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킴 May 02. 2016

지노 배낭 여행기 - 아프리카편 15

잔지바르섬에서

11/07/2015(토) 쾌청


  잔지바르 섬에서


어제 저녁 호텔로 들어 오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잠에 골아 떨어졌다. 어제는 크게 활동한 것도 없었는데 몸이  그렇게 피곤했을까 생각해보니 그저께 Pemba에서 마지막 날에 심심해서 호텔에서 걸어서 시내까지 갔다  것이 원인이었던  같다. 아님 이제 배낭매고 여행하기에 힘에 부치는 나이인가 싶기도 하고......이젠 그만 할까보다.



일명 죄수의 섬이라고도 불리는 거북이섬의 물 맑은 해변




  거북이섬으로 통통배를 타고


어제 저녁 호텔로 들어오는데 찍새(관광객들을 여행사에 연결해 주고 구전을 받는 자들로 건수를 물어 온다고 해서 찍새라고 부른다) 한테 오늘 아침 9시에 거북이섬으로 가는 걸로 예약을 했더니 칼같이 시간 맞춰 호텔로 찾아왔다. 진짜 통통거리는 배를 혼자서 타고 30분 걸려 앞 섬으로 건너 갔다. 아주 조그마한 섬인데 옛날에 여기에 감옥소가 있어서 '죄수들의 섬'으로도 불린다. 조그마한 섬이지만 인도양의 코발트색 바다색과 하얀 모래해변이 잘 어울리는 멋진 곳이다. 여기서는 바다거북이를 정부가 사육하면서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거북등에 파란 페인트로 나이를 적어 놓았는데 최고령 영감 거북이가 192살이라고 한다. 거북이 알에서 새끼를 부화해서 별도로 만들어 놓은 cage에 새끼 거북들을 키우고 어느 정도 새끼가 자라면 밖으로 방출하는 모양이다. 이 cage는 사람으로 치면 산부인과 병원의 신생아실로 세상에 나온 기념으로 빽빽 울어대는 신생아들처럼 그렇게 우는 거북이 새끼는 없다. 신생아 생각을 하니 옛날 추억이 떠 오른다.


등에 페인트로 연식을 표시해 놓았다


대형 거북으로 어제밤에 사랑싸움을 했는지 눈티가 멍들었다


사랑스런 귀두


통통배에서 바라본 거북이 사육장 입구


거북이 사육장에는 입장권을 사야한다


바닷가로 놓여진 나무다리 사이로 짙은 코발색 인도양이 눈을 유혹한다


바닷물색이 몇 가지 다른 톤으로 다가온다


사육장의 거북이들




뉴욕 퀸즈 시립병원에서


미국 뉴욕에서 첫 딸을 얻었을 때 분만실에 나는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일정시간 교육을 받아야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 갈 수 있는데 회사일 때문에 바빠서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사람은 저녁시간에 산통을 느껴 들어 갔고 나는 병원 대기실의 딱딱한 나무 벤치에서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했었다. 그 때 마침 다른 한국인 부부가 들어와서 산모는 바로 분만실로 들어가고 남자는 나와 같이 대기실에서 결과를 기다려야만 했었다. 남자는 키는 나만하고 몸은 탄탄하고 다부지게 생겼다. 행색은 일용 근로자 차림으로 오늘 일을 끝내고 바빠서 옷도 갈아 입지 못하고 그대로 병원으로 달려 왔는지 옷 아래 위로 오늘 하루 노동의 흔적이 여기저기 역력했다. 그 남자는 바로 내가 앉아 있는 뒤쪽 벤치에 일자로 눕더니 잠시 후 코를 골고 깊은 잠으로 빠져 들었다. 나는 기대와 반은 불안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도 없어 새벽까지 거의 뜬 눈으로 밤을 하얗게 밝혀 버렸다. 첫 아이를 자연 분만하는게 어렵고 출산의 고통이 산모에게는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귀로 들었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뒷쪽 벤치의 그 남자는 밤새도록 한번도 깨지않고 수시로 코를 골며 잠을 잤고 나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시름을 달래며 아들인지 딸인지 그 때까지도 몰랐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하였고 솔직하게 내심 아들이기를 바라기도 하였다. 드디어 아침에 분만실에서 문이 열리며 간호원이 나오면서 합격자 발표를 하는데 내 이름을 부르며 미스터 킴 딸이야하고 알려주면서 동시에 그 남자 이름을 부르면서 아들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때 나는 공정하지 못한 창조주의 판정에 약간의 불만을 느끼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누구는 밤새도록 코골고 자는데도 아들을 점지해주고 나는 밤새도록 노심초사하며 밤을 밝혔는데도 딸을 주시다니 얼마나 불공평하십니까. 그런데 그 뒤 5년 뒤 아들을 주셨으니 어느정도 공평하게 되었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역사의 현장, 노예시장 옛 터를 찾아서


