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과 지혈의 나비효과

와파린을 먹습니다만..

by 김한우리


마치, 내 모습이 뱀파이어 같았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나라 전체가 초 긴장인 상태일 때 뜻하지 않게 특급 이벤트가 찾아왔다. 밖에 어딜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전 국민이 예민한 상태였다. 불현듯 이건 무슨 암시였을까? 갑자기 잇몸에서 피가 나더니 2시간~3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곧 멈추겠지.’하는 바보 같은 생각만 하고 피만 꿀꺽꿀꺽 삼키며 그날 저녁은커녕 밥 한술 못 뜨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이게 무슨 일 일까?' 싶어 다음날 아침 일찍 동네 치과를 내원했다. 동네 병원도 한 두 군데 지정해서 다녀야 의사 선생님들도 나의 특기사항을 잘 알 수 있기에 내과, 외과, 치과는 단골 병원을 지정해놨다. 치과에 도착한 나는 간단하게 엑스레이를 찢고 진료를 기다렸다. 와파린 복용을 아는 치과 선생님은 내 상태를 살펴보시더니 여기에선 치료를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치료를 원하면 서울 다니는 병원으로 가라는 치과 선생님 말이 그 당시 왜 이렇게 야속하게 들렸을까? 싶다. 하지만 그 야속함이 나에겐 이로운 해답였기에 나도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인근 종합병원 치과를 다시 내원했다. 워낙 치과로 유명한 병원이라 치료가 가능할 줄 알았다.


"여기서 치료를 받으시려면 서울 가서 진료 의뢰서(소견서)를 받아오셔야 합니다."

"의뢰서요?"

"네, 와파린도 드시고 하시니깐 의뢰서(소견서) 받아오시면 치료가 가능합니다."


피가 나는 곳만 치료해주면 되는데 까다로운 절차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그날 하루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치과에서만 온종일 보냈다. 치과 입장도 알기에 내 입장만 주장해서 내세우는 게 결코 녹녹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막상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니깐 아주 강하게 현타가 왔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다녔기에 입 주변에 피로 물든 나의 모습을 감추기엔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웠다. 거울에 비춘 내 모습이 마치 뱀파이어 같았다.


결국 5일이 지나도 피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 결단은 서울로 가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마지막 방법이었다. 그날 저녁 6시 30분에 출발하여 병원 도착하니 9시가 되었다. 다행인 건 치과 응급실이 따로 있었다. 병원 응급실처럼 분주하지 않았고 내 앞에 남자아이 한 명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내 차례는 두 번째였다. 응급실은 고요했고 한산했다.

내 차례가 되었고 말할 수 없는 나를 대신에 엄마가 치과 선생님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짧지만 깊은 한숨을 들을 수 있었다.

“와파린을 복용 중이시라고… 요.” 치과 선생님은 말끝을 흐리게 말했지만 난 그제야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면 나를 살려줄 수 있는 구세주처럼 보였기에, 그때 그 마음은 잊을 수 없었다.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와파린을 먹는 다고 해서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그러지 않다는 걸 알기에, 여기서도 나가면 난 정말 갈 때가 없다는 걸 알기에 더 간절했다.

드디어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취주사를 맞아도 아프지 않았다. 그동안 상처받고 아팠던 마음보다 더 아프지 않았기에....

“왼쪽 위에 잇몸이 약간 찢어졌어요. 이것 때문에 피가 나면서 지혈이 안된 거 같습니다. 와파린 영향도 있고요.”
“다행히, 상처 부위도 작아서 찢어진 잇몸 사이를 꿰매고 치료하면 될 거 같습니다."

원인 모를 출혈이 이제야 지혈이 되는 거 같아서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치료가 끝나고 그동안 고생한 흔적들이 머릿속을 해엄 치듯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병을 더 키웠다는 자책도 들면서...

모든 치료가 끝나고 병원에서 출발하여 집에 오니 새벽 2시가 되었다.

이제 끝난 것인가? 집에 가면서도 이렇게 쉽게 끝날 일이 난 미련하게 미련을 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구강외과 그곳에서 귀인을 만나다.


다시 또 피가 나기 시작했다. 꿰맨 부위가 터졌는지 다시 찢어졌는지 난 또 피를 삼켜야 했다.

‘혹시 다시 피가 나면 바로 치과에 오셔야 합니다.’ 어젯밤 치료를 받고 집에 갈 무렵 치과 선생님의 당부의 말이었다. 다음 날 회사에 연차를 쓰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치과 응급실과는 달리 치과는 생소했다. 40년 동안 심장과 다니면서 치과는 처음이었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INFO 데스크에 물어보니 구강외과를 가야 한다는 했다. 그리고 덧붙여하는 말은 초진 환자들은 바로 교수님 선택을 할 수 없고 우선 치료를 받고 더 치료를 원하면 그때 교수님 상담도 받아도 된다고 전했다.


