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을 아프다 겨우 출근을 시도했다.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정류장까지 기어가다시피 했다. 버스 정류장을 보자마자 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쓰러졌다. 얼굴과 손이 시멘트 바닥에 갈렸다. 쓰러져 정신이 들지 않아 응급실에 실려갔다.
나는 도저히 B병원까지 갈 힘이 없어서 B병원 의사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의사 선생님은 처방해준 약 중 자낙스정을 반으로 잘라 용량을 낮추고 렉사프로정 5mg라는 약을 빼라고 했다.
아, 여기는 아닌가 보다. 약이 나하고 안 맞는다. 의사 선생님은 더더욱 안 맞고.
내 병명에 의구심을 가지니 마치 내가 잘 못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긋지긋한 병이었지만 그 또한 나여서 내가 부정당한 기분이랄까?
지긋지긋한 병이었지만 그 또한 나여서 내가 부정당한 기분이랄까?
나는 결국 다시 익숙한 A병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A병원의 의사 선생님을 보자니 휴……. 참고 또 참고. 많이 참았다.
그러다 8개월 뒤 C 병원으로 옮겼다. 이번엔 진짜 면밀히 검색하고 내가 검증할 수 있는 만큼 검증해서 갔다.
C병원은 B병원 근처,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병원이었는데 역시 집에서 가깝고 쾌적하고 심지어 예약한 시간에 딱 맞춰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한 차례 해봤으니 의무기록지를 다 챙겨 C병원으로 갔다.
역시 리뷰는 믿을게 못 된다. 직접 겪어보고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거지.
C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젊은 분이셨다. A, B 두 병원에서의 내 의무기록지를 보고 B 병원의 의사 선생님과 비슷한 말을 했다.
“양극성 장애 진단은 면밀히 지켜보고 내려야 하는 거예요.”
또다시 내가 부정당한 것 같았다. 내가 아프다는데, 6년을 다닌 병원에서 그 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다는데 왜 계속 반문하고 내 병을 부정하는 거지?
그래도 C병원 의사 선생님은 약은 기존에 먹던 것과 비슷하게 처방해주어서 약에 대한 부작용은 적었다.
6년간 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호전된 부분은 있었다. 자살 충동은 있었으나 미수도 하지 않았고 공황 발작도 횟수가 많이 줄었다. 그랬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안 맞아도 A병원을 꾸준히 다닌 것도 있다.
그러나 결국 건강 문제로 회사를 다니지 못하게 되고 2020년 3월, 부모님이 계신 제주로 내려왔다.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에 있는 동생들을 보고 바람도 쐴 겸 상경하면서 C병원에 다녔다.
그간 다녔던 A병원도 상태가 호전된 이래 한 달에 한 번 진료를 받았었다. 중간중간 상태가 여의치 않거나 하면 중간에라도 예약을 잡아 오가면 된다고 안내받았지만 그랬던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C병원의 선생님은 내가 제주에서 온다는 것에 부담스러워하며 매 진료 때마다 제주로의 이관을 권유했다. 그때마다 나는 고집을 부렸다.
“저는 아직 제주에 정착할지 안 할지 결정을 못했고, 서울에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올라오는 것도 평일 아침 비행기라 경제적 부담도 적고 제주에만 있으면 갑갑하니 서울 놀러 올 겸 오는 거예요. 저는 이 병원에 다니고 싶고 또다시 맞는 병원과 약을 찾으러 고생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렇게 C병원을 10개월 다녔다. 한 달에 한 번씩 갔으니 10번을 간 건데, 어느 순간부터 병원 가는 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선생님은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듯하다가도 늘 진료 마지막엔 ‘그래서 제주에서 병원 다닐 생각은 없냐.’는 걸로 귀결되었다.
2021년 3월이 되어 나는 제주에 정착할 발판을 마련했고 미련 없이 C병원을 다니기를 그만두었다.
제주로의 이관을 위해 의무기록지를 뗐다. 의무기록지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의사는 내가 자살해서 책임이 자신에게 전가될까 봐 두려웠구나.’였다.
의무기록지 곳곳에서 내가 장기 처방을 원했고 머물고 있는 제주가 아닌 C병원을 ‘굳이’ 내원하기를 희망했으며, 장거리라 내원이 어려우니 근처 병원을 방문하도록 의사 본인은 강조했다고 적혀있었다. 혹여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자신은 책무를 다했다는 점을 매번 남겨놓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니 C병원 의사 선생님을 더 비난하고 싶진 않지만, 속상했다.
지금은 제주에 있는 D병원을 다니는데 매우 만족스럽다. A, B, C를 거쳐 와서기도 했지만, 병원 시스템도 선생님도 다 마음에 들어서 드디어 스트레스 없이 안정감 있는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의사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면 바꿔야 한다. 나처럼 곪을 때까지 혼자 끙끙대거나 ‘에이, 한 달에 한 번 보는 건데 그냥 내가 참고 지나가고 말지.’라며 넘기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