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박물관
가파른 도동약수공원을 힘들게 느릿느릿 올라가면 케이블카 타는 곳이 나오는데 바로 그 옆에 있다. 관람하는데 무료니까 부담없이 꼭 들어가서 보고 나오는게 울릉도 관광 포인트의 하나이다. 일단 독도에 관련한 모든 정보가 총망라되어있어 그간 우리가 몰랐던 독도의 역사와 지식을 한눈에 보여준다.
1층으로 들어가면 정면 벽면에 타일로 구운 그림들이 가득차 있다. "I LOVE DOKDO" 란 제목으로 18세 이하 재미교포 학생들을 대상으로 2012년 공모한 작품중 수상 작품을 모아 타일로 구워 벽면에 장식한 것이다. 개발새발 그린 것부터 제법 그림답게 반뜻하게 정성을 들여 완성된 작품도 있다. 그들의 하나같은 통일된 구호는 "독도는 우리땅"이다. 고사리 손들도 하나같이 그렇게 외치고 있는데 노오란 다깡 (단무지)들이 아직도 갓난 알라(애기)처럼 칭얼대고 있으니 이 일을 우찌해야 좋을련지.
1층 전시실에는 독도가 예전부터 조선땅이었다는 각종 자료를 보여준다. 생전 처음보는 고지도들이 총망라되어있다. 그리고 울릉도 독도 역사란 제목으로 한 면 가득히 시대별로 글로 요약된 것이 있어 간추려보면 이렇다.
245년: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옥저의 노인이 말하기로 고기잡이하다 표류되어 동쪽 섬에 닿았는데
그게 알고보니 우산국이었다.
512년: 신라 지증왕 13년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 정벌.
930년: 고려 태조13년. 울릉도에서 토산물로 진상.
1018년:현종9년.동북 여진족이 우산국을 침입.
1019년:현종10년. 여진침략으로 도망나온 울릉도민을 고향으로 귀환.
1022년:현종13년. 피난온 울릉도민을 예주에 정착.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울릉도를 무릉도로 불렀는데 당시 강원도 관찰사가 관리했다고 한다. 특이한 사항은
1696년:안용복 일행이 울릉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태수와 담판하여 조선영토임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별도로 안용복의 활약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안용복은 부산 동래 출신 어부로 1693년, 1696년 배로 일본으로 건너가 호끼슈 (현 시마네현) 태수를 만나 담판을 하여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확답을 받았다. 1697년 도쿠가와막부는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이며, 불법 월경을 금지하겠다"라는 서한을 보내옴으로써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림으로 안용복 일행들이 건너간 행로를 보여준다.
요즈음 한국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세일링에 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김승진선장이 단독 무기항 세계일주에 나서서 211일 만에 세계일주를 마치고 귀항하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바 있었다. 42피트 (13미터)짜리 세일링 요트를 혼자서 몰고 2014년 10월 19일 충남 왜목항을 출발하여 남태평양 피지를 지나 칠레 남단 케이프혼을 지나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이번 지노 배낭여행기 아프리카편에서 소개된)을 돌아 인도양 대해를 거쳐 인도네시아 순다해협을 통과하여 211일만에 2015년 5월16일 원래 출발하였던 왜목항으로 돌아와서 세계 6번째로 무기항.무원조.무동력으로 세계일주 기록을 세웠다. 어느 항구에도 정박하지 않고 누구의 도움없이 오직 바람으로 항해해야하는 규칙을 준수하면서 41,900 키로미터(26,188 마일)를 주파했다.
김승진 선장이 세계일주한 요트 ARAPANI호. 아라(ARA)는 순우리말로 바다를 뜻하고 파니(PANI)는 달팽이로 속도가 느린 세일보트를 "바다의 달팽이"로 이름지었다.
세일링에는 여러가지 경기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다이나믹하고 강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경기가 SINGLEHANDED SAILING으로 혼자서 세계를 일주하는 경기이다. 김선장처럼 혼자서 (SINGLE-HAND) 요트를 몰고 지정된 세계일주 코스를 누가 빨리 주파하는가가 경기 핵심이다. 같이 출발하기 보다는 따로 출발해서 누가 신기록을 세우는가 하는 것이고 남자 여자별로 누가 어린 나이에 세계 기록을 갱신하는지도 경쟁하는 부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런 기록을 깨기위하여 각국의 많은 세일러들이 오대양을 누비고 있다.
