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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Feb 18. 2022

지노 배낭여행기 - 49일의 세계일주 28

무덤의 계곡 - WEST BANK

룩소의 관광은 정형화 되어있다. 거의 사람들이 팩키지 상품으로 오는데 보통 2일짜리다. 하루는 룩소와 카르낙 신전을 구경하고, 두번째 날은 강건너 서쪽 강둑으로 가서 왕가의 계곡, 여왕들의 계곡과 핫셒수트 신전을 보고 온다. 나도 오늘은 2일째로 서쪽 강둑으로 건너가서 이것들을 보러 간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이런 마징가제트나 트랜스포머 비슷한 두 거대석상을 보게된다. 아멘호텝3세 신전이다. 어제 본 룩소 신전을 처음 시작한 18대 왕조의 그 왕 신전인데 신전터만 있고 두 석상외에 아무것도 없다. 이쪽 서쪽은 나일강의 범람이 심하여 이것만 제외하고 다 떠내려 갔는지 아무것도 남은게 없다. 그래서 신전 이름보다 “맴논의 석상” 으로 더 알려져 있다.  



석상 높이가 20미터. 발이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로 말 그대로 거상이다. 이것은 북쪽에 있는 석상이고



남쪽에 있는 석상인데 여기에 전설따라 삼천리가 있다. 석상의 주인공 멤논은 당시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를 통치하는 파라오 티노누스와 오로라(aurora)의 아들인데 부친의 명으로 트로이전쟁에서 트로이를 도와 참전하라는 부친의 명을 받고 전쟁에 참가한다. 그러나, 그리스 지원군으로 참전한 아킬레우스(영화 트로이보면  브래드 피트가 나온다)에게 죽음을 당한다. 이를 슬퍼한 어머니 오로라 여신이 쥬피터신에게 눈물로 호소하여 하루에 한번 씩만 아들을  소생시켜 아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아침에 오로라 여신인 어미니가  빛으로 아들을 쓰다듬어면 아들은 슾픈 소리로 엄니의  그 부드러운 손길에 답하여 노래를 부르곤 하여 가다 오다 멤논의 아침 노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노래하는 석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이런 이야기가 전해지자 당시 많은 시인들이 다투어 이를 아름다운 전설의 시나 이야기로 만들어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한다.



석상이 서있는 들판 뒤의 황량한 돌산. 풀 한포기도 없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모자간의 사랑의 전설이 얼마 가지도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를 누가 과학적으로 증명해 버렸다. 기원전 21년에 대지진으로 석상이 조금 주저 앉았는데 그 때 중간 쯤에 crack이 생겨 노래같이  우는 소리가 크랙을 통과하는 바람소리로 밤새 차운 공기가 모여 있다가 아침에 해 뜰 때 크랙을 통과하는 바람은 소리가 더 크진다고 한다. 하여간 이런 아름다운 전설도 과학때문에 운치가 없어져 버린다.



핫셉수트 신전. 멀리서 보아도 그 웅장한 규모가 위용을 자랑하는데 차 파킹하고 저기까지 걸어가야 한다. 총 3자루 매고서 말이야. 이집션들은 지금부터 겨울이 시작되어 시원하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버어지니아 비치 한여름보다 더 덥다.  



이 신전은 고대 이집트 역사상 유일하게 권력으로 통치한 여왕 핫셉수트(1508-1458 BC)의 신전으로 유명하다. 신전이 저렇게 반듯하게 세워저 있는 이유는 폴란드 아키오로지팀들이 복원해 놓았기 때문이다. 신전가다보면 왼쪽에 그들이 거주하는 건물이 따로 있다.



여왕의 석상. 왕들의 표시인 비어드(턱수염)도 달고 있다. 제위기간 (1479-1458 BC) 동안 무수한 석상을 만들어 그 유물들이 세계 각국의 박물관에 잔시되어 있는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는 별도로 핫셉수트의 방이 전시되어 있다.



여왕의 통치 기간중 중부 아프리카까지 교역이 확대되었는데 그 때 이집트로 수입된 야자수, 기린, 팬더등 여러가지 진귀한 동식물을 가이드 말코가 열심히 설명해 주고 있다.



어렴풋이 아프리카 토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 당시 교역국이 지금의 소마리아 지방이란다.



신전 공사 현장도. 저렇게  열심히 일한 공사판 인부들의 생과 죽음에 관한 이바구가 다음편에 소개된다.



사진은 찍었는데 설명이 없다. 내가 바쁘다. 설명하면 요약해서 적어야 되고 사진 찍어야 되고.

고고학 학부 학생들 현장 실습보다 엄치 힘든 일이다.



이 신전이 고고학계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가 신전의 독특한 설계 때문이다. 이렇게RAMP를 올라가면 1차 TERRACE가 있고 또 램프를 올라 가면 2차 TERRACERK 나온다. 이런 건축구조물은 요즈음은 어디가도 보이지만 3천년전에 이런 설계를 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2차 테라스에 있는 여왕의 석상들.  



테라스 기둥마다 여왕의 석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많이 파손된 것 같다.



2치 테라스에서 중앙으로 들어 가면 신전 본당으로 들어간다. 신전 기본 골격중 OPEN COURT가 1, 2차

테라스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신전안 천정의 색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어 보니 복원해도 색칠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한다. 옛날 색상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빨간색 모형은 별이고 푸른 천정은 하늘을 표현.



여기에 봉양되는 신은 ANUBIS다. 새머리에 태양을 이고 왼손에 포테이토칩(생명의 키)을 들고.



ANUBIS신에게 두손으로 봉헌하고 있는 여왕님.



그러고보니 석상의 얼굴에서 여자티가 조금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얼굴에 묻은 저 색상은 무엇인지?

