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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령 Jan 05. 2022

4화. 소복하다, 따뜻하다, 폭닥하다

word by min__zi

소복이 쌓인 눈은 보기엔 정말 예뻤다.

치우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나는 ‘악마의 똥가루.’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정오가 되니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비쳤다.

따뜻했다. 묵직한 눈구름도 없고 하늘이 청명하게 높았다.


“날씨 꽤 폭닥하다?”

그가 말했다.


“이대로 두면 알아서 녹지 않을까?”

나는 귀찮아져서 삽으로 소복하게 쌓인 눈을 폭폭 찍으며 딴 소리를 했다.


“이 정도 높이면 녹진 않고 밤 되면 얼 거야.”

그는 얄짤없었다.


그래 치우자 치워. 나는 장화를 다시 신고 목장갑을 끼고 삽을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치우는데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그는 길을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좋아. 나는 눈을 한 움큼 집어 공 모양으로 만든 후 그에게 던졌다.

전쟁이 시작됐다.

그는 한 삽 거하게 눈을 퍼 나에게로 흩뿌렸다.

나도 지지 않고 눈을 뭉쳐 던져댔다.

그가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나는 방어 태세를 취하기 위해 집 현관으로 도망가다 등에 커다란 눈 뭉치를 맞았다.


“야, 아파! 춥다고!”

나는 몸을 떨어 눈을 털어냈다. 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현관 양 옆으로 밀어놓은 눈을 통째로 집어던졌다.

눈은 멀리 가지 못하고 허공에 흩뿌려졌고 싸락눈처럼 내 온몸에 떨어졌다.


“이런. 아이씨 이게 뭐야.”

나는 짜증이 났다.    


(5화에서 계속)


<단어 줍는 진이령>은 인스타그램 project_jiniryeong 계정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기반으로 적은 연작소설/에세이입니다.


댓글로 단어를 달아주시면 그 단어들을 엮어 연작 소설을 적거나 에세이, 짧은 글을 써보고자 기획하였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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