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날리로
2016년 8월 5일(금) 쾌청
어제 아침에 Leh를 출발해서 하루 종일 황량한 북인도 오지를 돌고 돌아 해가 지기 전에 모리리 호수 마을에 있는 텐트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고산 증세는커녕 하루 죙일 차만 타서 갑갑했다는 모델 K는 마을 구경이나 가자고 채근하길래 다른 일행에 딸려 보내고, 나는 고산병 증세로 팍 삭은 파김치가 된 육신을 침대에 눕혔다. 저녁 생각도 없이 바로 곯아떨어졌다.
오늘 아침을 마치고 다시 짐을 챙겨 다람살라로 가기 위해 일단 저번에 Leh로 출발했던 마날리(Manali)로 길을 잡았다. 정상적인 북인도 여정이었다면 이번처럼 마날리를 두 번 거치지 않게 되어있는데 캐시미르 지역의 비상 상태로 어쩔 수 없이 우회하여 다람살라로 가게 되었다.
이른 아침 바싹 마른 시원한 공기를 맡으며 모리리 호수마을을 떠나 마날리로 향하였다. 어림잡아
240-50km를 달려야 오늘 종착지인 마날리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포장된 평지나 비포장도로라 할지라도 꼬불꼬불한 구곡 양장의 산길이 아니라면 그 정도 거리쯤이야 반나절도 걸리지 않겠지만 북인도에 걸쳐있는 험한 산중의 비포장도로는 어림이 없다. 속도보다 안전에 유의하다 보니 세월아 네월아 하며 달려갈 뿐이다.
람사르 협약 (Ramsar Convention)으로 알려진 습지 협약은 1971년 유네스코에 의해 설립된 정부 간 환경 협약으로 1975년에 발효되었다. 주요 목적은 습지대에 자생하는 동식물을 보호하여 습지 생태계를 청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습지대를 멀리서 구경만 하고 길을 재촉한다.
얼마 가다 학교 운동회 운동장에서나 나부낄 오색기가 펄럭이며, 그 밑으로는 하얀 긴 천들이 서로 묶여 있는 타르촉을 만났다. 근처에 흩어져 사는 유목민들이, 우리네 시골에서 오다가다 성황당 앞 키 큰 고목에 두 손 모아 빌고 가던 풍습처럼 여기에서 마음으로 제각기 소원을 빌고 간다.
타르촉은 불교 경전을 적은 오색의 천을 줄에 매달아 놓은 것으로, 오색의 의미는 하늘과 땅은 청색과 노란색으로,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태양은 흰색과 빨간색으로, 마지막으로 땅에 가득한 초목은 녹색으로 표시한 것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을 색상화한 것이다. <타르>는 티베트어로 건강, 재산, 행운 등이 점점 크진 다는 의미이고, <촉>은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풍습은 7세기경 인도에서 티베트로 불교가 전래하기 전부터 티베인들이 믿었던 토착신앙 뵌교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이라도 한다.
룽따는 높은 솟대에 타르촉처럼 경전을 적은 오색천을 매달아 바람에 펄럭이게 하는 것으로 타르촉처럼 세로줄로 연결치 않고 높은 장대에 매달아 바람에 나부끼도록 되어있다. 티베트어로 <룽>은 바람이고, <따>는 가축인 말을 뜻하여 <바람의 말>로표현할 수 있는데, 오색천에 새겨놓은 심오한 부처님의 말씀이 바람의 말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를 기원하는 바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오보는 흙이나 돌로 쌓은 재단을 뜻하는 몽골어로 뜻은 <돌더미>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미 쌓인 돌더미에 돌을 추가하면서 소원을 갈구하는 것은 우리네 시골 풍습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티베트나 몽골이 아닌 다른 나라 오지를 여행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돌무지가 있는 것을 보는데 이는 길의 방향을 표시하는 일종의 지형지물로써 그리고 여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돌무지인데 모양이 사람이 팔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다. 보통 Inuit stone man이라고 부르는데 이눅슈크(Inukshuk)라고 한다. 북미대륙의 추운 지방인 알래스카에서 캐나다 극지역과 그린란드에서 발견되는 돌무지 형태로 방향을 표시하는 이정표로, 부족 사냥 구역을 표시하는 경계석으로 때로는 식량 저장소 위치 표시로 사용된다고 한다.
