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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l 25. 2021

맥주 마시러 어디까지 가봤어?

브레게 또는 브뤼헤

브뤼헤 Brugge

2015년 10월     


여기에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쏭달쏭한 도시가 있다. Brugge. 브루게라고 부르기도 하고 브뤼헤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마도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는가 보다. 이탈리아에도 북쪽으로 가면 독일어와 이탈리어를 병행하여 사용하는 Bilingual 지역이 있다. 이탈리아어로는 볼차노라고 하고 독일어로는 보첸이라고 한다.


벨기에는 경상도보다 조금   정도의 작은 나라지만 언어에 관한  부자이다. 사용언어가 지방색이 강한 방언까지 합치면 4가지에서 10가지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로는 남부의 발롱 지역에서는 프랑스어가 북부의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네덜란드어가 사용되고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몇 가지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에 비하여 벨기에 사람들은 그다지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심지어 언어 경계선이 있는데 예를 들면 도로 건너편에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나라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그 행정력의 낭비와 비효율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지만, 이웃 강대국의 침략으로 이곳에 붙었다 저곳에 붙었다 하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하게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한가한 일요일이다. 급한 일이 없는 날이기에 아침이 여유롭다. 호텔 근처의 공원에 가서 산책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간다. 브뤼헤로 가기 위해서이다. 약간 흔들거리는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은 마치 요람을 탄 것 같아서 언제나 기분이 좋다. 브뤼헤로 가기 전에 먼저 브뤼셀 공항을 들려야 한다. 그곳에서 시작하는 브뤼헤 패키지 투어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브뤼헤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오래된 중세도시답게 역사지구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바뀐다. 예약되어 있는 호텔은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중심인 마켓 광장까지 고작 걸어서 3 거리이다. DUKE’S PALACE 근사한 이름의 호텔이었는데 예전엔 진짜 궁전이었고 지금은 호텔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운전기사가 브뤼셀 사람이라서  동네 말을 모른다. 네비를 보면서도 호텔 주차장을 찾지 못해 계속 근처를 헤매고 있다.  동네 말을 모르니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간신히 주차장을 찾고 나더니 혼자 화를 내더니 그만 껄껄 웃는다. 아마도 주차장을 찾기 어렵게 만들어 놓은 사람에게 욕을 하던 거겠지. 유럽의 골목길이 사람들에겐 정겨움을 주지만 차에게는 악몽인 곳이 많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이번 여행의 호스트인 헬레나가 반갑게 맞아 준다. 이번 여행에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와서 흥분되고, 특히 한국사람이 와서 정말 반갑다고, 자기 고향이 사이프러스인데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며 북한으로 갈 수 없는 한국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 한참 수다를 떨고 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사이프러스, Cyprus의 북쪽은 터키의 침공으로 현재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오래된 궁전을 개조한 호텔이라서 내부는 어떨까 궁금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완전히 현대식으로 꾸며 놓았다. 넓은 침대, 넓은 화장실, 유럽 호텔에서는 보기 드문 넓은 욕조까지 구비되어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근사하다. 시간이 좀 남아서 호텔 바에서 맥주를 한 잔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고 있다. 촬영장비를 잔뜩 짊어진 젊은이들이 내 옆으로 오더니 앉아도 되느냐고 묻는다. 당연히 되지. 심심하던 차에 잘되었다.     


“어디서 왔어? 촬영장비가 무거워 보이네”     


미국에서 왔단다. 유럽의 명소를 촬영해달라는 의뢰로 환상적인 여행을 하고 있단다. 며칠 전에는 페트라를 다녀왔는데 평생 그런 장엄한 광경을 보지 못했다며 너스레를 떤다. 브레넌이 팀의 리더이고 유쾌한 토니와 근엄한 카일 이렇게 세 친구가 여행과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맥주를 마시다가 유쾌한 토니가 갑자기 내일 계획을 묻는다.     


“글쎄, 특별한 계획은 아니지만 역사지구를 좀 돌아보고 성당 구경을 할까 하는데”     


자기들은 브루어리 투어를 갈 생각이다. 벨기에는 맥주로 아주 유명한 곳이라며 같이 가자고 꼬드긴다. 자기들 만드는 영상에 동양사람도 하나 끼면 재미있을 것 같다며 셋이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이렇게 나오면 거절을 할 수가 없지. 덕분에 다음 날 브레넌이 시키는 대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지나가는 척을 몇 번 하고 간단한 인터뷰 클립도 만들었다.     


