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광고 대사처럼)
별거별거 다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넌, 때 되면 다른 사람들 보톡스를 주기적으로 맞는 것처럼 심장수술도 그렇게 한다."
난 웃었다.
처음엔 17년 만의 2차 수술, 8년 만의 3차 수술, 3년 만의 4차 수술 점점 시기가 짧아지긴 하다.
그래도 용케도 이번엔 다시 8년 만의 5차 수술을 앞두고 있다. 아직 그 시기는 조금 남아 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년 남짓. 그 안에 신나게 놀아야 하는데 뭐하고 놀아야 하나?? 난 그때가 성수기이다. 왜냐면 쉴 수 있으니깐.. 웃프지만 그렇다. 뭐 직장인들에게는 하루라도 쉬는 날이 있음 그날이 곧 휴가이자 힐링의 시간.
심장수술 환자들도 제 각기 다르다. 회복이 빠른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 그리고 수술이 잘 된 사람, 그렇지 못 한 사람 모 아니면 도 같은 환경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늘 외줄 타기 하듯 바람과 부채를 이용하여 내가 떨어지지 않게 나를 보호하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나한테 얘기한다. “넌 너무 극단적이야”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살아온 내 인생에 후회하지 않는다. 절망도 없다.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만 있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난 다니고 있는 병원 내 치과병원에서 임플란트 수술을 받았다. 1차, 2차 수술은 예기치 못한 이벤트가 올 수 있고 와파린이란 약으로 인해 출혈과 지혈의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기 위해 심장과는 입원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무조건 입원!!
일주일 정도 와파린 복용을 할 수 없었기에 와파린을 대신할 친구가 매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맞아야 하는 그건 바로 헤파린 주사이다. 때때로 환자들은 헤파린 덕분에 반강제 입원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임플란트 1차 수술 - 일주일 입원
임플란트를 하기 전 검색창에 [임플란트 후기]라고 검색을 수도 없이 했다. 블로거들의 후기를 읽어 보면서 일종의 예행연습이라고 할까? 나 역시 그분들의 이야기를 엿보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1일 차 - 기본검사(피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x-ray) + 저녁 9시 헤파린 주사
2일 차 - 아침 9시 헤파린 주사, 저녁 9시 헤파린 주사
3일 차 - 아침 9시 헤파린 주사, INR 피검사 , 저녁 9시 헤파린 주사
4일 차 - 아침 9시 헤파린 주사, 저녁 9시 헤파린 주사
5일 차 - 아침 9시 헤파린 주사, 비타민K주사, 임플란트 1차 수술, 저녁 9시 헤파린 주사
6일 차 - 아침 9시 헤파린 주사, INR 피검사, 저녁 9시 헤파린 주사
7일 차 - 아침 9시 헤파린 주사, 퇴원
:) 임플란트 1차를 마치고 그날 저녁 해질 무렵부터 푸르스름한 멍자국들이 턱 밑으로 빼꼼하니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일주일 정도 멍~자국을 선물해주고 떠났다. 이때 처음으로 코로나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마스크 고마워.
1차 때 픽스처 즉 인공 치아 뿌리를 심는 과정에서 후기를 참고하자면 아픈 것보다 드릴 소리에 많이들 놀라셨다는 글을 읽었다. 나 역시 드릴로 내 살들을 뚫어버리는 아찔한 순간들을 상상해보니 끔찍할 수가 없다.
일단 마취를 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시작된 임플란트 수술. 아픈 건 뒷전이고 드릴 소리에 지레 겁을 잔뜩 먹고 있다가 순식간에 세 곳을 뚫어버린 교수님이시다.
일주일 후 실밥을 제거하며 1차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잘 견뎠고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참 다행이었다.
5개월 후 -2차 수술(일주일 입원)
1차 수술 때와 마찬가지로 입원을 결정하고 헤파린 주사를 맞으며 2차 수술을 진행했다.
어버트먼트 요 녀석은 내 심기를 마구 건드려줬다. 음식을 씹거나 먹을 때 같이 트위스트 춤추듯 구조물이 풀려서 서울을 두어 번 다녀왔다. 나사가 풀릴 수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설마 나도 그럴 줄이야….
1차, 2차 입원 치료를 하며 구강외과 교수님은 회복도 빠르고 치아 상태도 괜찮다고 말씀해주셨다. 정말 난 수술 체질인 것인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부모님에게 참 감사하다. 큰 이벤트 없이 수술을 잘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셔서 말이다.
3차 수술 : 외래진료 당일 방문(단, 자주 방문함)
3차 수술은 구강외과에서 보철과로 전환되었다. 구강외과는 달리 보철과는 음, 뭐랄까?? 모든 과가 다 바쁘지만 뭔가 여유로웠다. 3차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교수님 의료 방침을 따랐고 많은 이야기를 하며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딱 일 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임플란트는 나에게 힘을 실어줬고 맘껏 고기도 씹고 껌도 씹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5년이란 시간 동안 어금니 없이 살다 보니 안면이 비대칭이어서 얼굴 보기조차 싫었지만 지금은 거의 대칭이 되었다. 마치 인간 승리를 한 것 같다.
지금부터는 임플란트 수술을 하면서 와파린의 친구 헤파린 주사 이야기를 해보겠다.
아침저녁으로 맞는 헤파린 주사는 나를 피폐하게 만든다. 팔뚝 하나 내어주면 돌아오는 건 고통이니 번번이 나만 손해인 셈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넌 이번엔 참아줘야겠어.’ 주삿바늘이 팔뚝 안으로 쑥 들어가면서 내가 속삭이는 거 같다. 진짜 약 오르다. 그리고 약이 몸에 퍼지는 순간 거짓말 조금 보태서 1~3분가량은 눈물이 찔끔 난다. 매일 반복되는 시간들이 돌아올 때마다 병실 침대 밑으로 숨고 심은 심정이랄까? 요 녀석 정말 두고두고 지켜봐야겠다 싶어 주사기 인증샷을 남기려고 하는 순간 간호사 선생님은 뽀로로 대일밴드도 함께 찍자며 카메라 안으로 들어와 주셨다.
만약 그때 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버킷리스트 임플란트를 간절히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임플란트를 하게 된 사연은 [사탕]에서 비롯되었다.
사탕을 입에 물고 사탕은 녹여먹어야 하는 것인가? 깨물어 먹어야 하는 것인가?
사탕을 오물오물 먹다가 깨물어먹었다. 것도 야무지게 양쪽으로, 난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이다.
사탕을 먹은 후 양쪽 어금니가 욱신거려 그다음 날 치과를 내원하니 양쪽 어금니가
모두 금이 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눈물을 머금고 일주일 간격으로 발치를 하고
5년이란 세월 동안 어금니 없이 살았다.
그땐 임플란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 심장만 보호하기 바빴기에_
이제 난 심장을 중심으로 내 몸 구석구석을 돌보고 있다.
아프지 말고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건강해서 남 주는 게 아니라 건강해야 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