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낙원을 떠나다
2014년 12월 5일(금) 맑음
섬에서 아침을 맞았다. 새벽에 낚시를 따라 나서겠다는 모델 K의 계획은 저 파도의 거품처럼 사그러졌다. 새벽에 시간을 맞추어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드와 폴이 이른 새벽에 배를 타고 낚시를 나갔다고 마가렛이 알려준다. 지금쯤 돌아 올 시간이 됬다면서 해변으로 나가보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 두 어부가 아침 햇살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돌아왔다. 고기 바구니를 들여다 보니 형형색색의 이쁜 고기들이 가득 들어있다. 이쁘게 생긴 고기들이 맛은 별로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정오쯤 떠나야 하니 그 맛을 어찌 알 수가 있으랴. 저녁에 마가렛 친구들이 오게 되어있어 저녁만찬 식탁에 오를 것이다.
마가렛의 정원을 좀 더 찬찬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무슨 보물찾기하는 것 같다. 건성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안 보이고, 대신 보물찾기하듯 뒤져보면 무엇인가 보인다. 마가렛말로는 4년전 이사올 때는 정원이 휑하니 텅 비었는데 4년동안 자기가 재조성했단다. 아기자기하게 운치있게 꾸며 놓았다. 해변에서 주워 모은 DRIFT WOOD를 거꾸로 박아 세워 놓았다. 그러니 원래 나무의 말라 비틀어진 뿌리 부분이 기묘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작은 것들부터 대빡으로 큰 것 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힌두교 다신중의 하나인 지혜와 재물의 신인 가네쉬도 있다. 코끼리 두상에 팔이 적어도 4개다. 힌두교 전설에 의하면 가네쉬는 힌두교 주삼신중의 한 명인 시바의 아들인데 아비가 아들을 잘못 알아보고 목을 쳐 죽여버렸는데 아들 살려내라는 엄마 등살에 못이겨 마침 지나가는 코끼리의 목을 따서 죽은 아들 목에 붙여서 아들을 살려냈다고 한다. 그래서 코끼리 목을 달고 다닌다.
부처 두상도 얌전하게 놓여 있다. 힌두교와 불교는 각각 다른 종교인 것 같지만 그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가분 관계이다. 힌두교 출발이 당연 앞서기 때문에 불교가 당연 후발 주자가 되었다. 힌두교 주삼신이 브라흐마( BRAHMA), 비쉬누(VISNU), 시바(SIVA)인데 이 중 비쉬누신의 아바타(화신) 가 여러 명있는데 9번째 화신이 바로 사진의 고타마 부다이다. 물론 불교 입장에서는 이런 것이 좀 꿀리는 것이기에 나중에 불교교리 형성과정에서 힌두교의 여러 신들을 불교의 보살로 끌어들여 이런 열세를 만회하기도 하였다. 종교란 상대적으로 우월성을 보여줘야 끝빨이 제대로 서는 것 같아 화투판의 그것처럼 끝빨싸움에 져서는 안되는 모양이다.
정오경 뭍으로 나가는 하루 한 편 밖에 없다는 바로 그 연락선이다. 선착장이 없다보니 얕은 물까지 배를 대고 쇠다리를 걸쳐 놓아 손님들이 오르내린다. 덕분에 신발을 벗고 바지를 둘둘 걷어 올리지 않고도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마가렛이 배타는데 까지 바래다 준다고 DUNE BURGY를 태워 준다. 배 떠날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듄버기를 타고 섬 왼편 끝을 돌아서 다른 해변까지 보여준다. 섬 왼편쪽을 돌아 가보니 그곳은 바위들로 무성하다. 얕은 수심의 해변은 넓직하게 퍼져있는데 모래대신 작은 돌들로 가득하다. 돌로 가득한 해변에는 맑은 시냇물이 군데 군데 바다로 흘러 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바닷물이 다른 곳보다 더욱 더 청청한 것 같다.
12세대가 사는 섬에 쓰레기장이 없다.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담아 해변에 갖다 놓으면 쓰레기통을 수거하는 배가 와서 뭍으로 운반해 간다고 한다. 버리는 매트리스와 같이 놓여진 개스통은 재충전을 하러 뭍으로 보내는 모양이다.
배 출발시간이 거의 되니 여기 저기서 승선객들이 한둘씩 모여든다. 마가렛 아지매가 끝까지 찐하게 배웅을 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가렛과 모델 K의 사진을 배 위에서 찍었다. 인연이 되면 언제 담에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일까? 배에 올라 섬을 바라보는 해변의 경치가 못내 아쉬워 떠나기 전 다시 몇번 더 보아 주어야 할 것 같다. 이제 떠나면 언제 후일을 다시 기약할 수 있는 것일까? 마치 정든 님을 이별하듯 아쉬운 작별의 순간이었다.
상층 갑판 위로 올라가면 따끈따끈한 햇볕을 쬐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우리도 갑판에 올라가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지상낙원의 섬 GKI가 점점 멀어지고 청청 해변의 모래사장만 하얗게 보인다. 연락선 의 스쿠루가 만들어내는 하얀 물보라가 배가 지나 온 길을 보여준다. 그런 길은 기억 속에서 곧 잊혀지게 마련이고 기억의 창고 저 깊숙한 곳에 잠시 저장되어 있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추억으로 남아있다가 나중에는 기억날 듯 말듯 그렇게 잊혀 질 것이다. 새로운 추억거리인데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희미해지겠지. 섬에서 1박 2일의 추억은 이렇게 하얀 물보라와 함께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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