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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주 Oct 16. 2020

단편소설  : 만족하는 삶 (7)

잃어버린 꿈에 대하여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역시나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곳에서 나는 팔과 다리가 묶인 채 어정쩡한 포즈로 서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위에서 내 다리를 감은 실을 잡아당긴 모양인지 가만히 서 있던 오른 쪽 다리가 살짝 위로 들리었다. 그의 조종이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 예상된 시나리오라면 나는 평소처럼 그의 조종에 그대로 몸을 맡기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있는 힘을 쥐어 짜내어 어깨와 팔 그리고 팔꿈치를 감고 있는 실을 잡아 뜯어내기 시작했다. 내 몸을 감고 있는 실을 끊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아니 사실은 예전부터 갈망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저 시도 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실을 끊고 나와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내 몸을 묶은 실을 차례차례로 뜯어내었고 무릎에 묶인 마지막 실 까지 모조리 끊어내었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앞은 캄캄했으나 나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한 걸음도 지체할 수 없었다. 오래 전부터 이미 지나쳤어야 하는 길을 이제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걷자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컴컴했던 공간이 갑자기 동전을 뒤집듯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 곳의 하늘은 알록달록한 무지개가 펼쳐져 있었고 땅은 푸르른 초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걷고 있지 않았다. 그 곳에서 나는 한 손에는 팔레트를 한 손에는 붓을 들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스케치북 속에 있는 그림은 하늘에 펼쳐져 있는 무지개만큼이나 알록달록한 다양한 빛깔이 부드럽게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속의 아이들은 강아지와 장난을 치거나 서로 술래잡기를 하며 재미나게 놀고 있었다. 나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다 무언가가 나를 계속 주시하는 듯한 느낌에 잠시 시선을 돌렸다. 내 주위에는 어린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쭈뼛쭈뼛 거리더니 옆에 끼고 있던 책을 꺼내고서는 한 페이지를 펼쳐서 내게 보여주었다.      


 "이거 언니가 그린 거 맞죠?"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 아이가 펼친 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그 페이지에는 동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그림이 내가 그린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나는 내가 그린 그림이 처음으로 동화 삽화로 들어간 책이라는 것까지도 생각해 냈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와 정말요? 그럼 언니 그림 하나만 그려주면 안 돼요?"     

그러자 조용히 옆에 있는 아이들이 이구동성 소리를 내며 내게 말했다.     

"나도!"

"누나 나도 그려주세요!"

"아, 알았어,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그려 줄 테니까 한 명씩 한 명씩 차례대로 줄 서. 안 그럼 안 그려 줄 거야?"     

그러자 아이들은 재빨리 줄을 섰다. 나는 스케치북을 뒤로 넘겨 그림을 다시 그렸다. 한 장 한 장 그려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림을 받아들고는  고개를 꾸벅하며 감사하다며 큰소리로 인사했다. 그림이 꽤 만족스러운지 아이들은 받은 그림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들의 웃음 때문인지 마음이 흐뭇해졌다.     


"누나! 다음에도 또 그려주세요." 

"언니가 그린 그림 있는 동화책 다음에 또 살 거예요."

"언니가 그린 그림 진짜 예뻐요!"     


 왠지 머쓱한 기분이 들어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이들의 칭찬 탓인지 그림을 받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워서 인지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기분 좋은 느낌이 마음에 한 가득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나는 그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그 시간 속에 머무르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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