1873년 영국 정부에 의해서 노예 매매가 금지될 때까지 노예무역의 마지막 집배 장소가 여기였다고 한다. 잔지바르가 인도양에 접해 있기 때문에 잡혀온 노예들은 여기서 선별되어 중동, 인도 및 아시아로 보내졌다고 한다. 옛 노예 매매 시장터는 지금은 영국 복음 교회가 웅장하게 들어서 있어 그 때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지만 두 군데는 아직도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 지금 복음교회는 그 뒤에 새로 신축한 것이고 옛날 복음교회는 다 허물어져 가는 모습으로 지금도 남아있어 관광객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이전에 노예 매매 시장터 바로 위에 건축한 영국 성공회 교회. 위 신건물은 구교회가 낡아 쓸모가 없게되자 바로 옆 부지에 신축한 것이다


교회 내부 모습


옛 노예 매매시장터위에 교회를 세운 영국인 목사 Steere초상화

그 건물 지하에 옛날 팔려 갈 노예들을 수용한 방이 2개 그대로 남아있어 지하로 머리를 돌 문턱에 박지않게 약간 숙이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면 촛불로 희미하게 방을 밝히고 있다.



조그마한 창으로 들어온 가느다란 빛만이 어둡고 침침한 방을 촛불과 함께    밝히고 있다. 그들의 암울했었던 일상이 내 맘을 쭈글시립게 만든다

방은 중간에 통로를 만들어 놓고 통로 좌우로 노예들을 수용했는데 노예들이 공기를 마시도록 환풍구를 직사각형으로 길쭉하게 그러나 어린애도 빠져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게 만들어 놓았다. 노예들은 다리와 목에 쇠사슬을 서로 연결하여 한명이 일어나서 중간에 만들어 놓은 통로에다 대소변을 보려면 줄줄이 같이 움직여야 가능했다고 한다. 이렇게 소나 돼지를 키우는 축사정도의  환경땜에 수용된 노예의 30% 정도만 팔려나갔지 나머지는 여기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런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조그마한 방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때 잡혀온 노예들의 암울한 일상이 느껴지는 것같아 맴이 쭈꿀 쭈꿀해진다.



수용된 노예를 배로 실어 각 지역으로 운반하였던 인도양. 그 때나 지금이나  코발트색 바다는 무심하게 아무런 말도 없다


그곳에서 나와 신축한 교회로 조그만 올라가면 Slave Monument라 해서 목에 쇠사슬을 단 남녀 노예들의 입상을 세워 놓았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런 비극적인 역사의 아픔을 저 푸른 인도양은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이글거리는 태양이 코발트색 바다 위로 폭우처럼 쏟아진다.