양조장으로 가는 길은 운하를 지나고 초콜릿 가게와 레이스 가게를 지나며 여행자들의 발길을 자꾸 유혹한다. 20 정도면   있는 거리였지만 최대한 느긋하게 도시의 풍경을 담아가면서 걸어가고 있다. 드디어 브루어리에 도착.     


브루어리 투어 디렉터의 배가 볼록 나온 것이 아마도 맥주 때문인 것 같다면 유쾌한 토니가 소곤거린다. 이 아줌마 독심술을 하는가 보다. 자기 배가 이렇게 나온 것은 맥주 때문이 아니고 맥주와 함께 먹은 음식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도 사실은 배가 아니고 가슴이 내려온 것이라며 농담을 한다. 보기와는 달리 유머가 넘치지만 얼굴 표정이 너무 진지하다. 그래서 더 좋다.

한때는 800 개가 넘는 브루어리에서 3000 가지의 맥주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겨우 180 정도의 브루어리만 남아서 겨우 800 가지 맥주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못내 서운해한다.


맥주공장 투어가 끝났으니 이제 맥주를 마셔야 할 차례이다. 공장에 부속된 펍에 가니 벌써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맥주의 이름은 ZOT이다(한글로 쓰기 민망하다)     


“What would U like to drink? ….Hmm…..Zot, please…”     


이러고 싱글벙글 웃으니, 맥주를 잔에 부어주던 영감님도 싱글벙글이다.

방금 만든 신선한 생맥주는 과연 “존맛”이었다.     

맥주공장투어를 끝내고 이번엔 저녁때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운하 투어를 가자고 한다. 오면서 알아보니 일인당 8유로에 해설이 포함된(물론 영어라서 나에게는 큰 의미는 없겠지만) 투어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브뤼헤에도 운하가 있습니다. 물론 베네치아의 운하 같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바닷물이 도시까지 들어와서 물동량이 꽤 많았다고 한다. 점차 침적물이 쌓이면서 해안선이 멀어지게 되고 이제 더 이상 운하를 이용하여 물건을 실어 나르지는 않지만 관광객들은 이 운하를 통하여 색다른 각도에서 역사지구를 둘러볼 수 있다.      


근엄한 카일이 추천으로 시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빈민을 위한 시설을 살짝 가보기로 했다. 장난감처럼 아주 조그만 집들이지만 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아주 인상적인 곳이다. 지금도 물론 사용 중이다.     

동네 식당에서 저녁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시켜 마시면서 밤이 깊어가도록 수다를 떨고 있다. 이렇게 여행의 마지막 밤도 아쉽게 지나가고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다음날이 되었다. 그냥 떠나는 것이 아쉬워 가방은 호텔에 맡겨둔  마켓 광장으로 나간다. 수요일에는 광장에서 진짜 시장이 열린다. 과일, 생선, , 치즈 그리고 통닭집도 있다. 통닭집 마드모아젤의 미모에 홀려서 닭다리를 1 사서 먹는데 그다지 맛은 별로이다. 역시 치킨은 한국이다.     

늘 그렇듯이 여행이 마치고 나니 모든 것이 현실감이 없고 꿈처럼 느껴진다.


브레넌이 어제저녁 내게 물었다.     


“너는 이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게 뭐니?”     


“도시도 아름답고 호텔도 훌륭하고 맛있는 맥주와 음식도 먹었지만,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여기에 모인 사람들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만들고 페이스북으로 서로의 소식에 ‘좋아요’와 댓글을 달며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이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그래, 가장 좋았던 건 너희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고 도시를 돌아다니며 수다를 떤 일이었다”     

하이파이브를 했던 브레넌은 이제 조그만 스타트업의 대표가 되었다. 근엄한 카일은 수염을 싹 밀어버리고 결혼을 해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신혼여행으로는 다시 유럽을 다녀왔다고 했다. 유쾌한 토니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깔깔거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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