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 장착
바리스타를 그만 둔 이유 중 하나를 이렇게 항상 망각한다.
나는 카페인이 몸에서 잘 받지 않는다. 열아홉 살(만 18세) 때부터 스무 살 때까지 폴바셋에서 일을 했다. 벌써 10년도 전 일이다. 진하기로 유명한 폴바셋의 에스프레소는 먹어본 사람은 안다. 리스트레토처럼 아주 짧게 뽑아내서 찐득해 보이기까지 한다. 보통 오픈 전에, 점심 피크타임이 지난 시간에 한 번씩 원두 세팅을 했다. 원두 분쇄도를 조절하고 탬핑 강도를 바꿔가며 에스프레소를 뽑고 마셨다. 빈 속에 여러 잔을 들이키면 구역질이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직원들과 사이가 좋았던 터라 회식을 자주 했다. 한 번은 홍대에서인가 회식을 했는데 집에 돌아오는 택시에서 어떻게 내려서 집에 어떻게 걸어왔는지 기억이 끊겼다. 내 몸 상태가 어떻든지, 그다음 날 바로 나는 혼자 오픈을 해야 했다. 집에서 걸어서 20분이면 가는 거리라 걸어서 출근을 하는데 미칠 것 같았다. 술병이 난 채로 구석 길바닥에 토를 하고 또 걷다가 또 토를 했다.
정신력으로 오픈 준비를 하며 세팅을 하는데 커피를 마시고 또 토를 했다. 일을 하는 중에 계속 반복되는 증상에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없자 점장님이 병원에 다녀오라고 했다. 식은땀까지 나는 지경이었으니 집에 가서 쉬는 게 맞았다. 하지만 병원에 가는 게 너무 죄송했다. 그 당시 요식업의 특징은 긴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하고 계속 서서 하다 보니 한 명만 자리를 비워도 힘들었다. 그래서 길게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마취도 하지 않고 위내시경을 했다.
검사 결과 ‘십이지장궤양‘이 있다고 했다. 술과 커피 모두 증세를 악화시키는 요인이었다. 항생제를 처방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쁜 균을 죽여야 해서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했다. 그런데 그 약을 먹으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구역질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커피를 끊고 먹었어야 했는데 세팅 잡을 때마다 에스프레소를 몇 잔씩 마시니 속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결국 약은 몇 번 먹다가 포기했다. 그때 당시 살이 42kg까지 빠졌다.
커피가 점점 무서워졌다. 좋은 사람들을, 커피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가진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나는 그들처럼 커피에 온 정신을 쏟을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해 11월에 퇴사했다.
어제는 점심시간에 맛있는 커피집을 찾았다. 다음날 쉰다는 이유로 걱정 없이 들이켰다. 친한 동료를 친히 불러다가 마신 건데 결국 잠을 제대로 못 잤다. 평소에 12시 전엔 자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한시 반쯤 잠든 것 같다. 잠이 안 올 거라는 걸 알고 마셨으니 어쩔 수 없지..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만들고, 우유나 물이 조금 들어간 커피에 유독 더 약하다.
오늘 아침엔 어디서 나는지 모를 발망치소리에 일찍 깼다. 전에 범인을 찾고자 위층에 올라갔었지만 바로 윗집, 대각선집, 그 옆집까지도 모두 자신들이 낸 소리가 아니라고 했다. 새벽 6시 전후로 울려대는 발소리에 정말 미칠 노릇이다.
‘난 왜 이렇게 평소에 긴장도 잘하고 잠귀도 예민하고 커피도 못 마실까’라고 생각하며 아침이 밝았다. 시계를 보니 8시가 넘었다. 지금도 계속 쿵쿵거리는데 미칠 노릇이다. 잠귀가 어두웠다면 이 소리도 안 거슬렸을 텐데, 카페인이 몸에 잘 받았다면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이 있을 텐데..
잘 자야 하루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잠이 안온 건 아닐까. 6시간만 자도 피곤하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8시간은 자야 피곤이 가시니까, 남들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는 생각이 나를 더 괴롭히는 것 같다.
커피 좀 못 마시면 어때, 허브차 마시면 되지.
8시간 자면 어때, 회복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사람마다 다른 건데.
휴우 커피 안 마셔도 되니까 누가 발망치 소리 범인 좀 잡아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