Moai상으로 유명한 칠레령 이스터섬에서 마주한 돌무지로 화산석 특유의 구멍이 숭숭한 돌방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부족의 수호신 역할은 모아이 석상이 맡아 왔으니 저 돌무지는 그런 쪽으로 숭배되었지는 않은 것 같고, 돌무덤도 아니라고 하니 정확한 기능이 무엇인지 모른다.
역시 이스터섬 해안가에서 보았는데 정성스레 쌓아 올린 탑 같았다. 17세기 가톨릭이 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원주민들이 저 돌탑에다 바다에 나간 어부들의 안전을 빌었다고 하는데, 모아이 석상한테 빌면 되지 왜 저런 돌탑에다 두 손 모아 기원했을까? 혹시 신분의 차이 때문에 신분이 낮은 이들은 감히 모아이 석상에게 빌 엄두가 나지 않아 속 마음 편하게 돌탑에다 발원하지 않았을까? 혼자만의 수줍은 추측이다.
사진의 말라빠진 강이 인더스강 지류라고 한다. 히말라야 북쪽 티베트의 남서쪽 카일라스 산맥에서 발원하여 인도 북부 카시미르 지방을 거쳐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라타크 산지를 1,100km 횡단하다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파키스탄 본토를 관통하여 마지막으로 아라비아 해로 흘러드는데 총길이가 2,900km로 갠지스강보다 훨씬 긴 강이다. 건기라서 그런지 이름에 비해 실개천 같은 수준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계곡 사이로 마치 돌로 지은 성채처럼 장구한 시간 속에 형성된 기묘한 돌탑들이 눈길을 끌었다. 도대체 얼마나 길고 긴 세월이 흘러야 저런 모습으로 환생이 되는지..... 돌고 도는 억겁의 시간 속에서 현재도 진행형으로 이어지는 작업일 것이다.
나는 여러 여행길에서 저런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고 순전히 자연의 힘으로 형성된 조물주의 작품을 만날 적마다 시간의 개념을 생각해보곤 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가장 빠른 초부터 가장 긴 시간 단위인 년보다도 저런 자연현상을 쉽게 수긍할 수 있는 굉장한 시간 개념이 불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刹那)는 가장 짧은 시간의 개념으로 순간적인 생각의 길이를 말하는데 염(念)이라고도 한다. 손가락 한번 팅구는 것을 탄지(彈指)라 하는데 1 탄지는 400염이니까 1 탄지를 약 1초로 보고 찰나를 초로 환산해보면 0.0025초쯤 된다. 그래서 찰나를 머릿속으로 스쳐가는 한 순간을 잡을 수 있는 극히 미세한 시간의 개념이다.
이와 반대로 가장 긴 시간의 개념으로 겁(劫)이 있다. 겁(劫)은 우주가 만들어졌다가 소멸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요새 시간으로 보면 대략 43억 2천만 년쯤 된다고 한다. 그러나, 겁이란 시간 개념은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것으로 마치 미적분의 적분 개념과 같은 무한대의 시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불교에서는 이런 무한한 겁의 개념을 몇 백 또는 몇 천억년이란 시간으로 말하기보다 다음과 같이 개자겁(芥子劫)과 반석겁(磐石劫)이란 개념으로 설파하고 있다.
개자겁(芥子劫)이란 개념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 유순(由旬) -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소달구지가 통상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로 약 8km - 크기의 성에 겨자씨를 꽉 채우고, 백 년에 하나씩 꺼내어 까먹을 때 그 겨자씨가 다 없어지는 시간을 말한다.
반석겁(磐石劫)이란 개념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 유순(由旬) -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소달구지가 통상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로 약 8km - 크기의 돌방구를 무명천으로 백 년에 한 번씩 문질러 돌방구가 문드러져 없어지는 시간이다. 상상이 되십니까?
이러한 무한대에 가까운 겁(劫)의 시간이 산술적으로 점점 증가하게 되면 아승지겁(阿僧祇劫)이라고 하는데 아승지(阿僧祇)는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이렇게 10배 수로 헤아려 갈 때 60번째에 해당하는 숫자로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배낭여행 다니면서 마주한 엄청난 조물주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아래에 몇 점 소개하니 위에서 알려준 겁(劫)의 개념으로 감상해 보시길 바란다.
