 날들의 절반 수준도 못 미쳤으니 놀랄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유독 적긴 했다. 나까지 네 명 정도가 매트를 펴고 널찍이 앉아있었다.
수업시작을 앞두고 선생님께서 나지막이 입을 여셨다.
"오늘은 유독 사람이 적네요. 갈수록 적어지는 것 같아요."
나를 포함한 다른 회원분들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고, 나는 내심 ‘나라도 오길 잘했네’라며 생각했다.
‘웬만해선 열심히 빠지지 말고 와야겠다. 적극적으로 듣는 학생이 있는 걸 알아야 이 수업도 유지가 되는 거겠지?’ 따위의 제멋대로 생각을 하는데 선생님께서 "아쉬탕가가 힘드세요? 아니면 지루하세요? 아쉬탕가가 지루해서 나오길 점점 꺼려하시는 분들도 계시대서요~"라고 물어보신다.
오! 나는 당연히 전자다! 그런데 후자처럼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대답을 해야 하는데 아무도 않길래 나서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조심스럽게 입을 떼 보았다.
"저는 아직 초보라 그런가 힘든 게 더 커요."
정확히는 "힘들지만 재밌어요!"라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밌어요?"는 질문 선택지에 없었고 나대지 말아야지 싶어 재밌다는 말은 저 밑에 삼켜버렸다. 창가 쪽에 앉으신 회원님도 입을 여셨다. 나보다는 꽤 오래 다니신 분 같았다.
“아쉬탕가가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동작을 반복하니 오래 다닌 분들 입장에선 몇몇은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처음 등록하는 초보분들이 아쉬탕가 시간엔 더 많이 계신 것 같고요. 중간중간 변형된 동작들이 들어가면 재미가 조금은 더 가미되지 않을까 싶은 제 조심스러운 생각입니다.”라고 하시며 살짝 멋쩍은 듯 웃음을 지으셨다.
나는 겉으론 그럴 수도 있겠다 끄덕였지만 속으로 동공지진이 일어났다.
‘아. 아니요. 그러면 아니 되어요. 아쉬탕가는 아쉬탕가다워야 멋있다고요!! 아쉬탕가는 각 잡힌 단계별로 몸을 단련시키는 게 매력 아닌가요. 그러면서 명상에 다다라야 하는 게 최종 목적 아닌가요. 아아. 다시 열심히 다녀야겠다. 여기 아쉬탕가 처돌이 있어요.’
처돌이라니… 나도 모르게 진심이 나와버렸다. 나 아쉬탕가 좋아하는구나…
“흠. 아쉬탕가는… 그걸 견뎌야 하는 건데. 네.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속으로 격하게 끄덕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성향이 다르니 누군가들은 지루하게 느껴질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1년 이상 배운 게 아니니 언제든 마음이 변할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런 반복되는 수련의 아쉬탕가 동작들이 너무 매력 있다. 그리고 전에 아쉬탕가와 빈야사에 대해 잠시 알아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쉬탕가에서 변형되어 물 흐르듯 플로우를 타는 동작이 빈야사다. 만약 아쉬탕가에 여러 변형 동작들이 추가가 된다면 그건 빈야사 요가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사람이 없으면 조용해서 좋다고 내심 환호했던 수업인데 선생님 입장에선 이런 고민들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살짝 요가원을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졌다. 수업을 듣는 회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해당 수업이 유지되거나 늘어날 확률이 높구나… 회원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수업들의 구성은 점점 듣는 이가 줄어들어 존속의 고민이 커질 수도 있겠구나… 어렵다. 요가 선생님들의 고민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날이었다.
‘더더욱 열심히 아쉬탕가에 나와야겠다. 동네 아는 사람들에게 요가원을 추천해야겠다. 아쉬탕가의 매력에 대해 한 번씩 전도해야겠다.’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물론 이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요가원은 잘 유지될 테지만 나를 위한 생각이기도 하다. 내가 아쉬탕가를 자주, 오래 해보고 싶어서!
새삼 선생님의 저 물음 하나로 내 마음까지 알아버린 오늘이었다.
<47일 차: 나는 정말 몸치인가 봐>
비트요가 시간이다.
‘훗. 비트요가? 오늘로 한 다섯 번째인가? 이 정도면 덜 버벅 댈 테지. 막판의 복부운동이 좀 힘들긴 하지만 이젠 쉬지 않고 다 해낼 수 있다구!’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요가원을 갔다. 시작되었어 시작되었어!