세일링의 선두 국가들이 주로 유럽 국가들로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에 미국, 호주,뉴질랜드등이 강자이다. 올림픽이나 축구 월드컵보다 훨씬 역사가 긴 요트 국가 대항전인 AMERICA’S CUP만 보더라도 세계의 해양강국들이 이 컵을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물량의 돈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다. 우승하게 되면 해양강국으로 인정받게되어 요트 산업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다. 다행히 한국도 다음 아메리카스컵에 출전한다고 하니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한국도 요트 산업을 활발하게 발전시켜 요트를 대중 스포츠로 자라나게 해야 한다.
재미있는 기사를 외신에서 접했는데 이런거다. 어린 나이에 싱글핸드로 세계일주 기록을 갱신한 여자가 있었는데 아마 15세 몇개월 나이로 세계일주를 한 것이다. 그런데 법원이 그 여자애 부모를 아동 학대죄로 고발을 한 것이다. 이유는 학교도 안보내고 홈스쿨로 대체하고 순전히 명예를 위해 고런 나이에 혼자서 배타고 큰 바다로 내보내는게 부모로서 도리에 맞지 않다는 이유이다.
싱글핸드 요트 경기에서 갈수록 경쟁이 되는 부문이 10대들의 기록싸움인데 여기서는 누가 빨리 시간을 단축하는가가 아니고 누가 어린 나이에 혼자서 세계를 일주하는가가 기록싸움이다. 현재가 15세 몇개월이 세계 신기록같은데 이걸 깨기 위하여 오늘도 십대들이 부유한 부모님의 지원하에 바다에서 바람을 다스리는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십대에 이런 요트를 몰고 세계 일주에 도전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을 습득하려면 걷기시작하면서 기저귀차고 부모님 요트위에서 크면서 항해에 따라 다니면서 요트의 모든 기술을 몸으로 터득해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인으로 요트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 있다. 독도 박물관에서 본 안용복에 비하면 시대적으로 한참 후배이지만(약 300여년) 그 업적으로 보면 최초의 한인 세계일주 항해이다.
내가 미국 S그룹에서 허벌나게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인 1997년 6월 8일 조그마한 세일보트 (9.2미터. 30피트) 한 척이 부산항에 입항하였다. 3년 5개월전에 이 배가 미국 LA항을 출발하여 하와이 - 호주 - 남아프리카- 파나마 운하 - 태평양을 건너 부산항으로 들어왔다. 총 항해거리 7만여 km. 배이름은 선구자2호. 스키퍼(선장)는 한국인 강동석으로 당시 28세로 24세때 LA항구를 떠난 셈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처럼 국적이 미국인으로 재미 교포다. 그래도 하도 장한 일을 하다 보니 한국인으로 소개되고 한인 최초 싱글핸드로 세계일주한 요트인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강동석은 초딩 5학년때 부모님따라 미국 LA로 이민가서 UCLA 2학년 때인 1989년에 한 일본인이 1964년 태평양을 요트로 단독 횡단한 뒤 그 항해일지를 책으로 발간하였는데 그걸 읽어보고 요트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열심히 노력하여 1990년 11월에 8.7미터 (28.5피트) 소형 요트(선구자1호)로 LA에서 하와이를 거쳐 북태평양 횡단에 성공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마침내 8년 뒤에는 세계 일주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마도 부모님도 요트에 취미가 있었고 아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그런 쾌거를 달성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일주에 성공한 뒤 기자들이 가장 어려운게 무엇이었는지 질문하니 동석이가 멋쩍게 말하기로 "외로움" 이었다고 말하는데 그런 "외로움"을 운명의 혹처럼 주렁주렁 달고 사는 나에게 아마도 요트로 혼자서 세계 일주하는 것도 닥상(제격)일련지도 모르겠다. 올해로 벌써 46살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동석이가 요즘은 무얼하는지 소식이 없어 궁금하다.
~~~~ 내가 사는 여기 버지니아 비치에 아는 형님 한분이 세일보트를 타는데 한번씩 나를 볼 때마다 농담처럼 한마디 던지시는데 "어이, 미스터 킴. 나랑 배타고 독도갈래" 그러신다. 그래서 잘하면 세일보트타고 독도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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