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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Life is ...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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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짱 Jan 03. 2020

우리 거리를 좀 둘까요

personal Distance     


요즘 도를 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쏟아지는 악플로 인해 고통 받던 연예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이 참 오지랖도 넓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자신에게 어줍잖은 충고를 하는 신부에게 금자씨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로 선을 긋는다. 나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라 그런지 그 멘트가 참 생각나는 요즘이다. 물론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가 필요할 때가 있다. 위로가 무지하게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쓸데없는 관심과 참견, 심지어 도를 넘는 오지랖은 안하느니만 못하지 않을까. 상대방이 받을 상처 따위는 생각지도 않은 채 하는 아는 체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싶다.

영어에 ‘Personal distance’라는 단어가 있다. 한글로 번역하자면 ‘개인의 거리(공간)’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거리(공간)를 의미하는 것으로 누군가와 있을 때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거리(공간)라 할 수 있다. 내가 잘 모르거나 처음 보는 사람과는 Personal distance가 넓을 것이고, 친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는 당연히 더 좁아질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조직, 집단문화가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회사, 모임, 학교 등 많은 곳에서 굳이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 집단에 속하면 마음이 편하고, 안심이 되는 면이 있다. 나도 물론 친구들,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 좋아 인간관계에 힘을 쏟은 적이 많다. 개중에 좋은 관계가 더 많지만, 나를 실망시키고 힘들게 한 관계도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개인의 거리(공간)가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우린 가족이니까     


세상을 살면서 제일 위로가 되어주는 상대는 아마 가족일 것이다. 예전에는 대가족이 많아 가족의 소중함을 잘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현 시대에 가족은 꼭 필요하면서도 개인을 힘들게도 만드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마치 양날의 검처럼). 특히 1인 가족이 늘어나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어쨌든 가족은 제일 편안한 상대라 할 수 있다. 물론 가족에게 말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족마다 사연이 있고, 상황이 다 다르니 말이다. 그래도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 함께 할 가족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얼마 전에 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갑자기는 아니고, 연세가 많으셔서 병원에 계시다가(치매가 조금 있으셨다) 돌아가셨다. 내 기억에 할아버지는 엄청 조용한 분이셨다. 설이나 추석 때 집에 가면 인사만 받으시고, 방에 들어가 책을 보셨다. 식사 때만 나오셔서 몇 마디 하시고는 다시 방에 들어가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큰 추억은 없지만, 할아버지를 사랑했다. 장례식장에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였다. 일본에 살고계시는 막내이모네를 비롯해 자주 보지 못하는 사촌동생들까지 함께했다. 두런두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따뜻했다. 나는 외동이라 그런지 친척들끼리 모이는 것을 좀 좋아한다. 평소에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부모님 뿐 아니라 귀여운 이모들과도 수다를 떨 수 있어서.   

하지만 가끔은 가족 간에 알게 모르게 서로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알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나를 제일 잘 이해해줄 것 같다는 생각(착각)에, 편안함에,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말이다(속마음은 그게 아닐 것이다). ‘가족’은 사전적 의미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즉, 한 핏줄로 얽혀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가족에게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 가족에게도 즐거운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로 이혼이라는 힘든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가족폭력 같은 몹쓸 짓을 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일 뿐 아니라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내 주변에는 없지만, 가끔 내가 사는 아파트 동네에서 밤이나 새벽에 큰 소리로 미친 듯이 싸우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또 집 앞에 바로 파출소가 있어서인지 그 앞에서 드러눕고 우는 아주머리를 본 적도 있다(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내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로를 조금만 더 이해하고, 대화로 오해를 풀려고 노력한다면 상황이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싸우지 않는 부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실은 미움도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바탕이 되어야 생기는 감정이니까.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마주칠 때마다 싸우고, 부딪힌다면 남보다 더 스트레스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지속되다보면 결국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럴 때는 가족이지만 잠시 거리를 두어보는 것은 어떨까. 마주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서로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따로 살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떨어져있다 보면 빈자리의 소중함과 애틋함이 생기지 않겠는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분명히 생길 것이다. 내 주변의 주말부부를 보면 그렇게 서로 애틋할 수가 없다. 매일 붙어있는 것보다 가끔은 서로간의 거리를 두는 게 해결책이 될 때가 있다.    

