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 국립공원 2
11/12/2015(목) 맑음
세렝게티 2일째로 오늘도 어제에 이어 Game Drive 나간다. 밤새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길에 나가보니 물이 고인 곳이 많았다. 세렝게티가 지금부터 우기에 접어들어 비가 잦다고 한다. 그러나 해가 뜨면 어제 내린 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프리카의 태양은 아침부터 서서히 대지를 달아 오르게 한다. 차만 타고 하는 사파리이기에 중간에 내려서 걷거나 별다른 활동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피곤하다. 나만 피곤한건지 아님 다들 피곤한데도 그걸 참고 재미가 있어 사파리에 참가하는지 알 수가 없다. 솔직히말해 나는 차타고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Game Drive가 억수로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하도 유명한 곳이라서 한번 들러본 것이고 사파리 투어비를 이미 내었기에 따라 다니면서 사진이나 찍는 것이다. 동물 그 자체를 보고 싶다면 뉴욕에 있는 BRONX ZOO에 가보는게 훨씬 많은 수의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어제 아침에 새로 두 명이 추가되었다. 어제 아침에 식당으로 가는데 가이드겸 운전수가 나를 불러 세운다. 오늘 새로 2명이 추가 되는데 내가 수고를 좀 해줘야겠다고 부탁을 한다. 그냥 조인해서 같이 타고 다니면서 구경이나 하면되지 내가 별도로 수고할게 뭐 있을까 싶었는데 다른게 아니고 커플 두 명이 귀도 안들리고 말도 못하는 농아라고 하며 미국 국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슨 전달사항이 필요할 때 나보고 필담으로 알려주라고 한다. 내가 국적은 미국맞는데 행동거지는 한국인처럼 하는데 불쌍한 미국국민의 도우미가 되라고 하니 별로 내키지는 않는데 우리팀에 미국 국적이 나밖에 없어니 할 수 없지 않은가. 첨으로 하는 사파리 여행에서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뭉실하게 피어 오른다.
중국이나 북한 공산당 전당대회가 나오는 뉴스를 보면 무슨 안건을 표결에 부치면 한명도 빠짐없이 전부 오른손에 빨간 당원수첩을 들어 올린다. 오늘 나도 그런 포즈를 한번 취해보았다. 빨간 당원 수첩대신 짙은 Navy Blue의 미국 여권으로 들어 올렸다. 우리팀 식탁에 가니 첨보는 젊은 남녀가 앉아 있길래 공산당원이 하는 식으로 여권을 오른손으로 들어 올렸다. 이건 뭘 찬성한다는뜻보다도 니캉 내캉 같은 편(미국시민)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농아나 맹아등 핸디캡들을 보면 얼굴 모습에 약간 그런 흔적이 남아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 젊은 여자애는 그런게 전혀 없고 몸매도 호리한 편이고 얼굴도 호감을 주는 편이다. 남자애는 선입견을 가져서 그런지 입술근처 부분이 약간 그렇고 키도 크고 몸매도 여자애처럼 호리한 편이다.
제목만 보면 어머 별꼴이야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그저께 저녁에는 Wifi도 펑펑 쏟아지는 파노라마뷰 캠핑 라지에서 2인 1실 원칙으로 같은 방을 배정해 주길래 내가 부탁해서 우리는 커플이 아니니까 따로 달라해서 겨우 따로 하룻밤을 잤는데, 세렝게티 국립공원부터는 텐트로 캠핑해야 한다. 뻰질한 벨기에 커플이나 오늘 새로 조인한 미국인 핸디캡 커플들은 같은 텐트에 자는게 당연하겠지만, 나와 마리아는 커플도 아닌데 같은 텐트에서 자라니까 조금 난감했지만 배낭 여행 고수가 이 정도 난국은 쉽게 넘어 갈 수 있다. 2인에 1개씩 텐트가 배정되어 텐트 여분이 없단다. 근데 마리아도 지금까지 배낭여행 많이 해 봐서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장기 배낭 여행객이나 적은 돈으로 여행하는 대학생들은 guesthouse 에서 기숙사형 도머터리에서 숙박하는데 요금이 싸다. 도머터리도 2인실부터 18인실까지 있는데 한 방에 침대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요금이 싼 대신에 조금 시끄럽고 번잡스럽다. 이렇게 도미터리에 잘 때는 남녀 구분없이 혼숙을 해야 하니 나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여간 어제는 마리아와 같은 텐트 안에서 혼숙을 하였다. 그리고 태양은 아무일도 없었듯이 아침에 다시 환하게 떠 올랐다.
사파리 차 안에서 마리아가 Hyun Ok이라고 셀폰에 찍어 가지고 나에게 물어본다. 무슨 뜻이냐고. 옥은 Jade인데 '현'자가 무슨 한문인지 알 수 없어 그냥 좋은걸로해줬다. Clever 하다고 ...... 현자나 현명하다고 할 때 그 현자이겠지하고 짐작을 해서.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20년 전에 한국가서 입양된 서류를 추적해서 자기 이름이 김현옥이고 고향이 울산이라는 것을 알아 내었다고 한다. 입양에 대해서 궁금했지마는 막상 내 입으로 물어보기도 뭐 했는데 본인이 스스로 말해주니까 고맙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면서 영어로 abandon 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슬픔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나타났다가 곧 사라저버렸다. 부모님을 찾았는지 묻지는 않고 지금도 연락하냐고 물었더니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는 조금 감정이 북받치는 억양으로 엄마가 나를 길거리에 버린거예요,
그래서 날 왜 버려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한국에 가서 서류를 찾아본거지 부모를 만나기 위해서 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내가 어떤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적절한 말들이 그냥 머릿속에서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십대에 너 정체성을 알고 그걸 극복하는데 힘이 많이 들었겠구나하고 한마디 던졌더니, 그녀는 그냥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잠시 어색하고 미묘한 감정이 교차되는 시간이 흘렀다. 내가 먼저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정리하기위해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 주면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런 힘든 과거를 알면서도 그걸 잘 극복해서 오늘의 너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었고, 우리가 이렇게 세렝게티 초원에서 만나 혼숙도 하고, 너가 좋아하는 여행(마리아가 세계 여행하면서 주로 하는게 스쿠버 다이버로 제법 고수급에 드는 것 같다) 하면서 남들 못하는 스쿠버 다이버도 하고 어느 누구집 딸 못지않게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지 않으냐면서 진부하면서도 덜말라서 추진 오징어 냄새같은 고리타분한 소리만 지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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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편 21 - 세렝게티 국립공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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