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킴 Jun 25. 2021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20

몽세라트 사원에서(2)

몽세라트 수도원 광장

푸리쿨라(강삭철도)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니 아침에 버스나 기차 또는 자가용으로 올라온 관광객들이 그제야 시끌벅적하다. 모두들 사원 광장 앞에 삼삼오오 모여서 기념 인증샷 찍기에 바빴다. 위 사진이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광장인데 모두들 여기서 성인들 동상이 서있는 벽면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사원이 산 중턱에 있어서 벽면 뒤로는 절벽으로 되어있어 저 끝에 서면 뒤로 몽세라트 산속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붐비는 인파를 지나치는데 귀에 쏙 들어오는 언어가 들려온다.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앞서 걸어가는 영감님 보고하는 말인즉,

- 이것 좀 묵고 가입시다. 아마 아침 식사를 거르고 올라오면서 먹거리를 들고 오신 모양이었다. 영감님 왈,

- 나중에 먹지 뭐. 한인 노부부 2쌍이 사원 구경하러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고 성당 앞에 가니 익숙한 언어가 또 들려왔다.

- 여기서 나 좀 찍어줘.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까 한국 아가씨 2명이 성당을 배경으로 서로 한방씩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이번에도 꿀 벙어리처럼 그냥 지나쳐 버렸다. 처음 그것을 볼 때는 둘의 단체 사진을 멋지게 찍어주고 싶었는데 순간적으로 이기적인 맘으로 변해 버렸다. 나도 빨리 호텔 첵 아웃하고, 성당 내부 사진을 챙겨야 하고, 성당 옆에 있는 미술관에도 어서 가고 싶어서 동정심을 헌신짝처럼 던져 버렸다.


 

성당 입구 전경

몽세라트 수도원의 초석은 1023년에 놓아져서 수도원 모습을 갖추었는데, 1811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거의 파괴되었다가 19-20세기에 다시 재건되어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모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스페인 가톨릭 3대 성지중의 하나로 년간 3-4백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전 편에 소개한 스페인 최고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도 그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건축하기 전에 이 사원에서 영감을 받아 대성당을 설계하였다고 한다.

성당의 전체 규모는 다른 유명 성당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성당 입구에 새겨진 예수님과 12사도상. 예수님을 중심으로 좌우로 6사도가 각각 새겨져 있다.


성당 입구에 새겨진 십이사도 조각상

여기 성당 내부의 하이라이트는 제단 이층에 모셔진 성모 마리아상으로 아기 예수님을 무릎에 안고 있는 형상으로 재질은 나무인데, 전해오는 바로는 누가 성인(Luke)이 만들어서 베드로 성인이 서기 50년경에  이리로 옮겨 왔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상 원본은 어디론가 숨겨져 버렸고, 지금 성당에 모셔진 것은 탄소동위원소 측정법으로 연대를 분석해보니 12세기에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에스콜라니아 소년 합창단


에스콜라니아 소년합창단 성가 모습

여기 몽세라트 사원은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세계 3대 소년 합창단 중의 하나인 에스콜라니아 소년 합창단이 있어 약 14세기경 창단되어 지금까지 월~목요일에는 13:00, 18:45  2회, 금요일 13:00 1회, 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11:00 12:00 18:45 3회, 토요일에는 공연이 없다.

합창 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약 1500:1의 경쟁률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교육이 없는 스페인에서도 단원이 되기 위해 음악학원을 다녀야 한다고 한다. 세계 3대 소년 합창단에는 이외 빈 소년합창단,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이 있다.





      La Moreneta 성모 마리아상


본당 이층 중앙에 모셔진 검은 성모마리아상. 자세히 보면 오른손에 들린 구슬을 만질 수 있도록 보호유리에 구멍을 뚫었다

카탈루냐(스페인 동북부에 위치한 광역 자치주로 주도는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으로 숭배받는 <검은 성모 마리아상>은 9세기경에 몬세라트의 동굴에서 마을 양치기 소년들에 발견되었다는데, 라 모레네타(La Moreneta)는 나무로 만든 목조 조각상으로, 성모 발현과 기적 운운 등의 얘기로 신성시되어 스페인 3대 성지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라 모레네타의 뜻이 이 지방언어 카탈루냐어로 <검은 것>이란 말로 카탈루냐의 수호신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앞에서 보면 표시는 안 나지만 성모상 전체가 투명 유리로 보호되어 있지만 오른손바닥에 놓인 구슬은 만지면 효험이 있다는 속설 때문에 그 구슬만 만질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다.

 

#스페인 3대 성지: 몽세라트 성당과 더불어 1681년 사라고사에 건축된 필라르(Pilar) 성당과 순례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산티아고 순례길 끝에 있는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는 곳에 세워진 콤포스텔라 성당이다.