가족끼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내 편이 되어주는 건 결국 가족이다. 그걸 생각한다면 이런 노력쯤은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휴식기가 필요해     


가족관계에서 쉼이 필요한 것은 부부만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휴식기가 필요하다. 부모는 부모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자식은 그 나름대로 걱정이 있을 것이다. 부모된 입장에서 자식에게 충고를 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자식이 사랑으로 그 충고를 받아들여 준다면 참 이상적인 관계일 것이다. 여기서 한쪽이라도 생각이 다르다면 트러블이 생기는 것이다.

자식에게 자기 꿈을 투영하는 부모도 있다. 못다한 꿈을 자식이 이뤄주길 바라며 자신도 모르게 자식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부모의 고마움을 잘 모르는 자식도 있다. 나중에는 부모의 사랑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한쪽은 자연스레 지쳐버린다. 그럴 때는 부모·자식이어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 떨어져 객관적인 눈으로 상황을 바라본다면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매순간을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자식을 일찍 독립시켰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때가 되면  독립하는 추세이긴 하다(정작 이 글쓴이는 그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 그게 가족관계에도 더 좋은 것 같다. 생각하는 방향과 방법이 다른 몇 세대가 함께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가족 간에도 서로 예의를 지켜야하고,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위해서라도. 가족은 나를 위해 희생하는 집단이 아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또 다른 작은 사회인 것이다.       


적절한 선은 참 어려워


학생 때는 친구와의 관계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기이다. 특히 사춘기가 되면 부모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친구를 신뢰하고, 무엇이든 함께하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부모보다도 함께하는 시간이 많고, 나를 잘 이해해준다고 생각하기에 현실적으로 중요하게 느끼기 때문이리라. 나는 사춘기 때, 아버지가 큰 수술을 해서 크게 반항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잠깐이지만 어머니가 간호 차 병원에 자주 계셨기 때문에 집에서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크게 다툴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교유관계에 크게 집착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없고, 내가 모든 지인을 좋아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한테 정말 소중한 친구들한테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지금도 소수의 사람을 깊게 만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넓지만 얕은 관계보다는 좁지만 깊은 관계를 선호한다. 이런 찐 친구들이야말로 그 관계가 정말 오래가는 것 같다.              

그래서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그만큼 나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괜찮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준다면 제일 바람직한 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날수록 자존감만 낮아지게 되는 나쁜 영향을 주는 사이라면 그 관계는 끝내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은 것 같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집착하는 관계 또한 정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친구는 엄연히 따지자면 가족도 아니고 남남이다.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좋은 친구인 것 같아서 자주 만나도 어느 순간 한 사람이 집착하게 되면 다른 사람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 주위에도 이런 관계들을 종종 보곤 한다. 결국 한 사람이 지쳐 그 관계는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친구를 사랑한다면, 그 관계가 소중하다면 때로는 적절한 선을 지킬 필요가 있다. 선 넘는 오지랖이나 요구가 가끔은 독이 될 때가 있으니.     

그래서 요즘 ‘인맥 다이어트’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어느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10명중 8명이 인맥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54%가 실제로 행했다고 답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나도 해본 적이 있다. 카톡을 보니 한때는 친했어도 지금은 연락을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꽤 등록되어 있어서 쭉 정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자연스레 흐지부지 된 모임 사람들과 조금씩 연락을 끊은 적도 있다. 이런 식으로 가끔 인맥 다이어트를 해주면 나에게 정말 소중하고 오랫동안 남아있는 지인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더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된다. 쓸데없는 데 힘쓰지 말고,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신경을 더 써보는 건 어떨까. 그들이야말로 내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니 말이다.

어릴 때는 아무리 친한 사이였어도 언제까지, 어느 범위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이니까. 그래서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쉼은 필요하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친구가 있다면 잠시 떨어져 숨을 골라보자. 다시금 함께 할 힘이 날 것이다.      


사랑하니까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가운데 연애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연애를 통해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생에 있어 꼭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민(생각)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둘만의 교감과 시그널이 서로 잘 맞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한 쪽이 시그널을 잘못 받아들이거나 교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전락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아무리 애인사이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줘야 한다. 애인이니까 이해해주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사이에 상대방은 벌써 이별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캐치해 서로를 섭섭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 이상 좋은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매체에서 데이트 폭력은 꽤나 자주 접하게 되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드라마의 소재로도 많이 쓰이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사회문제(이슈)가 되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괴롭힌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인 것이다. 그런 비정상적인 관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끊어버리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나를 존중해주고,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는 것은 피할 문제가 아니다. 나랑 타인(애인이라도)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갭을 줄여가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 관계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둘만의 규칙을 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기, 이런 부분은 이해해주기 등등 룰을 정해 배려해준다면 크게 싸울 일도 없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요     