  Nungwi(눙귀) 해변으로 가요


내가 여러분에게 잘 기획된 아프리카 배낭 기행문 책을 한 권 소개해 준다면 '김성호'의 "내가 만난 아프리카"이다. 저자는 한겨레신문 기자하다가 정치판에 들어가서 국회의원까지 한 인물인데 배낭 여행을 하도 좋아해서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해박한 지식으로 기행문을 쓰고 있다. 그 책에 잔지바르의 눙귀 해변이 소개되어 한번 찾아 가 본 것이다. 배낭 여행자답게 로칼버스로 찾아갔다. 덕분에 잔지바르의 시외버스를 알아서 싸고 알차게 이용했다. 단지 동양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버스 속의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부담되었는데 그런건 일단 무시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다.



해변이 해초로 덮여있는 눙귀 바닷가

눙귀해변은 관광객을 위하여 조성된 관광지역으로 소위 말하는 오성급 호텔들이 꽉 들어찬 곳이다. 그러나, 나같이 로칼버스로 찾아가는 사람은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 해변까지 약 10분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걸어가면서 그 곳 주민들의 생활상을 잠깐 훔쳐보니 모잠비크의 빈민가와 별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송아지와 소들이 지마음대로 마을을 돌아 다니고 모잠비크 pemba에서 본 깨끗하지 못한 어린애들이 똑같이 여기서도 보인다. 관광객들은 차를 렌트하거나 관광회사의 투어버스를 이용해서 오기 때문에 차 안에 앉아만 있어도 곧 푸른 바다와 하얀 해변이 어우러진 리조트에 내려주어 짐을 풀고 여러가지 소일거리로 하루 하루를 멋지게 보내며 추억만 많이 쌓아 가지고 가면 되겠지만



버스 종점에서 내려 걸어서 현지인 마을을 지나 눙귀해변으로 간다

눙귀 해변 뒤의 아이들은 빈곤하게 사는 것이 그들의 잘못만도 아닌건데 어쩔수 없이 대대로 그렇게 살아 올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관광객들에게 허접하게 만든 비드 팔찌나 색돌 목걸이를 팔러 다닌다. 해변 뒤 조그마한 상점에는 그림을 그려 파는 현지인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었는데 버스 막차 놓칠까봐 바쁘게 지나가는 나를 보고 안 사도 좋으니까 들어와서 구경이나 하라고 붙잡는다. 눙귀 해변은 버스 막차 시간 땜에 별로 구경도 못하고 사진만 몇 장 훔치고 돌아섰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그림 몇 점을 찍었다. 언뜻보기에 아프리카 최고의 전사 키큰 마사이족을 그린 것 같다.



              노을에 물들어가는 눙귀해변의 유람선


스쿠버다이빙 광고가 곳곳에 보이고 비수기인지 파리날리는 화랑에서는 들어와서 구경하고 가라고 난리다. 눙귀해변 입구에는 관광객을 위한 여러 옵션을 소개하는 입간판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관광지임을 알려준다.


눙귀해변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여러 관광옵션과 누추한 현지인 마을





  용맹한 마사이족을 프린트로 포획


버스에서 내려 해변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네 어귀에 마사이족 청년 6명이 모여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마사이족은 한눈에 보면 식별되는게 그들의 전통적인 옷을 걸치고 반드시  막대기를 들고 있다. 마사이족의 용맹성은 아프리카 부족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 우리가 영화로 많이  줄루족과 어깨를 겨룬다. 워낙 용맹스러워서 노예사냥  때도 마사이족만은 건드리지 않아 마사이족은  명도 노예로 팔려 가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마사이족답게 사진 한번 찍지하고 내가 추파를 던졌더니 바로  칼에 No 하길래 나도 쿨하게 알았다 하고 지나쳐서 해변으로 갔다.


