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룸메이트는 8살이다.

베갯잇이 다 젖을 만큼 울고 또 울었다.

by 김한우리
2016년 우리는 처음 만났다.


그 해 8월 네 번째 심장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수술을 앞두고 몸 상태를 체크해보자는 담당 교수님 말씀에 난 푸릇한 5월에 내 몸을 잠시 병원에 맡겼다. 워낙 심장 상태도 안 좋았고 수술이 어려울 거 같다면서 잔뜩 겁을 주셨다. 어쩌면 오픈하트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다는 생각에 다행이면서도 무섭고 겁이 났다.

이런 무거운 마음을 잔뜩 안고 입원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 투어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날 날씨처럼 파란 하늘같이 싱그러운 나의 룸메이트를 만났다.

운이 좋았다. 2인실로 배정받아 나름 편하게 쉬면서 치료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걱정 가득한 마음의 짐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느낌까지도 받았다.


그 아이게만 햇살이 비추듯 눈이 부신 남자아이를 만났다. 나이로는 2살이라고 하지만 아직 24개월이 되지 않았던 그 아이와 첫 만남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포화도 기계, 심전도 기계, 산소호흡기까지 온몸 전체가 줄로 연결되어 있어서 아이보다 기계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움직임조차 자유롭지 못하니 아이는 연신 울었다. 하지만 그 아이 울음소리가 싫지 않았다. 나도 겪어봤기에 아이와 엄마의 마음을 동시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병실로 돌아가면 깜짝 놀랄 거야.

3개월 뒤 난 15시간 수술을 끝내고 중환자실에서 삶의 끝자락을 놓칠 뻔했지만 간신히 살아남아 병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병실로 돌아갔어도 온전치 못한 내 정신들을 하나로 맞추기까지 하루 이틀 시간이 필요했다. 오랜 시간 중환자실에서 누워있다가 병실로 돌아온 그날 밤 화장실을 가야 해서 처음으로 발을 바닥에 내디뎠을 때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으로 넘어지면서 병실 안 세면대에 머리를 꽈당하는 아찔한 사고였다. 엄마는 나의 상태를 재빨리 확인하고 나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우고 있을 무렵 그때 누군가가 달려와 나의 다른 팔을 잡아줬고 일어날 수 있게 도와줬다. 그리고 "언니, 괜찮아요?" 내게 물었다.

병실은 불이 다 꺼진 상태였고 실루엣만 보이는 상황에서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 줄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다음 날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어젯밤 일을 상기시켰다. 엄마가 내 마음을 눈치채셨는지

옆 침대를 가리키며 누가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하셨다.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보니깐 3개월 전에 만난 룸메이트였다. 아이 엄마는 나보다 어려서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줬고 우리는 그 사이에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온 상태였다. 정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 것이다. 3개월 전 같은 병실에서 3개월 뒤 다시 같은 병실에서 만나다니 이런 우연이 있을까 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보름 동안 룸메이트와 동고동락을 하면서 지내왔다. 낯설어하던 아이도 나를 매일 봐서 그런지 날 보며 웃어주고 우리는 조금씩 천천히 친해졌다.

아이와 소통할 수 없었지만 아이 엄마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며 지낼 수 있었다.


"언니,
전 이 아이를 온전히 돌보는 것 밖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 같아요. 얼마만큼 아픈지 얼마만큼 힘든지 알 수가 없으니깐 그게 더 속상해요. 그래도 이번 기회에 언니를 통해서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었어요. "

어느 날 아이 엄마가 수술하고 나면 제일 많이 어디가 아픈지, 얼마만큼 힘든지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사람마다 아픔의 강도는 다를 수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겪어봤고 경험했기에 어쩌면 나 밖에 모르는 아픔을 지금 이 아이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가장 힘든 건 아픈 당사자가 아닐까?.


아이가 아파서 칭얼대고 울면 그 아이는 눈물로 엄마와, 의사 선생님과 소통을 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아프니깐 할 줄 아는 게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 밖에 없었다. 그 아이를 지키는 부모의 마음도 아프고 찢어지지고 속상하지만 당사자가 겪는 아픔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에 더 절절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 만남이 되었다.


익숙한 목소리인데....!!

치과치료 때문에 7일 정도 입원을 한 적이 있다. 가벼운 치과치료도 와파린이란 약 때문에 늘 조심스럽고 긴장의 연속이었기에 담당 교수님은 입원을 원하셨다. 그때 처음 헤파린 주사도 접하게 되었다.

(나중에 헤파린 주사와 관련해서 글을 써보고 싶다.) 정말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아픈 주사가 아닌가 싶다. 그 정도로 주사 맞을 시간이 두려웠고 공포 그 자체였다. 다인실로 입원을 하고 누워서 쉬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보호자 목소리였는데 더 익숙한 목소리는 남자아이 목소리였다. 순간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병실 앞 환자들 이름을 보고서야 익숙한 목소리가 반가움이 되었다. 조심스럽게 커튼을 열고 "까꿍~"하고 말을 걸었다. "언니이이이이이이, 병원은 어쩐 일이세요?" 라며 아이 엄마가 나를 반겼다.

늘 사진으로 보던 룸메이트는 제법 어린이다웠고 키도 부척 컸다. 뭉클했던 건 나를 알아봤는지 나를 보며 새큰새큰 웃어줬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핑 돌았다. 그렇게 우리는 우연이 거듭되어 세 번을 만나고 운명이자 필연이라고 난 외쳤다. 우리는 다시 세 번째 만님이 되었다.


아이 엄마와 난 가끔씩 문자를 주고받고 SNS를 통하여 서로의 안부를 보며 그렇게 6년이란 시간 동안 천천히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이는 기적과도 같았다. 태어나 8년이란 시간 동안 수차례 수술을 겪으며 꿋꿋하게 강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의사들의 판단과 달리 아이는 무럭무럭 잘 성장했다. 그만큼 아이도 나름 노력했을 것이고 아이 부모도 잠을 설쳐가며 아이의 건강에 모든 집중을 했을 것이다.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되고 건강할 줄 알았는데 끝내 아이는 8년이란 시간을 열심히 살다가 하늘로 소풍을 떠났다.



띠링, 문자가 왔다.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모든 시간들이 멈춘 거 같았다. 제대로 문자를 읽을 수 조차 없었다.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문자를 읽었다. 엄마 품에서 편하게 소풍을 갔다는 그 글에 난 더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 껌딱지였는데 엄마 껌딱지다웠다. 아이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살릴 수만 있다면 내 목숨 다 바쳐 살려내는 게 부모의 마음였을텐데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물로 배웅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게 그저 그 아이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다.


살아가면서 모든 게 뜻대로 되는 게 있을까?
삶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정해져 있지 않다.
태어나는 순서만 있을 뿐.
삶은 용기를 내게 하고 그 순간들을 잘 살고
잘 지내고 하루를 버텨내고 내일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우리의 삶은 모두 안전하고 온전하고 건강할까?

나의 룸메이트는 8년이란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하루하루 버텨냈고 누구보다 강했고 그 누구보다 씩씩한 아이였다.

삶은 언제나 정해져 있지 않지만 정해진 삶에 주어진 시간을 다 쏟아붓고 갈 수만 있다면
이거야 말로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싶다.

눈물로 아이를 보냈고 내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을 그 아이는 어딘가에서 빛나게 살아 줄 것이다. 안녕, 우리는 만날 거야. 만날 때까지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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