같은 공간에 전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각자의 성향에 따라 어떤 사람은 편하게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빨리 그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Personal Distance’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전시나 공연을 좋아한다. 그래서 공연장이나 미술관 같은 공공장소를 자주 가는 편이다. 한국 사람들이 매너가 좋다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아직은 먼 것 같다(물론 개인적인 견해이다). 그런 공공장소에 가보면 아직도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한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클래식을 좋아해서 그 친구는 가끔 혼자 공연을 보러 가곤 한다. 어느 날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공연을 보러 갔는데, 등산복 차림으로 공연을 보러 온 아저씨부터 요가복을 그대로 입고 온 또래 아가씨까지 있어 마음이 좀 답답했다고 한다. 캐주얼한 공연도 아니고 드레스업한 클래식 공연에서 너무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말에 공감이 갔다. 물론 그들이 공연을 위해 몇 달간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을 피아니스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피아니스트나 공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들었다. 외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조금은 씁쓸해진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시를 좋아해 미술관도 자주 가는 편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가려고 하는데,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전시를 보고 있으면 작품을 보러 온 것인지, 인증 샷을 찍으러 온 것이지 모를 만큼 자기들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들을 나쁘다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을 찍는 거야 그들의 자유니까. 하지만 전시를 보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작품만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니 동선을 방해한다든가 시끄럽게 소리를 낸다든가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관람객의 매너이자 배려 아닐까 싶다.

지하철, 버스, 카페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공장소인 만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한다. 출근할 때 버스에서 이어폰을 하지 않은 채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시끄러운지 많은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그 아저씨를 보면서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너무 들었다. 한참을 간 후, 내리시기는 했지만 참 민폐였다. 카페에서도 이런 적이 있다. 내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분(아저씨였다;;)이 갑자기 핸드폰을 열더니 무언가를 보는데, 이어폰을 하지 않아 엄청 시끄러워졌다. 난 회사일로 컴퓨터 작업을 한창 하고 있었는데, 너무 방해가 되었다. 카페 직원에게라도 얘기할까 하다 곧 나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한 30분인가 40분 후에 전화를 받더니 다행히도 나갔다. 매너 좀 지켜주세요오!!!

특히 카페는 많은 사람들이 오다 보니 참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한 번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할머니가 갑자기 내 테이블 앞자리 의자에 털썩 앉으시는 것이다. 둥근 조그만한 테이블(의자 4개)이었는데,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할머니가 음료 기다리는 동안 다리가 아파서 그러시나보다 하는 생각이 더 컸지만,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조금 있다 일어나시긴 했지만, 잠깐 앉아도 되겠냐고 한번만 물어보셨어도 덜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으음…. 타인과의 Personal Distance 좀 지켜주시면 안될까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개인의 공간은 있다. 뒤쪽에 공간이 많은데도 굳이 바싹 붙어 타거나 너무 타이트하게 위치해있으면 상대방은 그것에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유난떠는 거 아니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활 속 사소한 것부터 개인의 공간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인간은 유일하게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니까. 인간다움을 벗어버리는 비상식적인 행동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예의바른 무관심’(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말했다. 단순하게 던진 질문이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눈치껏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 선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포인트다.      


잠시만 모른 척 할게요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회사에서 만나게 된 상사, 동기, 선배, 후배, 혹은 사적인 만남에서 알게 된 언니, 오빠, 동생. 심지어 단골 커피숍에 가서 주문할 때도 그 곳 직원을 마주하게 된다. 이렇듯 살아가다보면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사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물론 개중에 마음이 맞아 아주 친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도 첫 직장생활을 한 잡지사에서 알게 된 후배와 10년 넘은 지금도 만나고, 같이 여행도 가고 한다.

하지만 어찌 나랑 잘 맞는 사람만 있겠는가. 나랑 코드가 전혀 맞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듯이. 이럴 때는 살짝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예의바른 무관심’이 이때도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도를 넘는 관심이 독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로 얽혀있는 관계(공적으로)인만큼 일로써만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인 감정이 섞이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이 서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회사일과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일로 트집 잡거나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 아니라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럴 때는 속으로(겉으로 하면 일이 커질 수 있으니) “너나 잘하세요.”라는 멘트를 날려주자. 아니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주는 센스를 발휘해보는 것도 좋다. 쓸데없는 데에 기운빼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을 내게 집중해보자. 어느새 한 단계 성장해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그런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 가치는 높아진다. 그 사람의 가치는 본인하기 나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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