- 나 1: 어? 근데 나 왜 버벅대? 뭐야. 돌머리야? 순서를 아직도 헷갈려해?
- 나 2: 아. 당연하지. 매일 따라 하기 바쁘니 순서 따위 머리에 생각하며 하긴 했냐 네가?
- 나 1: 아니 그래도 이 정도면 몸에 좀 자연스레 익어야 되는 거 아냐?
- 나 2: 워낙 생각 없이 따라 하니 그렇지. 으이그. 고작 다섯 번 해놓고 너무 큰 걸 바라는 거 아냐?
- 나 1: 그래? 그럼 뭐… 조금 더 신경 써서 계속해 봐야지 하는 수 없네.
내면의 아이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런 나를 너무 이상하게 보지 마시길. 나는 엠비티아이도 t와 f가 번갈아 나오는 경계형 인간이다. 그래. 순서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몸에 익을 거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니 저 동작은 어떻게 저렇게 되는 거지?’
‘팔을 오른쪽으로 돌리는 건가?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손 위치는 어디지? 근데 이렇게 동작을 하면 손 위치를 잡을 타이밍이 되나? 내가 리듬을 못 따라가는 건가?’
유독 계속 틀리는 동작이 두어 개가 있는데 여지없이 오늘도 틀렸다. 저번시간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익혔다 싶었는데 그새 까먹었나 보다. 아직 감을 잡으려면 멀었다. 휴. 남들 다 팔이 바깥쪽으로 회전할 때 나만 안쪽으로 회전한다. 게다가 뭔가 다들 빠릿빠릿하게 방향을 따라 자세를 잡아가며 리듬을 타는데 나는 반의 반 박자씩 느리다.
‘이런. 누가 봐도 관심 학생인디?’
결국 오늘 또 혼자 헛웃음이 터졌다.
'제길. 거울만 보지 말자. 거울의 나와 눈이 마주치면 현타가 올 것 같아. 아, 집에 가서 유튜브 좀 찾아보고 동작 한 번 훑어봐야겠다. 이러니까 영 운동도 안 되는 것 같네.‘
안 되는 동작은 머릿속에 새겨뒀다가 집에 가서 다시 연구해 보기로 하고 열심히 따라 하다 보니 어느덧 복부운동 순서다. 오늘은 과연 끝까지 해낼 것인가! 아까 아침에 찹쌀떡 조금 주워 먹고 나왔는데 살짝 체한 것 같아 걱정했지만 문제없이 다 해냈다(후. 요가 전에 떡은 웬만하면 먹지 말아야겠다). 나의 복부가 이런 운동들에 어느덧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나 보다. 다행이다. 이거라도 잘해서. 여지없이 땀을 뚝뚝 흘리고 사바아사나까지 마무리했다. 매트를 정리하고 나가려는데 원장님이 부르신다.
“비트요가… 괜찮으세요?”
헉. 지지부진한 나의 몸뚱이에 걱정이 되신 건가.
“네네! 좋아요!”라고 대답은 씩씩하게 했다. 좋다. 좋은 건 사실이다. 다만 내 몸과 머리가 따라주지 않을 뿐.
힝.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48일 차: 그래도 힘차게 해야죠!>
오늘은 회원님들이 얼마나 오셨을까? 저번 아쉬탕가 초급반에 나 포함 네 분 밖에 오지 않았기에 오늘은 많이들 오셨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요가원 문을 열었다.
내가 세 번째였다. 수업시간은 2분여를 남겨두고 있는데 더 안 오시려나 궁금해하던 와중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늘도 역시 적은 수네요… 갈수록 적어져서 큰일이에요.”
우리는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저녁반도 이렇게 적은 인원일까 궁금했지만 혹여나 이야기가 길어질까 넣어뒀다. 수업이 임박했기 때문에…
“흠. 하는 수 없죠! 그래도 힘차게 해야죠! 수업 시작합니다.”
와. 선생님의 그럼에도 낙관적인 말들에 또 감동하며 수리야나마스카라 동작에 들어갔다. 저 말 한마디 하셨을 뿐인데 아침 분위기가 갑자기 활기차 보이는 느낌이다. 역시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상황을 대하느냐가 중요한가 보다.
