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추에서 Leh까지
2016년 7월 30일 (토) 맑음
오늘도 아침 7시경에 출발한다고 해서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천막식당에 가보니 짜이(밀크티)밖에 없어 티 한 잔 그걸로 아침을 때웠다. 이른 아침 일어나는 것에 알레르기가 있는 모델K를 깨워 마지막 산길을 달렸다. 이른 아침인데도 해는 벌써 높이 떠서 사방천지로 밋밋하게 펼쳐있는 돌산을 따끈하게 내리쬐고 있다. 여기 산속의 날씨가 그렇다. 햇빛을 바로 받으면 더위를 느끼지만 그늘로 들어서면 그냥 시원함을 느낀다. 차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자연바람으로 더위를 식힌다.
길은 거의 비포장도로이다. 차창밖으로 내다 본 그곳의 풍경은 오지의 황량함과 때묻지 않은 처녀성의 아름다움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길을 달리면 마른 먼지가 풀풀 일지만 푸른 하늘아래 그 누구의 발길도 허락하지않고 원시적 처녀성을 지니고 있을 것만 같은 먼 산들의 자태가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 속에 오롯이 그대로 묻혀있었다.
원시적 황량함과 태고적 아름다움을 함께 간직한 북인도 오지의 풍광밖에는 눈에 들어 오는 곳이 없는 그런 산속이다. 풀 한포기 자라지 않은 그런 벌거숭이 산들이지만 그래도 푸른 하늘아래에서는 거칠은 아름다움은 잃지않고 우뚝 솟아있다.
높은 산의 허리를 타고 구비구비 돌아가는 길을 구글지도로 찾아보니 위와 같이 나온다. 길이 지그재그로 표시되어 있다. 길을 내려갈 때는 몰랐는데 다 내려와서 저만치에서 뒤를 돌아보니 구곡양장을 지그재그로 넘어 온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넘어온 산길중에 여기가 제일 구비치는 길이었던 같았다.
사추를 출발해서 팡(Pang)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고개로 높이가 4739m나 되어 마날리-레 구간에서 3번째로 높아 이 곳을 통과하는 차량들 중 대부분이 정차하여 인증샷 한 판씩 하고 가는 곳이지만 다른 휴게소처럼 가게나 화장실도 없다. 고개 위에 표지석만 둥그라니 하나 서있어 잠깐 정차하여 기념사진만 남기고 휑하니 가버린다. 아침 햇살에 맑은 공기가 잘 구어진 포테이토칩처럼 상큼하고 바싹바싹 하였다.
Nakee 고개를 이번에는 내려가는 길이다. 강건너편으로 보이는 황량한 돌산이 갑자기 기암괴석으로 변해갔다. 전형적으로 메마른 기후에 긴 세월의 풍화침식 작용이 빚어낸 조물주의 작품이다. 제일 흔하게 보이는 형상이 윗부분이 탑처럼 뾰족하게 변모하여 거대한 탑이나 웅장한 성채모습이다. 버스가 길게 돌아나가는 산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는 동안에 시시각각 변하는 풍광으로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한가지 인상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 왔는데 사선의 산중턱에 성채같은 형상을 한 것으로 미국의 어느 국립공원에서 본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늦은 점심을 가진 휴게소 마을 Pang을 지나고부터 큰 강을 사이에 두고 새로운 풍광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두고 이런 형상으로 변모되는지 시간의 무한함에 새삼 놀랄 뿐이다. 이런 광활한 자연을 보지도 않고 인간 수명이 70년이 또는 80년이 기니 짧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대자연 앞에 서서 인간이 뽐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가졌던 욕심과 욕망, 헛된 사랑과 미움, 위선과 거짓 그런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나중에 다시 스물스물 기어올라 목까지 차겠지만), 지금은 그저 경이와 감동의 눈으로 자연을 흠모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잠시나마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고 가슴이 탁 트이는 희열을 맛보았다. 이런 것이 위대한 자연에서 얻어지는 힐링인가 보다.
탕그랑고개를 넘기전에 4200m 해발고도의 Pang이란 휴게소에서 휴식과 점심시간이 있었다. 이제는 무엇이라도 위 속을 채워야 할 것 같아 휴게소 간이 식당을 찾아 티벳음식의 일종인 "뚝바"를 시켰다. 우리식으로 보면 국수인데 뜨거운 국물에 각종 야채와 국수를 말아 먹는데 국물맛은 비슷한데 면이 설익은 것처럼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냥 식도를 넘어가서 조용하게 위나 창자속에 남아 있기를 기원할 수 밖에 없었다.
Pang 휴게소나 어제 지나온 징징바(zingzingba) 휴게소같은 곳은 정착된 마을은 아니고 마날리-레 도로가 열리는 5월부터 9월 사이에만 영업하는 임시 휴게소같았다. 도로가 폐쇄되는 기간동안에는 찾는 이가 없기 때문에 이런 허허벌판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기가 힘들 것이다.
높은 산들의 허리를 구비구비 돌아서 버스는 탕그랑고개위에 멈춰섰다. 나도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고개 위에 섰다.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는 무언가 다를게 있을가 싶어 깊게 심호흡을 해 보았더니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기념 인증샷을 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몇 발자국을 걸었더니 숨이 금방 차 왔다. 이 길을 서로 오가는 차량들이 전부 다 여기 고개 정상에서 쉬어간다. 그러다보니 여기서 제일 인기있는 모델은 모델K가 아니고 고개 표지석이다. 모두들 그녀와 함께 인증샷을 남기려고 분주하다.
