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넷이에요? 집에 여유가 있나 봐~ 아이들 키우는데 돈 많이 들 텐데."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다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 돈에는 아이들의 의식주뿐 아니라 사교육비가 포함된 이야기로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전년대비 4.5% 증가한 27조 1000억 원이란다. 2007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역대 최고치의 금액이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엄마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 중에 '아이 나이에 0을 붙이면 학원비'라며 6세면 60만 원, 초등학교2학년 9세면 90만 원 이런 식으로 계산된다'는 말에 마냥 웃을 수도 없다. 주변 친구 몇 명만 이야기해봐도 그 말이 맞단다. 그게 현실이니까. 2년 전 유명 연예인 부부가 예능에 나와 미취학 삼 남매를 키우는데 월 800만 원의 사교육비가 든다는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제 막 결혼 한 일반 가정은 이게 가능할까? 이런 풍토에 저출산의 오적 중 하나는 사교육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재미 삼아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금방 계산해서 " 우리는 470만 원이 나오네" 한다. 실제로 네 남매에게 드는 금액을 모두 합쳐도 6세 아이에 0을 붙인 만큼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초등 친구들이 하는 학습지와 각자 원하는 피아노나 수영 같은 예체능과 이른 고등 검정고시를 본 16세 큰 아이는 한자 학습지와 이주에 한번 두 시간 북 클럽을 하고 있다. 초등 아이들은 지난달까지 5개월 동안 동네 청소년수련관에서 이만 원 정도에 미니어처 만들기를 수강하기도 했다. 나는 사교육 반대론자도 아니고, 국영수가 됐든 예체능이 됐든 아이의 흥미나 필요에 따라 전문 선생님께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도 우리도 원치 않으니 형편껏 할 뿐이다. 실제로 우리 가정은 공교육에서 벗어난 홈스쿨링이라는 대안교육을 10년째하고 있는데, 간혹 부모가 잘 가르치니 사교육 하지 않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아이가 우리가 사교육을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도서관을 잘~이용했기 때문이다.
" 은혜야 너는 뭐가 좋아? 발레랑 클레이, 공예..." "무조건 공주 발레 꼭 하고요. 클레이 만들기가 좋아요!" 집 앞 주민센터 도서관 가기가 익숙해졌을 무렵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도서관 프로그램 전단지'
주민센터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전단지를 집어와 큰 아이와 나란히 앉아 배우고 싶은 수업에 동그라미를 쳤다. 주민센터 내 도서관 강좌는 일반 문화센터나 학원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값이다. 아이가 셋, 다자녀 할인까지 받으니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다. 강좌 때문에 주 3회 이상은 또는 수업이 많을 땐 주 5회 도서관에 출석도장을 찍었다. '셋째는 태어나보니 집이 도서관이더라~' 할 정도로 매주 도서관 가기는 우리의 루틴이 되었다. 큰 아이가 수업을 받는 동안 3.2살 동생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으니 작은 도서관 온돌방에 앉아 책을 장난감 삼아 놀았다. 그렇게 2년을 열렬히 도서관을 다닌 덕분에 세 아이 모두에게 책을 읽어주는 습관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 아이들 모두 여자아이들이라 유치시절엔 주로 발레를 했고, 주로 손으로 하는 종이 접기나 공예, 그림책 수업을 들었다. 초등학년이 되어서는 도서관에서는 독후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나 과학실험, 스케치, 미술 등 아이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들을 찾아다녔다. 처음 신청이 번거롭지 한 번 신청을 하고 나면 기존 수강자에게 우선 신청기간이 있기 때문에 수월했다. 매 월 절기별로 다채로운 행사들도 있어서, 독서의 달이나 과학의 달, 도서관 주간, 설과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소소하고 흥미 있는 프로그램을 참석하는 것도 큰 재미 중의 하나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사교육의 시작은 도서관에서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큰 아이가 발레리나가 꿈이라며 3-4년을 지속하던 발레를 그만둘 때, "발레리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이 되었어요 " 라며 진지한 이야기를 해 가족 모두 웃음을 터트린 적도 있다.
3살 터울 연년생으로 딸 셋을 낳고, 마흔에 늦둥이를 하나 더 낳았다. "아무리 아이가 좋아도 그렇지 너무 한 거 아냐?" 주변에선 애국자로 보는 한 편, 다른 쪽에선 대책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역시나 계산기를 두드리면 답이 없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이 기간 동안 사교육비에 대해 저절로 실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의 건강상 문제로 유치원 한 학기만 쉰다고 시작해서 어느새 한 학기씩만 갱신하자 마음먹다 보니, 10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중3아이가 2 달반 수학학원을 다닌 것 외에 세 아이 다 유아, 유치, 초등시절에는 예체능 외에는 별도에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하지만 도서관은 참새 방앗간같이 드나들었다. 도서관을 다니다 보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이 난다. 열매부터 가지며, 마지막 남은 그루터기까지 내어주는 장소. 어떻게 하면 책을 읽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은 수업을 제공할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많이 찾아올까? 늘 고민하는 사서선생님의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육아를 시작할 십수 년 전에도 도서관은 우리 어머니 말대로 머리부터 끄트리까지 버릴 것이 한 개도 없는 명태 같은 곳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더 좋아졌다. 전국 방방곡곡, 지방 도서관에 가서도 그 시설과 프로그램에 입이 떡 벌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최근에 가족들과 홍천에 갔다가 무궁화수목원에 있는 숲 속도서관에 들른 적이 있다. 기대 없이 들른 숲 속 작은 도서관은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고, 통유리 밖은 온 사방이 울창한 숲 속이었다. 고급 호텔 마운틴 뷰가 따로 없었다. 테이블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니 숲 속의 피톤치드가 팡팡 솟아 나오는 강원도 어느 숲 속 한가운데 앉아 있는 듯했다. 간혹 이렇게 좋은 도서관을 발견하면, 혼자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아 미안할 때가 있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세금을 내고 운영되는 곳인데, 아이들 교육뿐 아니라 엄마들에게도 나쁠 것이 없는 곳이 도서관이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