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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May 04. 2016

지노 배낭여행기 - 아프리카편 16

Jozani Chwaka Bay 국립공원

11/08/2015(일)


  조자니 국립공원


잔지바르에 있는 유일한 국립공원으로 여기하고 박물관가보려고 하루 더 잔지바르에서 죽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을 단단히 호텔에서 먹고(숙박료에 포함) 로칼버스타러 어제 가 본 Market으로 걸어갔다. 잔지바르 Stonetown의 길은 거의 미로에 가깝다. 길이 막힌 것 같다가 가보면 열리고 분명 길이 있을것 같아 막상 가 보면 닫혀있다. 길 찾는데 도가 턴 나도 어제 간 길을 더듬어 보는데 애를 먹었다. 물어 물어 로컬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지노가 미국 국립공원통이다. 미국와서 장기간 여행하고 싶은 사람은 미국 국립공원 안내서 한 권만 사서 56군데 공원만 다 돌아도 성공한 셈이다. 미국 구경꺼리는 56개 국립공원과 뉴욕, LA, 시카고등 큰 도시뿐이다. 그래서 어디 다른 나라로 배낭 여행가면 국립공원은 가급적 가보려고 한다. 그래서 하루 더 있기로 하였다.


국립공원 입구 표지판


입구에서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


엄청나게 큰 국립공원. 거의 울창한 산림지역으로 관광투어 하기에는 힘들게 되어있다. 겨우 원숭이 관람과 산림 산책이 고작이다.

버스가 바로 국립공원 입구에 세워줘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니 Visitor Center가 나온다. 별 볼 것도 크게 없는데 입장료를 미화 10불이나 받는다. 대신 관람객 4-5명당 무료로 가이드를 한 명씩 배정해서 원숭이 관람과 가구목으로는 제일이라는 마호가니와 팜오일나무가 무성한 울창한 숲을 가이드가 안내한다. 여기에 두 가지 종류의 원숭이가 있어 약

40-50 마리 정도가 가족형태를 유지하며 서식하는데 3-4 마리의 숫컷이 무리를 이끌어 간다고 한다. 손바닥만한 알라(애기) 원숭이가 어미 젖을 시도 때도 없이(무시로) 쫄쫄 빨아 대는데 어미가 다른 나무로 이동할 때는 새끼를 가로채서 배에다 착 달라 붙게하고 나무를 뛰어 넘는다. 원숭이 얼굴이 작고 시커머틱틱해서 나도 사진 찍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Red Colobus monkey와 Sykes

monkey가 두 가지 종류의 원숭이로 그 중 Red Colobus는 잔지바르에서만 서식하는 종으로 여기 국립공원에서만 서식하는데 약 2,350 마리 정도로 매우 희기종 원숭이이라고 한다.


어미 등에 껌같이 달라붙은 새끼 원숭이(Red Colobus monkey)


얼굴이 검어서 카메라 노출 맞추기가 힘들다(Sykes monkey)


제일 가까이이서 잡은 얼굴 모습으로 두 눈알만 퀭하다


새를 비롯 동물 사진 찍을 때 제일 유의할 점은 촛점을 눈에 맞추어야 한다.(2010.11.03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근교 바투동굴사원에서)


공원 안에 있는 오솔길을 따라 숲속에 서식하는 원숭이 보러간다


가구목에 제일이라는 마호가니 나무들




  잔지바르 최대의 시장에서 몰카를


로칼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 가는데 잔지바르에서 제일 큰 시장에서 정차하여 오랫동안 손님을 기다려 태우는데 엄청나게 많은 인파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여기서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서 몰래한 사랑처럼 살짝 살짝 모르게 많은 사진을 훔쳤다. 주로 히잡을 쓴 여인을 대상으로 하고 눈만 내놓고 다니는 "차도르" 입은 여인을 찍으려고 하였는데 여기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결국 시장터에서 히잡쓴 여인을 두 명정도 찍었다. 차 안에서 시장터에 복작거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별미였다. 구경꺼리란 다른게 아니고 그들의 일상을 간간이 훔쳐보는 것이다. 원래 시장터가 다양함과 생존의 각축장으로써 우리들에게 신선한 에너지를 주는 곳이 아닌가. 이 곳 시장터도 그러한 활기를 불어 넣기에도 충분한 인파와 다양성이 공존하는 장소로 이국적인 시장의 풍경을 질리도록 보았다.