순서를 기다리며 차례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노오란 탕그랑고개의 표지석이 오색 깃발의 타르촉에 묻혀 하늘 위로 떠 있다.
모델K와 함께 고개 표지석 앞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 내가 웃고 있어도 웃는게 아니야. 불현듯 리쌍의 그런 노랫말이 생각났다. "내가 웃어도 웃는게 아니야, 내가 걸어도 걷는게 아니야." 금방이라도 고개위에서 푸른 하늘 아래로 쓰러질 것 같았다.
고산증세를 이기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고개위에 서서 좌우를 둘러보니 높은 산들이 지척에 깔려있다. 모두 시원하게 벌거벗고 속살을 환하게 드러낸 민둥산이지만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하다. 아직도 만년설을 정상 부근에 갖고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얼굴을 스쳐가는 고개에서 마주하는 바람이 에어컨을 돌린 그것처럼 매우 차가웠다. 한동안 그대로 서서 바람을 한껏 몸으로 느껴 보았다. 갑자기 삶의 피곤함이 차가운 바람에 실려와 고개위에서 나와 같이 머무는 것 같았다. 문명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북인도 첩첩 산중에서 현대인(다른 의미의 현대인이 아니고 주거환경이 괜찮은 편인 미국 버지니아에서 생활하는 한 사람인 의미로)이 삶의 피곤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거운 삶의 무게를 잠시라도 잊고 벗어나기 위해서 일상을 떠나 지구 반을 돌고 돌아 그것도 부족해 첩첩산중을 돌고 돌아 탕그랑고개위에 섰는데도 인생살이가 썩 재미있거나 즐겁지 않다고 하면 분명 어디가 잘못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인생 그 자체의 본질을 너무나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혹 아닐까? 인생살이가 원래 그런 것이거니 하고 한마디 불평도 없이 묵묵하게 살아야 하는게 맞는 것일까? 탕그랑고개의 시린 바람이 총맞은 것처럼 머릿속을 휑하니 뚫고 지나갔다.
탕그랑고개 정상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버스는 계속 산길을 따라 달려갔다. 고개 근처 몇 곳에만 만년설의 형태가 남아있고 이제는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여름에는 만년설이 차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제일 높은 곳을 무사하게 통과했다는 안도감에 모두들 들떠 있었다. 버스는 계속 마른 먼지를 일으키며 산길을 돌고 돌아가고 있었다. 돌산이지만 산의 경사가 가파르면 한 쪽면은 마치 고운 모래를 채쳐서 뿌려 놓은 것처럼 매끈하게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터어키 카파도키아지방에 있는 괴뢰메라는 곳에는 장구한 풍화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바위들이 야릇하고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가는 길에 그런 비슷한 돌형상을 몇번 보았다. 황량한 돌산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모습들이 여기 타그랑고개길에서 볼 수 있었다.
고개가 높아서 그런 것일까? 탕그랑고개에서 바라본 푸른 하늘이 유난히 높아 보였다. 먼 산들의 정상에는 한여름에도 눈들이 남아있다.
예로부터 이곳에 Ladahk 왕국이 있었다고 한다. 그 왕국의 도읍지가 Leh로 우리가 가고 있는 목적지이다. 여러번 체크 포인트가 있어 운전수가 서류를 들고 왔다 갔다 하였다. 차량 번호판부터 달라진다.
HP라 해서 Himachal Pradesh의 약자로 북인도 산간지방으로 우리가 어제 출발한 Manali부터 Leh들어오기 전까지의 지역을 커브하는 주이며, Leh 가까이 오면서부터는 주가 Jammu & Kashmir주로 바뀌는데 파키스탄과 중국과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도 최북단에 위치한 주이다. 지금도 파키스탄과 인접한 지역에는 독립을 요구하는 파키스탄 반군과 인도 정부간에 투쟁이 끊이지 않은 불안한 지역으로 여전히 화약고의 불씨처럼 위험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마을이 모래바람이 한바탕 휘돌아 가는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 황량한 높은 산들이 사방팔방으로 병풍처럼 에워 싸여 그 속에 덩그러니 놓여진 사막속의 오아시스 마을같았다. 그러나 마을이 거의 티벳풍으로 마치 티벳에서 마을을 이리로 옮겨 놓은듯한 인상을 받았다. 마침 석양 속으로 묻혀가는 한 폭의 마을을 운좋게 잡을 수 있었다. 위로는 콧물을 찔찔거리며 그리고 밑으로는 아프고 쓰라리게 노란 수채화를 그려가며 이 곳까지 달려온 보상이 앞으로 이런 것들이라면 괜찮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북인도 최북단에 자리잡은 황량한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Leh 마을이 서서히 누런 석양에 묻힌다. 드디어 사막을 지나 오아시스 마을로 들어섰다. 내일은 오아시스에서 시원한 감로수를 떠 마셔 볼 수 있을련지.... 곧 짙은 어둠이 시장터의 일수쟁이처럼 어김없이 찾아왔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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