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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라리며느리 Aug 25. 2020

술 마시다 외박한 며느리

외박하는 날라리 며느리 네 번째 이야기

시댁이 서울에 있어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서울을 방문했다.(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자제 중) 그땐 차도 없던 때라 아이들과 기차를 타고 다녔다. 시댁에 가면 어머님의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고 편히 쉬다 올 수 있어 남편에게 항상 내가 먼저 가자고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도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셨고 아이들도 가고 싶어 했을뿐더러 나도 서울에서 만날 사람들도 만나고 혼자 볼 일을 보러 다닐 수 있어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남동생이 둘 있다. 둘 다 서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지금은 한 명만) 내가 서울에 가는 날이 우리 삼 남매가 만나는 날이다. 서로 특별한 일 있을 때 말고는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지인들은 자매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건 많이 봤어도 남매가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건 처음 본다며 의아해한다. 우린 원래 그렇게 살아왔기에 이 상황이 신기한 것인지도 모르고 지냈다.




누나 서울 간다. 대기하고 있어라.


시댁에 가는 날짜가 정해지고 삼 남매 단톡 방에 알렸다. 서로 언제가 좋다며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아무리 날라리 며느리라도 시댁 상황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 특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잠정적으로 결정된 시간이었다. 어머님도 서울에 가면 동생들을 만나러 자주 나가니 그러려니 하셨다. 그날도 평소처럼 동생들을 만나서 1차, 2차, 3차까지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열심히 달린 것 같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내가 취하고 있는지도 몰랐다는 거다. 웃고 울고 떠들며 온전한 나를 만나는 순간이었나 보다.  



남편, 나 어떡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침이었다. 나는 동생 침대에서 눈을 떴고 동생들은 바닥에서 널브러져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며느리가 말도 안 하고 외박을 한 것이다! '내가 미쳤지 미쳤지' 하며 벌떡 일어나 세수도 안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날라리 며느리라지만 외박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자다 일어난 목소리로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어~ 일어났어?"

"나 어제 외박했나 봐. 어떡해 ㅠㅠ"

"어제 나랑 통화했잖아. 택시 안 잡혀서 그냥 자고 오기로"

"아 정말?? 기억이 안 나ㅠㅠ"

"어쩐지, 많이 마신 거 같더라. 속은 괜찮아?"

"아니, 죽을 거 같아 ㅠㅠ 근데 어머님은?? 말씀드렸어?"

"어~ 택시가 안 잡혀서 그냥 자고 오라 했다 했어"

"휴~ 다행이다. 난 또 연락도 안 하고 외박했는지 알고 식겁했어. 근데 어머님 아무 말씀도 안 하셔?"

"어, 아무 말씀도 안 하시던데?"

"알았어~ 금방 갈게"


좀 더 자고 오지, 뭐 급한 일 있다고 벌써 와?


그제야 어제 통화내역을 확인했다. 남편과 몇 번 통화를 했던 내역이 있었다. 택시를 잡으며 남편과 통화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속이 너무 아파 근처 편의점에서 오렌지 주스를 사서 벌컥벌컥 마시고 택시를 잡아탔다. 어제 얼마나 부어라 마셔라 했는지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아프고 죽을 지경이었다. 택시 안에서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죄송해요 ㅠㅠ 며느리가 외박을 다하고 참 간 큰 며느리네요;;"

"뭐 남에 집에서 잔 것도 아니고 동생집에서 잤는데 뭘 그러니?"

"그래도요~ 며느리가 술 마시고 외박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요~~"

"동생들 만났는데 한 잔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것도 택시가 안 잡혀서 못 온 거잖니"

"그건 그렇지만.. 암튼 죄송해요;; 지금 가는 중이에요. 빨리 갈게요~"

"벌써 오는 거야? 좀 더 자고 오지, 뭐 급한 일 있다고 벌써 와?애들도 잘 놀고 있는데.."

"아침에 눈 떴는데 동생집이라 너무 놀래 가지고 눈뜨자마자 택시 탔어요"

"(어머님 박장대소하심) 하하하 그래, 조심해서 와 그럼~"

"네~ 금방 갈게요~"


전화를 끊으니 택시 기사님이 한마디 하셨다.

"참 시어머니가 좋으신 분이네요. 손님이 복이 많으신가봐요."

"네~ 이 복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어머님은 술 마시느라 외박까지 한 며느리를 위해 해장라면을 또 끓이셨다. 그러고 나는 하루 종일 시체놀이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렇다. 나는 복 받은 날라리 며느리다. 이젠 하다 하다 외박까지 하는 며느리가 되었다. 대체 나의 날라리 며느리 삶의 끝은 어디일까 싶다. 에어로빅을 20년이나 하셔 건강에 관해서라면 자신만만하던 어머님도 요즘 여기저기 아픈 데가 있다고 하셔서 신경이 쓰인다. 코로나 때문에 운동하러 나가시지도 못하셔서 몸도 마음도 힘들다고 하시니 내 마음도 힘들어진다. 그동안 평범한 며느리가 아닌 날라리 며느리로 편히 살았으니 조금씩 갚으며 살아가야겠다 다짐해본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앞으로 제가 잘할께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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