아침에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얼굴 표정이다. 남편하고 한바탕?


회교국의 전통적인 의상들


                   (시장터에서 만나는 현지인들)





  무슬렘 여인들의 복장


무슬렘 여인들의 복장에 대해서는 머리에 쓰는 '히잡'과 몸을 감싸는 '차도르'가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 좀 더 보수적인 여자들은 두 눈만 내놓고 전부를 검은 천으로 덮는 복장이 있는데 이를 '부르카'라고 한다. 오늘 여기 시장터에서 부르카 복장을 한 여인들을 찍었는데 그런 부르카를 입은 여자는 보기만 해도 어쩐지 섬뜩한 느낌을 받는데 집에서는 어떻게 하고 지내는지 그것도 몹시 궁금하다. 중동에서 몇년 살다가 온 한국 아지매 밴친이 전하는 바로는 집안에서 여자들끼리 있을 때는 시원하게 벗고 있다가 남편이나 외부 사람이 들어오면 황급히 눈만 빼고 가린다고 한다. 운동이나 조깅할 때도 부르카를 걸치고 한다고 하니 그놈의 율법이 뭐시라고 사람을 잡는지 알 수가 없다.


시장터에서 몰카로 잡은 부르카 복장의 여인들




  혼자서 노는 조자니 마을의 아이들


바로 공원 입구가 신작로이기 때문에 많은 차들이 왔다 갔다하는 교통량이 꽤 많은 곳이다. 여기에 노점상이 있는데 옥수수를 굽거나 쪄서 파는 아지매, 수박이나 토마토, 오이를 파는 남자 행상, 옥수수를 구워파는 다른 아지매로 공원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 지켜보니 많은 차들이 멈춰서서 먹거리를 사 가지고 간다. 그 옆에 콧물 찔찔 흘리는 2살 남짓한 애와 그보다 한 두살 많은 남자 애가 둘이서 잘도 논다. 물어보니 엄마가 장사에 바빠 그냥 둘이 놀게해놓고 잘 있는지 한번씩 눈길만 주는 모양이다. 배도 출출한 김에 구운 옥수수와 방울 토마토 한 봉지와 수박 두 조각으로 점심을 떼웠다. 완전 건강식으로 배를 채운 셈이었다.


공원입구에서 먹거리 파는 행상과 둘이서 잘도 노는 코찔찔이




  딱지떼는 현지 교통 경찰들


어느 나라나 문제가 되는 것이 교통 경찰인 모양이다. 여기서도 중간 중간에 경찰들이 체크를 하는데 희안하게 운전면허증이나 차량관련 서류는 보여 달라는 소리없이 운전수에게 이름만 묻고 경찰 수첩에 적기만 하고 따로 딱지라고 주는게 없다. 한번은 경찰이 운전수에게 이름을 묻고 수첩에 적어 가니까 운전수가 남자 차장에게 뭐라고 소리치니까 돈을 가진 남자 차장이 얼른 경찰한테 뛰어가더니 한참이나 있다가 와서 저그끼리 무슨 말을 주고 받았다. 후진국일수록 이런 부패상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아프리카 대부분이 아직 이정도 수준에 있는 것 같다.


길목마다 위치하여 불법 차량을 단속하는 가장 무서운 새로 일명 짭새라 한다




   명색이 국립 박물관이란 것이


공원을 다녀와서 짜투리 시간을 내어 잔지바르 국립박물관을 찾았다. 명색이 국립 박물관이란 곳이 이 정도 수준인 곳은 여기가 처음이다. 말이 국립이지 탄자니아 전체를 대표하는 박물관은 아니고 잔지바르 지역 박물관이라 해야 맞는 표현이다. 아무것도 없고 옛날 술탄들의 사진과 그들이 살았던 왕궁의 사진과 그들의 집기와 가구들과 잔지바르가  인도양에서 지정학적으로 어떤 위치에서 교역이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역사적으로 독립되었는지 그 정도만 소개하고 있다. 유물은 다 팔아 먹어 울릉도 호박엿 바꿔 먹었는지 하나도 없다. 별로 사진찍을만한 것도 없다. 혼자서 아래 윗층으로 들락거렸다. 들어가면 입장료만 몇 불 날린다. 비강추.