나는 요즘 개인적 상황으로 마음이나 멘탈 면에서 마냥 좋진 않다. 낙관적으로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사람 사이 관계들도 허무하게만 느껴지고 평소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도 흥미가 떨어졌다. 허무감이나 무력감이 조금씩 조금씩 차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훌쩍 떠나고도 싶고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몇 달, 몇 년간 여행도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그런데 요가 시간은 다르다. 요가원에 들어선 순간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미지의 곳으로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땀을 흘리고 선생님과 회원님들을 따라 호흡에 집중하며 한 동작 한 동작해 나가다 보면 여행의 절정에 이른 듯한 착각도 빠지게 된다.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을 거부하고 싶은 때에도 요가가 좋은 도피처이자 여행낙원이 되는 것 같다. 여러모로 값진 시간이고 공간이다.
작은 매트 위에서 다른 분들과 기류를 공유하거나, 혹은 혼자서 호흡에 집중하며 성의껏 꼼꼼히 동작들을 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가벼워지고 몸까지 후련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위해 요가를 하는 것도 같다.
끈적하게 천천히- 호흡하며 씩씩하게.
비록 요가가 현실의 문제는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내게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수는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이렇게 하나 했고, 무거운 것 하나 덜었다.
<49일 차: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을 때, 요가 어떠세요?>
오늘 제목은 좀 심오하다.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을 때, 요가 어떠세요?’라니. 얼핏 보면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이 심하게 온 사람이 무언가 요가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 조심스레 추천하는 제목으로 보일 테지.
내가 우울증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기질이 우울질이 좀 있는 것은 맞는 것도 같다. 종종 기분이 가라앉고 평상시의 상태가 늘 파이팅이 넘친다거나 밝고 맑은 스타일은 아니다. 생각도 많고 겁도 많고. 헌데 기질이 그렇다 한들 쉽게 낙담하거나 무력감을 자주 느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나의 깊고 오랜 생각들도 잘 나아가기 위한 과정들이었고 내 나름 낙관적인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좀 이야기가 다르다. 쉽게 낙담하는 자신의 내면을 자주 발견한다. 무력함을 종종 느끼고 그로 인해 얕게 느끼던 우울감은 또 종종 슬픔이 되어 눈물을 따라 뚝뚝 떨어지곤 한다.
어제도 여지없었다. 이 증상은 한 2개월 정도 지속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까진 긍정적이라 생각하는 건 나는 열심히 요가를 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요가와 더불어 이렇게 글도 열심히 쓰고 있으니 아직은 희망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이 짙어진 우울감은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나 자신이 명백히 알고 있기 때문에 뭐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그것들은 절대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것들이 아니고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들이기에. 물론 포기하는 것도 내 노력 중에 하나이다. 아, 그렇다면 노력 여하가 아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걸린 일들이기에 아주 바닥까지 스스로를 갖다 박은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지금 막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감으로써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모로 글쓰기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요가에 관한 글을 보러 오신 분들은 아마 적잖이 실망하시리라. 동작이나 호흡법에 관한 이야기도 잘 없고 맨날 내 이야기만 주야장천 늘어놓으니. 그러나 나는 내 소개란에도 썼다. ‘나는 그냥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한다.’고. 요가 또한 나를 위한 행위인 거다. 나를 위해, 더 엄밀히 말하면 살기 위한 글쓰기를 한다. 우연히 그런 내 글을 본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고. 하지만 그저 그런 개인의 흔한 고군분투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그리 된다면 참 감사한 일임은 확실하다.
자. 그렇다면 본론으로 돌아와, 요가를 하면 살아있음을 느끼나요?라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몇 개월의 축적된 시간들이 있다.
오늘 새벽까지도 질질 짰다. 자다가 스스로가 답답해서,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력하단 생각에 한심스러워 축 늘어진 빨래처럼 뚝뚝뚝 물기들을 떨구며 습하고 우울한 밤을 보냈다. 하지만, 염치없이도 잠에 들었고 다시 눈을 떠 밝아진 아침 앞에 눈곱을 떼고 세수를 하고 요가복을 갖춰 입고는 요가원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제법 날이 많이 풀렸다. 늘 꽁꽁 싸매던 외투를 적당히 풀어헤치며 ‘생각 없이 요가나 열심히 하고 오자’며 요가원에 들어섰다. 빈야사 수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손끝을 모아 뻗으며 수리야나마스카라를 몇 동작하고 원장님의 플로우에 따라 한 동작 한 동작 놓치지 않고 열심히 따라 했다. 엎드렸다 일어났다 위로 뻗었다 아래로 늘어뜨렸다 하는 동작으로 인해 종종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 몸의 상태에 귀 기울였다.