구강외과 접수를 하고 진료실 앞에 기다리면서 밖에 있는 모니터 화면을 지그시 바라봤다. 많은 환자들의 이름이 나열된 화면을 보면서 '대학병원에서도 치료를 많이 받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먼저 구강외과를 지나오면서 많은 과들이 나열된 전광판을 봤다. 치과 보철과, 치과 교정과, 구강내과, 등등 세세하게 나눠져 있는 과를 보면서 동네치과 선생님들은 만능 엔터테이너구나, 새삼 느꼈다.


모니터 화면에 내 이름 세 글자가 보였다. 몇 번 자리로 가라는 안내 멘트까지 듣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와~~~~~~~~ 진풍경이다.' 칸막이처럼 다닥다닥 붙어져 있고 안 쪽으로는 붙박이 식으로 되어 칸칸이 마다 선생님들이 있었다. 심장과 진료실처럼 진료실 하나에 의사 선생님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정신 차리고 나의 번호를 찾아 진료실에 도착했다. 나 한 명 진료하는데 서포트해주는 선생님들이 어림잡아 3명이었다. 메인 치료를 담당하는 선생님은 아직 보지 못 한채 서포트만 받고 있을 무렵 드디어 나를 치료해 줄 선생님이 도착했다.

'응???? 어????'

검정 뿔테와 마스크 사이로 어마 무시한 훈남 향기가 나는 선생님이었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일명 만찢남이라고나 할까? 무서운 치과 진료실에 멋지고 예쁜 선생님들이 계시면 진료도 아프지 않고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근데 대학병원 치과 진료실은 다 칸막이로 되어 있는 건가?? 다시 또 의문을 갖게 되면서 만찢남 치과 선생님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과 바로 전날 여기 치과 응급실에 온 것까지 풀 스토리를 이야기했다.

“음….. 와파린을 드신다고요………..”
"네."
"심장수술은 언제 하셨나요?"
"마지막으로 한 건 2016년입니다.
"와파린은 언제부터 드신 거죠?"
"2004년부터 먹었습니다."

간단한 질의응답을 마치고 선생님은 컴퓨터에 나와 함께 나눈 대화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자, 이제 한번 볼까요?” 선생님은 치료 도중에도 계속 질문을 했다.

‘yes일 땐 고개를 끄덕, no일 땐 도리도리’를 하며 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질문은 계속 이어져갔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입을 벌리고 치료를 받았을까? 다행히 급한 불을 끈 후 다시 상처를 꿰매고 있었다.


치과에서만 종일 시간을 다 보내고 주차정산과 약 처방을 받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을까? 그때 시간이 저녁 6시가 남짓 했다. 근데 다시 출혈이 나면서 입안 가득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상처를 꿰맨 상태라 생각 들었는데 겪어보니 트라우마가 생긴 거 같았다. 구강외과로 달려가니 이미 진료는 종료된 시점이었다. 그럼 다시 응급실로 갈 수밖에 없었고 응급실 오픈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찰 날에 오후에 날 치료해준 그 만찢남 선생님이 구강외 과실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난 바로 달려가 "선생님 피가 또 나요."

다짜고짜 피가 난다는 나를 본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셨는지 나를 데리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정말 감사한 건 외래 진료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당직도 아니신데 치료를 위해 다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오후에 진료받은 환자가 아니었다면 난 응급실 앞에서 줄곧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말 귀인을 만난 걸까? 덕분에 하늘도 감동하셨는지 마지막으로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점부터 시작해 그 이후에도 피가 나지 않았다. 모든 치료가 그제야 완료가 됐음을 알려줬다.


와파린이란 특수한 약을 먹으며 처음으로 이벤트가 왔다는 거에 놀라고 가슴 뛰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다음부턴 더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다시금 각인시켜주는 거 같았다.

이제 무조건 이벤트가 생기면 서울행이다. 무조건 무조건이야.!!!!!!



아픔이 지나가니 다시 또 딴생각을 한다. 와파린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출혈과 멍이 생기는 걸 조심해야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와파린을 먹어도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다만 멍만 심하게 생길 뿐이었다.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줄곧 생각한 것이 임플란트였다. 이곳이라면 임플란트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상상력이 발동되었다. 평생 숙원 사업이었고 나의 버킷 리스트인 임플란트가 갑자기 욕심난다.!!!!!!!!!!!!!!! 브레이크 밟은 시간도 없이 갑자기 쿵!! 이거 급 발진이다.!!!


임플란트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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