잔지바르 국립 박물관


박물관 앞에 전시된 대포



1대부터 11대까지 숱탄들의 사진을 전시해놓고 있다. 1대는 그래도 52년간 잘 해먹었는 것 같은데 마지막 11대는 2년만에 물러난 것 같다. 그 이유가 앞편에서 이야기한대로 1964년 본토의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합병하여 탄자니아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현철고순. 조선 27대 우리 왕순서다. 이것도 모르면서 남의 나라 잔지바르 술탄 11대를 포스팅하면 욕 한바가지가 날아 오겠지.


인도양에 위치한 잔지바르


9-14 세기경 인도양을 중심으로 한 교역 루트


술탄이 거주했던 각 방들의 집기 비품들


박물관 3층 베란다를 통해 본 인도양


박물관 3층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인도양





  현지 언어 몇마디 배우고


잔지바르에서는 거의 무슬림족이 많아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탄자니아는 독립한 후 영어를 공용어로 하지 않고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였다.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원주민어에 아랍어를 일부 혼합하여 만든 언어로 중부 아프리카에서는 민중들이 널리 사용되는 언어이다. 몇마디 배웠다.

앗살라무 알레이쿰 (당신에게 평화가) 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왈리쿰 살람 (당신에게도 축복이) 이라고 대답한다. 이 두마디는 아랍어이다.


나꾸벤다웨웨(당신을 사랑해)
잠보(잠 많이 자는 잠티가 아니라 영어의 hello )
하바리야코(how r you)
카리부(welcome)
크와헤리(good by)
투타오나나(see you)
아산떼 (thank you)
베가니=씽가페(how much) 이상은 스와힐리어





  록그룹 퀸(Queen)의 리더보칼 프레디의 고향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1991)는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영국 록그룹 퀸의 리드 보컬이다. 그의 노래중  〈Bohemian Rhapsody〉 와 <We Are the Champions〉이 널리 알려져 있다. 잔지바르가 당시 영국 식민지로 여기 총독부에서 근무하는 아부지땜에 여기서 출생하였다. 1남1녀의 장남으로 원래 이름은 파로크 불사라(인도어)였으나 중고등학교를 인도 뭄바이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10년 동안 공부했는데 이때 학교밴드를 조직해 키보드를 연주하면서 프레디란 애칭을 사용하였다. 1964년 잔지바르에서 일어난 아프리카인의 아랍인과 인도인에 대한 배척운동으로 가족들이 영국으로 이주하여 영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영국으로 건너간 프레디는 여러 그룹을 전전하다 1970년 결성된 록그룹 퀸에서 리드보컬을 맡아 안정된 음악생활을 시작하였다. 1976년 발표한 불후의 명곡 <Bohemian Rhapsody>로 세계적인 록그룹으로 우뚝 서게된다. 이 때 찍은 찍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뮤직비디오가 세계 최초의 뮤직비디오로 기록된다. 그후 1977년 6집에 수록된 <We Are the Champions>이 다시 대박을 내며 그룹의 전성기를 보내게된다. 그렇게 잘 나가던 프레디가 1991년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으로 45살로 지구를 완전히 떠났다. 근데 잔지바르에 오면 프레디 생가라고 건물 앞에 한자 써놓고 장사하는 집들이 서너군데 된다. 아무도 모른다. 정확하게 어디가 프레디가 출생한 장소인지. 전부 장삿속으로 프레디 생가라고 우기면서 밥벌어 먹는다. 실제로 잔지바르 주민들은 프레디에 대해서 별 기억할만한 인물로 보지 않는것 같은데 그 이유가 첫째는 무슬림 율법에 반하는 동성 연애자이고 둘째는 1964년 잔지바르와 탕가니카가 통합할 때 프레디가 기를 쓰고 통합 반대운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JH-



그룹 Queen의 대표곡 Bohemian Rhapsody


열창하는 프레디 머큐리


머큐리 하우스라고 허접한 포스트 한 장 붙여놓고 장사하는 상점


탄자니아 수퍼스타들의 공연 포스트. 보통 입장료가 25천 실링으로 미화 약 12불정도인데 소득대비 엄청 비싼 티켓값이다.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


<담편 바로가기>

아프리카편 17 - 사파리 전초기지 Arusa

https://brunch.co.kr/@jinhokim/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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