백인 위주의 사회였던 가톨릭 문화권에 몽세라트 사원에 모셔진 검은 마리아상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혹자는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문화권이 일부 스페인의 그것에 가미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혹자는

처음에는 얼굴과 손이 흰색이었는데 양초의 그을음이나

화학적인 채색 변화로 색깔이 변하자 아예 검은색으로 채색했다는 주장도 있다.






    폴란드의 또 다른 검은 성모상


몽세라트 사원의 검은 성모상이 세계 유일무이의 검은 성모상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폴란드 중부 도시 쳉스토호바에는 폴란드 최대 순례지로 꼽히는 야스고나라 수도원이 있는데, 언덕 중턱에 세워진 수도원 성당의 중앙 제단에 안치된 검은 성모상에 매년 전 세계로부터 약 500만 명의 순례객이 기도하러 찾아온다.


야스고나라성당 벽면 장식(인터넷 사진)

이 성당의 한쪽 벽면에는 여기서 기도해서 완치된 소아마비나 장애자 환자들이 더 이상 필요 없어 성당으로 보내왔다고 하는 목발과 장애인들이 사용했던 의족이나 보조 장치들이 기적의 증거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기도해서 완치되어 더 이상 필요 없는 보조 도구들을 성당에 자발적으로 봉헌해서 걸어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유명 재활병원의 인터넷 광고를 보는 것 같아 좀 찝찝하였다. (믿음이 반석처럼 신실치 못해서 그런 걸까?)



기념품점에 있는 검은 성모상으로 나무로 조각되어 있다

미술관 기념품점에 동일 사이즈로 만든 유사품이 있어 가격을 물어보니 물경 1270유로로 당시 환율로 환산해 보니 환화로 이백만 원 정도였다. 희한하게 성모 마리아와 그 아들 예수님의 얼굴과 손들이 검게 되어있어 흑인으로 묘사

된 것이 특이하였다. 그리고, 성모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구슬을 만지면 소원 성취가 된다는 속설이 있어 많은 순례객들이 본당 이층 중간에 모셔진 성모 마리아상을 보기 위해 길고 긴 대기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몽세라토 사원 본당 내부 전경

성당 내부는 다른 유명 성당에 비해 큰 편은 아니지만 지금도 매일 미사를 집전하고,  관광객들이 긴 줄을 서서 성모 마리아상 목상을 보러 가고 있다. 나도 당시 크게 바라는 소원은 없었지만 그래도 일생 한 번의 기회로 검은 성모상을 볼 수 있어 긴 줄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본인 차례가 되면 앞에 서서 길게 기도할 시간도 없이, 성모상 오른손에 있는 구슬 한 번 만져보고 성호 한 번 긋고 내려오기 바쁘다. 당시 성모상 앞에서의 내 소원은 이번 여행길이 끝날 때까지 어제와 같은 마구리가 다시는 끼지 않도록 소박하게 기원했다.


 

몽세라트 성당 내부 제단

 


성당 본당 천정에 걸린 장식등



몽세르드 미술관 들어 가는 길

  



   몽세라트 미술관

미술관 입구 로고

성당 내부를 재빨리 둘러보고 검은 미인 손도 한번 잡아보고 나서, 사원 광장을 가로질러 미술관으로 가니까 입장료를 징수하였다. 그래도 다른 유명 성당처럼 성당 입장료는 받지 않았다. 철저하게 관광 수입을 챙기는 것 같았다.

1911년 몽세라트 수도원의 성서 박물관으로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고대 유물부터 현대 작품까지 컬렉션 하여 다양한 시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로는 피카소, 달리와 앨 그레코로 피카소 그림은 딱 3점이 있었다.


입장표를 내고 미술관 복도로 들어가기 전에 입구 경비원 아저씨가 내 묵직한 카메라 2대를 보더니 각각 비닐봉지를 씌워주면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보통 유명 미술관에서 후라쉬를 사용치 않으면 실내 전시물을 촬영하는데 여기서는 아예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미알못(미술을 알지도 못함)하면서도 그림 좀 볼 줄 아는 예술인처럼 한 점 한 점 찬찬이 보고 있는데 이상한 그림을 두 점 발견하였다. 입구에만 경비원이 있고 갤러리 각 방에는 감시하는 시쿠러티가 없어서 강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몇 점의 그림을 플래시 없이 찍어 버렸다. 소위 말하는 몰카를. 저질러 버렸다.



 

La Caritat Romana

한 점은 쭈글쭈글한 한 늙은이가 이쁘고 몸매도 풍만한 젊은 여인의 젖을 어린아이처럼 쫄쫄 빨고 있는 그림인데 작가는  NICOLO TORNIOLI(1598-1651)이고 그림 제목은 LA CARITAT ROMANA로 되어있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우 궁금하였다. 일단 제목을 메모해 가지고 있다가 본토 사람이 오면 물어보려고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한 젊은 녀석을 잡고 영어로 물어보니 번역의 뜻이 <로마의 방>이라고 하였다. 바로 해석이 안되었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러보니 로마의 홍등가인 것 같았다. 다시 그림을 찬찬이 보고 있는데 느낌이 희한하였다.