해변에서 사진 작업을 마치고 다시 버스타러 나오는데 이번에는 3명만 돌담에 앉아 있길래 이번에는 강한 미끼를 던졌다. 사진 찍는것 보다도 저 녀석들이 저그들 Hometown인 Arusa 지역의 응고롱고로(Ngorongoro)에서 살지 않고 왜 여기에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졌다. Pemba 에서 찍은 마을 아이들 프린트를 보여 주었다. 한번 보더니 당장 낚시바늘을 덥석 물었다. 프린트 한 장씩 다 주는지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었는지 두 번 세 번 물어 보았다. 사진찍고나서 프린트 할 동안에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 너거 고향 응고롱고로 놔두고 여기서 뭐하냐?"
웬 동양인 입에서 저그들 고향이름이 나오니까 졸라 반가운 모양이지 한 녀석이 바로 물어본다.
"니 우리 고향에 가봤더냐?"
마치 고향에 두고 온 순이가 생각나듯 나에게 고향소식이라도 들어 볼 채비다.
"아니, 아직 못갔어. 내일 잔지바르 구경끝내고 다르에스살람 나가서 Arusa 가면 세랭게티 사파리가면 가 볼끼다."
나는 대강 얼버무려 버렸다.
"근데, 너그들 예서 뭐하는데?"
궁금해서 재차 물어보니 그제서야 용맹의 전사들의 입이 서서히 풀렸다.
"한달동안 돈벌러 왔어."
돈 이바구가 나오니까 조금 풀이 죽어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무슨 일 하는데?"
다구치듯 재촉하면서 다시 물었다.
"응, 리조트 호텔에서 시큐어러티(경비원)로 한 달동안 일해."

더 이상 세세하게 물어보다가는 아프리카 최고의 전사 마사이족에게서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까봐 커져가는 호기심을 지긋이 눌렀다. 그러나 혀끝에서 뱅뱅도는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다.
"야, 원래 마사이족들은 키가 큰데 너희들은 쪼매(약간) 작은 것 같다. 그지?" 나의 돌발적인 직구에 세 녀석이 동시에 큰 웃음을 터뜨리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예리한 관찰력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털털거리는 버스 속에서 아까 찍은 마사이족 사진을 보면서 사파리 여행에서 치타나 사자를 찍은 것보다 더 큰 쾌감을 느껴보니 하루의 피곤함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명함판 프린트로 포획한 뚝방전설의 마사이 트리오. 왼쪽부터                       사디라(20) 사로빠(30) 레자로(25)




잔지바르의 이것 저것들


호텔 벽에 걸린 잔지바르 그림


거북이섬 왕래하는 통통배 1


거북이섬 왕래하는 통통배 2


배위에서 바라본 옛 왕궁 건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


같은 호텔에 묵었던 Talan Azizi 가족들. 프랑스 국적인데 현재 중동 카타르에서 일을 하고 있다. 우연히 거북이섬에서 조우해서 한 컷 했다


천연음료수 코코넛 열매. 물을 마시고 나면 부드로운 속살을 먹기좋도록 파 준다. 가격은 1000 실링으로 미화 50 센터


아라베스크 문양. 아랍인들이 창안한 기하학적으로 완전 대칭을 이루는 문양으로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교에서 벽 장식과 서책과 아랍 문자를 도안화하여 독특한 장식미술을 발전시킨 것이 아라베스크로 이것의 극치를 보여주는 건물이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이다.


성채와 정자, 성벽들이 전부 아랍양식으로 되어있다. 잔지바르가 약 300 년간 이슬람국가인 오만의 지배를 받았다


스톤타운의 버스 종점. 여기서 눙귀행 버스를 타고 갔다


잔지바르 미로에서 만난 고양이와 같이 점심을 나누었다. 위 사진은 카사바란 음식으로 고구마와 감자 맛인데 섬유질이 질겨 고기처럼 씹어야 한다.


미로와 같은 잔지바르 골목길


골동품상에서 찍은 아프리카 각종 목각탈


인도양의 코발트 물색. 저런 색을 Tanzanite라고 한다


거북이섬에서 추억을 찍는 관광객들



거북이섬의 맑은 바닷물


미로같은 골목길에서 눈이 마주친 꼬마들. 아프리카의 미소다.


할로윈데이 락 페스티벌 포스트


<담편 바로가기>

아프리카편 16 - Jozani Bay 국립공원

https://brunch.co.kr/@jinhokim/11


작가의 이전글 지노 배낭 여행기 - 아프리카편 1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