‘어지러우니 조금 천천히 가자. 하지만 비틀거림은 적게 하고 싶으니 복부는 단단히 하자.’
‘이 동작에선 조금 리듬감 있게 힘을 주자.’
‘여기선 툭 떨궈 늘어뜨려보자.’
수없이 많은 스스로의 대화 끝에 최종적으로 사바아사나에 다다랐다. 힘을 풀고 누웠는데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린다.
‘쿵쿵. 쿵쿵. 쿵쿵. 쿵쿵.’
바로 곁에 누군가 누워 있다면 이 소리가 그 사람 귀에까지 들릴 것 같다. 크고 우렁차게 뛰는 내 심장소리를 들으니 살아있단 걸 새삼스레 느낀다.
심장이 뛰는구나.
내 심장은 이렇게 열심히 뛰는구나.
나를 위해 오늘도 어제도 이렇게 뛰어 왔겠구나.
무력하게만 느끼던 나 자신이었는데 심장이 아직 살아있으니 뭐든 더 해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아직 이렇게 힘차게 뛰고 있다고,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 보라고. 아직 너를 아끼는 나 자신이 여기 함께 있다고 내가 내게 말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매트라는 세상 작은 공간에서 가장 치열하게 자신을 만나고 오는 행위가 요가이다. 진짜 요가하길 잘했다. 다녀오길 잘했다. 그러니… 속는 셈 치고 요가 한번 해보세요. 혼자여도 괜찮아요. 하지만 이왕이면 선생님도 있고 땀 흘리고 호흡하는 회원님들이 있는, 치열하게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있는 요가원에 한 번 가보세요. 못해도 괜찮아요. 망가져도 괜찮아요. 적잖이 위로를 받고 온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요. 어떤 순간에 한 번씩 값진 경험이 되어 하루를 위로받기도 한답니다. 요가가 아니라도 몸을 움직여 자신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운동을 한 번 해보세요. 그리고 심장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스스로에게 위로받는 기분이 든답니다. 그리고 슬픈 기분과 우울한 감정으로 스스로를 정의 내리지 마세요. 나는 그저 그 감정과 기분을 '아는'사람일 뿐이지 그것들이 나란 사람을 정의하는 전부는 아니니까요.
<50일 차: 드디어 50일 차! 나는 무엇이 변했나?>
오늘은 50일째 요가기록을 쓰는 날이고, 오전에 아쉬탕가를 다녀왔고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자. 그래서 오늘은 무얼 쓸 것인가! 50일이면 절반을 했으니 ‘첫 시작과 다르게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가!’에 대해 기록해보고자 한다.
떨리는군.
먼저, 일정 동작의 정해진 순서가 있는 아쉬탕가 동작들을 기준으로 처음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 써보려 한다.
수리야나마스카라 동작을 시작할 때 팔이 예전보다 더 높이 쭉 뻗어지고 아쉬탕가뿐만 아니라 스트레칭 시에도 그 상태에서 살짝 뒤로 뻗는 게 첫 시작보다 자연스러워졌다. 요가 초반에는 그저 손을 모아 위로 뻗는 건데도 힘들어서 팔꿈치가 점점 구부러지며 벌벌 떨었던 기억이 있다. 팔에 힘이 붙었단 의미이다.
또한 웃타나아사나시에 손바닥을 드디어 발 옆 바닥에 통째로 갖다 붙여 숙일 수 있으며 뒷다리도 제법 쫙 펼 수 있을 정도로 햄스트링이 유연해졌다. 물론 아직 아랫배가 허벅지에 딱 붙는 정도는 아니다. 허나 연습하면 언젠가는 잘 되리라 믿는다.
아쉬탕가 첫 시작 때 잘해보고 싶었던 차투랑가 단다나 아사나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몸에 각이 잡히며 단단하고 씩씩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늘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감을 잡아가며 자주 몸에 익도록 신경 써서 하고 있는 편이다. 또한 아도무카스바나 아사나(다운독) 역시 햄스트링이 많이 유연해짐에 따라 발바닥이 바닥에 끈적하게 붙는 정도까지 해내고 있다. 물론 이 동작을 타인의 시선이 되어 판단한 적이 없으니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이젠 거의 터치가 없으신 걸로 봐서는 비교적 잘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앞 허벅지 및 무릎 쪽의 근육을 써서 동작을 유지하는 건 아직은 살짝 어설픈 편이다. 이 역시 좀 더 신경 써서 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이전 동작인 차투랑가에서 우르드바 무카 스바나아사나(업독)로 넘어가는 과정이 부자연스러워 조금 고민이다. 힘이 달려서인지 아니면 요령이 없어서인지 잘 모르겠으나, 선생님의 설명처럼 해보려고 늘 머릿속으로 동작을 그리며 진행하고 있기는 하다. 이것도 언젠간 잘 되겠지.