점차 눈에 익은 지형지물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Pang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저번에 올라갈 때
마날리에서 설사와 감기로 굶다가 여기 팡 휴게소에서 티베트 음식인 뚝바(일종의 칼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모리리 호수를 거쳐 어느 산길로 빠졌다가 Pang 근처 어디에선가 Manali-Leh highway로 들어선 것 같았다. 지도를 보니 마날리까지 약 115km 정도 더 가야 한다.
Pang 휴게소는 아니고 근처 Zingzingbar라는 곳의 휴게소로 기억된다. Pang 보다 조금 내려와서 만난 휴게소로 주변 산야에는 녹색빛이 생명의 심벌처럼 싱그럽다.
여자들 악세세리에 별 주의를 기울이는 편은 아닌데, 이 아지매의 귀걸이를 보는 순간 “참, 이쁘다”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조그마한 노아란 금붙이가 북인도 오지의 휴게소 아낙네의 귓볼에서 댕그랑거리며 돌아가는 것을 보니 그 어느 도시 여자가 치장한 것보다도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 장신구를 탐하였는지 잠시 내가 티베트 여자가 되어 그런 귀걸이를 양귀에 달고 티베트 오지의 여인네들과 한담을 나누는듯한 꿈을 꾸어 보았다. 후딱 정신을 차려보니 설마 내가 호접몽(胡蝶夢)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겠지?
차창 밖으로 연이어지는 풍광을 보고 있노라니 저 길들은 어디서 발원하여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였다. 본래 길이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나와바리(영역)를 차차 넓혀가면서 개척하여 얻는 부산물이었다. 그 길을 통하여 다른 지역과 물물교환 등의 교역을 통하여 문화와 문명이 전파되고 답습되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꽃피워 왔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가는 이 길도 그런 범주에 일부분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실크로드의 지도를 찾아보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고 모든 길은 실크로드로 통한다는 것이다.
북인도의 이런 길들이 결국 어디로 이어지는지 문헌을 찾아보았다. 북인도의 Leh가 10세기경 라다크 왕국의 수도였다. 수도 Leh가 인도 북부지역인 펀잡지방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실크로드의 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대상들이 일 년에 약 만 마리 정도의 말, 쌍봉낙타나 야크에 교역품을 싣고 선봉장 가축의 방울소리를 울리면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교역로인 Karakoram 고개를 넘어 실크로드 본선과 이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Leh로 연결되는 지선임에 틀림이 없다. 라다크 왕국의 지배 영역이 어디까지 인지는 잘 몰라도 교역품들을 낙타나 야크 등에 싣고 주변의 대상들도 저 길을 따라 Leh로 향했음에는 분명했을 것이다.
왼편 창가에 앉아 카메라를 창밖으로 밀어내어 아랫길을 담았다. 저 아래 굽이치는 길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산 정상으로 난 길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 구름도 제대로 넘지 못하고 산 정상에 반쯤 걸쳐 있어 우리랑 같이 사이좋게 넘어가려고 하는가 보다.
오늘도 하루 종일 달리는 버스에 앉아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보니, 어느새 시인의 마음이 되어 길을 노래한다. 이 길을 다시 한번 더 볼 수 있을련는지는 장담할 수는 없어도, 다시 한번 더 보고 싶다는 내 맘은 바람찬 흥남부두의 금순이처럼 굳세다. 나 말고도 일반 여행자들이 그렇게 다들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길을 떠나면서 다시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머릿속으로 가늠해 보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이별의 슬픔을 진하게 느끼려고 짐짓 표정연기를 하는 것일까? 다시 돌아오겠다는 기약 없는 이별의 말을 남기고 떠나는 연인은 99%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 지나온 산길들아, 다시 돌아온다는 내 말도 믿지 말고, 굳세어라 산길아!
제목: 길
시인:천상병
길은 끝이 없구나
강에 닿을 때는
다리가 있고 나룻배가 있다
그리고 항구의 바닷가에 이르면
여객선이 있어서 바다 위를 가게 한다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이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
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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