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세라트 사원에서(1)
2009년 11월 7일(토) 맑음
사실은 내가 여기를 가보려고 화(禍)를 당한 바르셀로나 도시를 대충 때우고, 빵구난 계돈 뭉쳐서 야반도주하는 계주처럼 왼쪽 뒷 눈(백미러)도 없는 one-eye Jack(애꾸눈) 벤즈를 몰고 해가 떨어지는 저녁 무렵에 몽세라트 사원으로 향하였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약 35킬로 떨어져 멀지는 않지만 해발 1229미터 산 중턱에 자리 잡아 해가 서산으로 떨어진 후에는 꾸불꾸불한 산길을 달리는 것이 식은 죽먹기는 아니었다.
일단 산길이라 야간 운행에는 주의를 요한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근처로 배낭여행을 오게 되면 여기는 절대 빼먹지 않고 들려야 한다. 이를 강추라고 하나.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여기로 오는 교통수단으로 자가운전 외에 기차나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당연 자가운전하기에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기차나 버스 운임에 사원 뒷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나 산악 철도 왕복 요금이 포함된 특별 패키지 할인 요금이 있다고 하니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잘 알아보셔야 한다.
숙소도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달려왔기에 어디 근방에서 마땅한 잠자리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사원안에 호텔이 있다고 해서 저녁 늦게 바로 체크인해서 차 트렁크에 있는 포도주를 꺼내 반 병을 혼자 마시고 오래간만에 숙면하였다.
나는 알코올 문화를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다. 여름철에 목이 마르면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나 꺼내 목을 추기는 정도고, 포도주는 간혹 해산물 안주가 좋을 때 한 잔 정도 하는 초보 주당이다.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들어와서 슈퍼마켓에 가서 진열된 포도주 가격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미국 포도주 가격의 1/3 내지 1/2 정도였다. 견물생심이었을까, 처음에 한 두 병 사서 호텔에서 저녁에 혼자서 와인 글라스 반 잔을 홀짝홀짝 마시고 잤더니 잠도 잘 오고 아침에 일어나도 상쾌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자주 마켓에 가기 귀찮고 차 트렁크도 크고 해서 한꺼번에 한 다즌으로 12병을 박스로 사서 싣고 다녔다.
주당들은 잘 알겠지만, 760ml 한 병을 와인잔에 가득 채우면 남고 모자람 없이 딱 3잔 나온다. 첨에는 반 잔으로 시작한 음주 습관이 한 잔으로, 조금 더 가다 보니 2잔으로
여행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는 3잔으로 매일 밤 한 병씩 깠다는 말이었다. 일단 포도주 가격이 싸고,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해 비싼 프랑스 와인을 미국에서 마켓에서도 박스채로 사마셨던 기억이 있다.
사원내 호텔은 흡사 중세기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기거했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인용 침실이라 그런지 방이 무척 작았다. 침대도 혼자 누우면 좌우로 뒤척일 공간도 별로 없고, 단순하게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방 안의 꾸밈도 없이 침상 옆에 혼자 앉아 책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나무 책상과 의자만 달랑 놓여있어, 마치 중세 수도원 수도사의 생활을 보여주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후드 달린 회색의 수도사 옷을 걸치고, 나무 책상 위에 희미한 촛불이나 하나 밝히고, 벽에 걸린 예수 수난상 십자가를 보며 무릎 꿇고 앉아 묵상에 잠기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래도 하룻밤 편하게 자고 갈 수 있는 방이 있어, 오늘 저녁 하루는 그 옛날의 수도사처럼 경건하게 묵상으로 하루를 마감하려고 하였고, 숙박비도 세금 포함해서 75유로 정도이니 다른 어느 호텔에 비해서도 저렴한 편이었다. 그래서, 호텔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속세와 떨어져 경건한 산속에 위치한 수도원에 피정온 것으로 여기고 참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몽세라트 수도원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산악철도로 정상에 올라
산악철도의 일종으로 cable railway 또는 funicula(강삭철도)라고도 불린다. 주로 경사가 급한 산악지대에 선로를 깔고 강삭(강철 케이블)을 위에서 풀거나 감는 방식으로 철도차량을 내리거나 올린다. 유럽과 아프리카 몇 나라에서 이런 방식의 푸니쿨라(강삭철도) 방식으로 가파른 경사면에 설치된 산악철도를 볼 수 있다.