또한 전사자세를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으며 확실히 버틸 때 다리 힘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전사자세에서 팔을 바꿔가며 플로우가 길게 이어질 때는 아직 허벅다리가 너무 아픔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익숙해지면 괜찮을까? 일단은 아픈 게 당연한 거라 생각하며, 이걸 버티면 강해질 수 있다고 되뇌고 있다.
그리고… 파리브리타 파르스바코나아사나.
이건 아직 내게 너무 먼 영역이다. 겨드랑이가 허벅지에 잘 안 끼워져서 바닥으로 팔을 뻗고 반대 팔을 천장 쪽으로 뻗으면 너무너무 불안정하다. 유연성이 부족한 탓인지 근력이 부족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조금씩 더 나아질 거라 기대하면 마냥 싫지만은 않다. 조금씩 나아지며 자신도 모르게 동작들이 되는 그 경지가 은근 재미진게 요가인 것 같다.
그리고 또 얼마 전부터 우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아사나가 잘 되기 시작했다! 이제 드디어! 다리를 앞으로 쭉 뻗은 채 엄지발가락을 손에 걸 수 있으며 큰 흔들림 없이 옆으로 돌려 뻗어 버틸 수 있다. 이것 또한 어느 순간 갑자기 되었다. 물론 그 이후에 손을 풀고 다리만 앞으로 쭉 뻗어 버티는 마지막 동작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 또한 언젠간 잘 되리라.
아르다 밧다 파트모타나사나, 시르사아사나 등 아직 초심자와 숙련자 단계 사이 어딘가에서 머무르고 있는 동작들도 많다. 아직 갈 길이 정말 멀고 배울 것도 정말 많단 거다. 배울게 많다는 건 조금은 신나는 일이기도 하다. 천천히 차근차근해 나가야지.
쭈욱 쓰고 돌아보니, 팔 힘이 많이 좋아졌고 복부 근력도 좋아졌고 허벅다리에도 전보다 단단해짐이 느껴지며 무엇보다도 햄스트링이 정말 많이 유연해짐을 느낀다. 이만해도 정말 많이 발전했다. 어디까지나 요가 시작 때의 내 모습과 비교이긴 하지만 나름 뿌듯하다. 일단 끝까지 늘 해내는 모습 자체가 스스로가 기특하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결과인데 신기해서 이야기해 본다. 바로, 생리통이 많이 줄었다는 거다.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1년 열두 달 중 열 달을 꼬박 생리통에 시달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진통제를 달고 살았던 사람이다. 한 알은 기본이고, 생리기간마다 많게는 서너 알 정도까지도 복용을 해야만 하복부 통증으로부터 조금은 편안해지는 지경의 사람이었는데, 요가를 시작한 이후로 근 4개월 동안 생리통으로 인한 진통제를 복용한 적이 없다. 생리통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지만 찜질팩 등으로 복부를 따뜻하게 한다면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미미한 통증으로 줄어든 거다. 이건 정말 기대하지 않은 일이었고 뜻밖의 수확이었다. 그리고 원장님께서 생리기간에 요가를 하는 게 오히려 몸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던 말이 생각이 나서, 심하게 양이 많은 날이 아니고서는 요가 수업에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다만, 이 시기에는 다리를 거꾸로 들어 올린다던지 머리 뒤로 넘기는 동작은 하지 않는다). 확실히 하고 나면 하기 전 보다 골반과 하복부가 유연해지고 순환이 잘 되어 개운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훨씬 몸이 편안하다.
이렇게 돌아보니 요가를 하지 않을 때보다 요가를 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더 많은 것 같다. 요가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 긴 호흡으로 꾸준히 이어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로부터 50일 뒤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요즘 참 개인적으로 발전 없이 정체하다 못해 후퇴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고 보니 아니었다! 적어도 요가에 있어서는, 내 몸에 있어서는, 나는 꽤나 처음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해 나가고 있었다.
느리지만 꾸준하고 진득하게. 조금씩 조금씩. 나는 나아가고 있다.
못해도 괜찮고 못나도 괜찮다.
그냥 계속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