갑자기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이 생각나었다. 선생이 투병할 때 어느 신문사와 인터뷰한 기사를 봤는데, 지금 제일 하고픈 일이 무어냐고 기자양반이 물어

보니 선생 왈 <사랑을 하고 싶소. 불같은 사랑을 하고 싶소>라고 답하였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병들어 늙어서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하여간 그런 안쓰러운 느낌이 가슴에 착 달라붙었다.



Sisera의 죽음

또 다른 하나는 RAMON TUSANETS(1838-1904) 작으로 제목은 <SISERA의 죽음>이었다. 대형 화폭으로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죽기 전의 일촉 촉발의 위기감이 확 가슴에 와닿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구약성서에 나오는 약간의 스토리가 있는데 잘 알 수가 없었다.


 그 외 피카소가 그렸다고 하는 그림이 딱 3점 걸려있는데



고우영 만화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스케치와


<어부> 피카소적품


<Altar Boy> 피카소 작품

위 그림들은 사진 찍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경비원 몰래 찍은 것인데 나중에 결국 걸렸다. 배가 많이 나온 경비원이 사진 찍는 나를 보더니 본토 말로 뭐라 뭐라 하면서 혀를 끌끌 차더라고.

유럽의 여러 나라 미술관을 다녀보니 대부분 플래시를 사용해서는 사진을 못 찍게 하는데, 어느 곳에서는 플래시 없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허용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관광 수입을 한 푼이라도 더 올리려고 미술관이나 박물관 내에서 사진 촬영권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 여기 미술관은 그런 게 없어 천상 몰카를 시도하였는데 여행 갔다 와서 여행기 쓰려면 그런 사진들이 기초 스토리가 되는데 이렇게 사진 찍지 마라고 감시하는 것도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애써서 아무도 모르게 가슴 졸여가며 찍어 온 것들이니 즐감하세여.


마지막 그림을 찍다가 갑자기 들어온 경비랑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그만 찍고 다른 방으로 가보니 이집트 토기 및 미라 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갑자기 이집트 유물들은 왜 등장하는지 알 수 없어 궁금증만 가지고 나와 버렸다.



성 베네딕트(480 - 553 ad) 수도원 시절. 이태리 태생인 베네딕트가 이상적인 수도회 교칙을 만들어 중세기

수도회 성립의 초석을 놓은 성인이다. 기도와 노동 그리고

독서를 중요시하며 원만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베네딕토 수도회의 규율이다. 6세기 베네딕트 수도회의 성립이 유럽의 수도원 운동의 시발점으로 그 후 많은 수도원이 생겨났고, 베네딕트 수도원은 중세 학문의 진흥, 교회성장과 문명 확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한다.



미술관의 천사상



미술관의 "예수 그리스도의죽음"




미술관의 " 십자가의 그리스도"




    수도사처럼 떠나기가 아쉬워


속세의 속물이 경건한 산속 수도원에 이틀 정도 지내다 보니 겉물이 들어서 산을 내려가기 싫었다. 시간도 많은데 하루나 이틀 더 머물다 갈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시내의 마구리에게서 입은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아서 새로운 구경거리를 찾아 하산하기로 하였다. 원래의 계획대로 지중해 연안을 따라 계속 올라가기로 하였다.



몽세라트 정상에서  내려다본 사원전경


몽세라트에서 마르세이유까지

지도를 펴보니 바르셀로나가 스페인 지역의 지중해 연안의 마지막 큰 도시 같았다. 계속 지중해 연안을 따라 올라가면 프랑스로 들어가게 되는데, 눈에 확 띄는 프랑스 도시가 마르세이유였다. 남프랑스의 최대의 무역항으로 인구면에서도 파리와 리용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의 식민 도시로 출발한 마르세이유는 그 후 고대 로마를 거쳐 여러 다른 세력의 지배를 받아오다 약 15세기경 프랑스로 통합되었다. 프랑스 국가를

<라 마르세예즈>라고 하는데 이는 프랑스 대혁명 기간에 파리로 진격한 마르세이유 출신 의용군들이 부른 군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도사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땡중도 아닌 것이 마음을 새로 비우고 홀가분하게 몽세라트 수도원을 떠나 마르세이유 선착장 항구 일번지로 길을 떠난다. -jh-

 


전편으로 바로 가기 —————->

https://brunch.co.kr/@jinhokim/388


작가의 이전글 지노 배낭여행기 - 바하마 그리고 쿠바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