산악철도 표를 사는데 다른 말 할 필요 없는데도 매표원이정상 ROUND TRIP까지 사라고 한다. 가만 보니까 편도표만 사서 정상에 올라가서 걸어서 내려가도 될 것 같은데 시간이 꽤 걸릴 것만 같았다. 7.75유로 내고 그냥 왕복표를 구매하였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악철도 표를 사는데 어느 중년 부부의 영어가 귀에 들리는데 많이 듣던 영어로 미국 본토 발음의 영어였다. 나의 영어 발음은 경상도 사투리가 가미되어 별로이지만 하도 미국 본토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미국을 떠나 해외여행할 때 만나는 미국 토박이들의 영어는 귀에 속속 들어온다.
중년 부부의 얼굴이 누런 구릿빛으로 선탠을 많이 해서 그런 건지 햇빛에 오래 노출되어 그런 건지 무척 건강해 보였다. 이번 대화를 경상도 버전으로 옮겨본다.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 아이씨 아지매 어디서 왔는기요?
- 캘리포니아에서 왔어예. 아지매가 대꾸하였다.
- 미국요, 아이고 반감심대. 지는요 혼자서 버어지니아에
서 왔서애. 만나서 반갑심데.
- 우째 혼자서 크루즈여행으로 왔는기요. 옆의 아지매가
다정스럽게 물어왔다. 부부는 미국서 출발하는 크루즈
선박으로 대서양을 건너 지중해로 들어왔다고 한다.
- 언지예. 지는요 미국서 런던으로 뱅기로 날아와서 차렌
트해가지고 도버해협을 건너 파리로해서 피레네산맥을
넘어서 스페인으로 포르투칼로 저기 아래동네 아프리카
모로코까지 갔다가 십겁하고, 다시 돌아나와 지중해 해
안으로 해서 유럽 국가들을 한 바퀴 돌아볼 예정이라예.
장기간 자동차 여행한다고 자랑스럽게 주절거렸다.
- 아이고 혼자 운전하는라고 씨겁하겠네요.
- 맞심다. 운전하는 데는 쪼매(약간) 욕보는데요, 좋은 구
경 할라카 먼 까짓것 이런 것쯤이야 감수해야 하겠지예.
머리 털나고 혼자서 처음 하는 초보 유럽 자동차 여행인
데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세계 여행자처럼 떠벌
렸다.
- 언제 돌아가는데예? 아지매가 친근하게 다시 물어왔다
- 집에 갈라 카먼 아직도 한 달 이상 더 있어야되예.
- 아이고 쑤악해라. 우찌 혼자 그리 오래 돌아다니는기요
아지매가 진정으로 동정하는 말투로 위로하였다.
- 마아, 하다 보니 그리됬네예. 괜찬심더.
- 구경 잘하고 몸성히 돌아가이소. 아지매의 덕담 한마디
에 나도 두 분의 무사 여행을 기원하며
- 예, 아지매 아이씨도 구경 마이 하이소.
산악 철차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 가면 수도원 건물이 저 밑으로 점점 멀어져 갔다. 케이블카 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케이블카는 사방이 틔여 있어 공중에 매달려 있다는 기분이 드는데, 강삭철도는 지면에 붙어서 가기에 그런 허공에 떠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정상에서 트레킹
산악철도를 타도 정상까지는 가지 않고 산 중턱까지만
데려다준다. 그곳에 내리면 트레킹 코스가 3개 가 있다.
1시간, 50분, 20분짜리 트레킹 코스가 있다. 아침 일찍 올라왔으니 시간이 넉넉할 것 같아서 1시간짜리 트레킹 코스로 호기 있게 올라갔다가 중도에서 샛길을 찾아 서둘러 돌아와야 했다. 이유는 호텔을 12시에 체크아웃해야 하는데 1시간짜리 트레킹 코스를 왕복으로 갔다 와서 내려가면 시간이 맞지 않을 것 같아 빨리 돌아오려고 샛길로 접어들었다가 죽실나게 고생만 하였다. 밑에서부터 케이블카나 산악철도 없이 걸어 올라가는 2시간짜리 코스가 있는데 수학여행 온 현지 고등학생들이 그 길로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내려가면서 한 30명쯤 되는 그들 일행과 마주치는데 헬로 하는 놈, 니하오마, 곤니찌와가 나오는데. 야들아 다 틀렸데이. 정답은 안녕하세요.