사진찍을 때는 못 봤는데…..



여왕의 석상


여왕님 신전을 좀 더 장황하게 늘어 놓았는데 그 이유가 다음과 같다. 간단하게 말하면 오늘은 더 이상 보여 줄 사진 자료가 없다.




왕가의 계곡 들어가는 입구.


왕가의 계곡(king’s valley)으로 불리는 이 무덤이 있는 계곡은 도굴 방지를 위해 왕들의 무덤을 계곡과 계곡사이에다 마련했는데 고고학팀들이 이 무덤 계곡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많은 무덤은 도굴꾼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후였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는 외부나 내부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가이드왈 카매라를 전부 다 차에다 두고 가란다. 그래서 총 3 자루를 차에다 두고 맨손으로 올라가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결과적으로 너그한테 보여 줄 사진은 없지만…..


왕가의 계곡이 형성된 것은 어느 왕이 기획한 것인데 이전 까지는 왕들은 죽은 후 신전에 모시는 것이 상례인데  이 왕은 자기가 죽은 뒤 아무도 찾지 못하는 좀 더 비밀스러운 장소에 묻히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신전과는 다른 이 계곡을 찾아 왕들의 무덤을 조성하기 시작하여 이렇게 큰 계곡에 각자의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고고학계에서는 무덤찾는 발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공개된 무덤은 62개인 모양이다. 가이드말로 무덤을 찾으면 일렬번호를 매기는데 왕가의 계곡은 KING’S VALLEY  두음자로 KV로 나가는데 마지막이 KV 62다.


계곡의 무덤이 세상에 알려진 사연은 이렇다. 1875년 AHMED ADB EL-RASUL이라는 무덤 전문 도굴꾼이 우연히 이 계곡에서 왕들의 무덤을 발견한 후 세상모르게 6년동안 자기 동생과 함께 열심히 파 디벼 가지고 재산을 축적했는데 그런 소문이 쉬쉬해도 퍼지지 않을리 없었다. 그런 소문을 들은 당시 카이로 이집션박물관장인 EMIL BRUGSCH와 이집트학 전문가인 그의 동생 HEINRICH 둘이서 도굴이 아닌 발굴작업을 통하여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발굴된 무덤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여러분도 잘 아는 황금가면상이 나온 TUTANKHAMEN 이다.  위 사진은 기념품 판매점에서 찍은 것인데 실물과 비슷한 모형이다. 1341BC 출생해서 1323 BC에 몰했으니 18세에 죽은 젊은왕으로 불과 9년이 제위기간이다. 영국의 유명한 고고학자 에드워드 카터가 1922년  발굴하였는데 다행히 도굴꾼의 손이 타지 않은 온전한 채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 고고학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2005년도 CT 촬영으로 밝혀진 사인이 다리 골절에 의한 INFECTION으로 2010년 DNA검사에서는 말라리아 감염 흔적을 찾아 이 두가지 원인으로 사망원인을 추정하고 있다.


왕가의 계곡에 가면 55 이집션 파운드내면 입장시키는데 많은 무덤 중에서 3개만 관람할 수 있다. 단, 황금가면상 무덤을 보려면 추가로 100 이집션파운드 더 내야 한다. 우리 9명 그룹에서 1 명만 보고 나왔는데(나는 사전에 인터넷 여행기 읽어보니 돈만 버린다고 갈 필요 없다해서 안 들어갔다) 딱 2분만에 나오더라. 옆에 누가 물어보니 아무것도 없고 관만 있다하더라.


세개 무덤을 들어 가 봤는데 양식은 거의 흡사하다. 굴을 서서히 밑으로 파 들어 가서 맨끝에 기둥으로 받친 석실이 있는데  입구에서 들어 가는 통로 좌우로 다양한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색채가 살아 있어 가이드에게 물어 보니 전혀 손대지 않은 원형 그대로란다. 하여간 그걸 만드는 채색공이나 화가는 매일 밥먹고 그 작업만 한 것 같다. 그 상세한 이야기를 3일째 보러간 무덤에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여왕의 계곡 들어 가는 입구. 여기서도 실내 촬영 금지다. 몰카의 대가가 완전히 박살난 현장이었다.


이 무덤도 발굴하면 KV처럼 QV로 일렬번호를 부여하는데 지도보니까 QV66이 마지막 번호다. 이 계곡의 발굴은 1903 -1906년 처음으로 투린에 있는 이집션박물관장이었던 ERNESTO SCHIAPARELLI  주도하에 발굴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약 100기의 무덤터가 발견되었는데 어떤 것은 단순 무덤터, 미완성 석굴등으로 지금도 프랑스팀에 의해서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특이하게 이집트사람들은 왕족이던 일반인이던 죽은 후 무덤을 남녀같이 합장하지 않고 남녀 따로 조성한다고 한다. 자식들은 어머니를 따라서  같이 묻힐 수도 있고.  여기도 3개만 보게 하는데 왕가의 계곡과 구조가 거의 비슷 비슷하다. 단지 규모가 왕들에 비해서 조금 떨어진다. 다음에 보러 가는 사람들은 패키지 상품이 아니면  왕의 계곡과 여왕의 계곡은 생략해도 별 상관 없을 듯 하다.



돌아오는 길에 돌로 도자기만드는 공장에 들러 구경하고. 저 돌로 다듬고 속을 후벼 파서 도자기를 만든다.



전시된 도자기들. 그리고 구경하고 있는 같이간 그룹들.



색색으로 만든 목걸이.


하여간 이번 편은 조금 사진이 없어 부실한데 내 잘못이 아니고 무덤안에서  사진촬영을 금지시킨 이집트 유물 보관 및 관리청의 행정 지침이 조금 잘못되어 그런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길 바란다.-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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