정상으로 가까이 가니까 진짜 바위산들이 보기에도 폼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몽세라트 뜻이 여기 지방어로
톱니산이라고 한다. 잘 보면 산의 우뚝 튀어나온 바위 모양이 톱 이빨처럼 들쑥날쑥하게 생겼다. 약 3만여 개의 톱니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기기묘묘한 돌산 몬세라트의 정상을 보니 성지 같은 성스러움이 뿜 뿜 뿜어 나왔다.
시간 되면 정상으로 가서 바위까지 올라 가 보고 싶었다. 높지도 낮지도 않게 최고봉은 1236미터 정도였다. 그 옛날의 은둔자들이 바위에 구멍을 파서 거주한 흔적을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전설 따라 삼천리
몽세라트에 다음과 전설이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 백작 기프레에게 착하고 이쁜 따님이 있었는데 그만 마귀가 들려 백작의 속을 태우고 있는 중에 몽세라트 수도자 프라가리가 퇴마술에 용하다 하여 9일간 그에게 보내 퇴마를 하려고 하였는데 이를 시기한 마귀가 순례자로 변신하여 프라가리를 충동질하여 수도자가 그만 처자를 범하고 말았다. 겁이난 수도자는 증거 인멸로 그만 처자를 죽여 땅에 파묻어 버렸다. (이런 스토리는 미국 옛날 영화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와 같은데 한국 드라마에서도 몇 년 전에 유사한 스토리로 <젊음이의 양지>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다. <젊은이의 양지>란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기 출세욕을 위해서 숭고한 첫사랑을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현대 젊은이의 그런 약삭빠른
세태를 비꼬는 말이다. 힘든 음지보다는 쉽게 출세할 수 있는 그런 배경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양지를 찾는다는 것인데 영어로는 A PLACE IN THE SUN인데 팝송도유명하고 영화도 유명하다) 결국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한 수도사는 교황에게 이실직고하고 처분을 바랐는데, 벌은 신이 용서할 때까지 몽세라트에서 네발로 기어 다니는 곰으로 변신하게 하였다. 어느 날 기프레백작이 몽세라트로 사냥을 나왔다가 수도사가 변신한 곰을 포획했다. 곰을 궁으로 데리고 잔치를 여는데, 기프레백작의 다른 여식이 곰의 포획 줄을 풀어주며
- 걸어라, 이제 너의 죄는 사했노라. 하니까 곰의 형상이 수도사 프라가리 모습으로 돌아왔다. 수도사는 백작에게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처자를 묻은 곳을 알려주었다. 그곳에 가보니 예쁜 장미꽃이 펴 있었다. 수도사가 그 장미꽃을 꺾어니 그 죽은 처자가 다시 원래 이쁜 모습으로 돌아와서 가족과 상봉을 했다는 그런 해피엔딩 전설이다.
재미있는 이 이바구는 관광가이드 책에도 없고 발품 팔아 정상에 올라가니 그곳에 조그마하게 전시관 비슷한 것을 꾸며 놓았는데 그곳에 영어로 기록되어 있길래 메모해 가지고 온 것이다.
산은 별로 높지는 않지만 정상은 온통 톱니 모양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안내 기록에 의하면 이런 바위 덩어리 약 3만 개가 몽세라트를 덮고 있다고 한다.
산 위에는 저런 등산로가 때로는 가파렇게 만들어져 있다..
가장 긴 1시간짜리 트레킹 코스를 가다가 호텔 첵 아웃 시간이 임박해, 중간에서 험한 샛길을 찾아 부랴부랴 다시 산악철도 타는 곳으로 내려와 사원으로 내려오니, 아침에 올라갈 적에는 시간이 일러 관광객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사원 광장이 아침부터 올라온 관광객으로 엄청나게 붐비고 있었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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