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아웃’과 감정
<영화>
상담을 받으면서 굉장히 중요한 걸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됐다. 그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애니메이션 영화를 통해 살펴보려 한다.
'인사이드 아웃'에는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감정 컨트롤 본부가 있다고 나온다. 그 본부에는 다섯 가지의 감정이 있는데 위의 다섯 캐릭터가 라일리라는 주인공의 감정을 담당한다. 사람에게 생성된 기억은 다섯 색깔 중 한 가지가 되어 본부로 들어온다.
어느 날 라일리네 가족은 이사를 가게 된다. 이때 라일리의 기쁜 감정을 담당하는 '기쁨(Joy)'이가 슬픈 감정을 담당하는 '슬픔(Sadness)'이를 자꾸 멀리하려 하고 밀어내려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다 기쁨이와 슬픔이는 실수로 본부에서 이탈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라일리는 새롭게 바뀐 환경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을 감행하게 된다. 이때 기쁨이는 슬픔이와 함께 본부로 돌아가 라일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본부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낸다(슬픔이를 이끌고). 우여곡절 끝에 본부로 돌아왔지만 기쁨이와 버럭, 소심, 까칠이 모두 라일리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슬픔이는 감정 컨트롤 장치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라일리는 가출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슬픔이는 라일리의 닫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슬픔은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슬픔이는 기쁨이 없이 홀로 감정 컨트롤 본부에 과연 도착할 수 있었을까? 어느 하나의 감정만으로 라일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내면에 깔려 있는 슬픈 마음은 아주 부드럽게 끄집어내어 그 슬픔을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자신을 위로하여 성숙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닐까. 타인의 도움에 의해서든, 스스로의 힘으로든 자신의 마음을 보듬는 일은 슬픈 감정 하나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반대로 기쁘거나 긍정적인 감정만으로 해낼 수 없다.
결국 라일리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을 땐 그날의 기억에 슬픔과 기쁨의 기억이 공존하는 구슬이 본부로 들어왔다(처음으로 구슬의 색이 어느 하나의 감정에만 치우치지 않고 섞여서 만들어졌다). 불행했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기억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하나씩 섞여있는 것처럼, 기억은 어느 하나의 감정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고 여러 감정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감정 중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종종 외면하고 살아간다. 슬픔은 분노나 좌절처럼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다. 오히려 슬픔은 타인이나 본인을 공감할 수 있는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감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슬픔이 있어야 내면을 더 들어다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좋은 순간을 추억할 때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도 행복한 감정과 슬픈 감정이 동시에 들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상담>
의지했던 사람이 나를 두고 떠나 버렸을 때 나는 쉽게 우울에 빠지곤 했다. 4년 전인가 만났던 사람과는 헤어지고는 정말 오래 힘들어했었다. 그때는 유일한 즐길거리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일이었다. 외로움과 슬픔을 외면하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정말 부단히도 노력했다. 외면하는 일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진행 중인 상담을 통해 지난 내 감정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참 외로웠겠다고 토닥여줄 수 있는 그릇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나의 감정 표현에 유능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상담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감정을 다루는 데 점점 유능해지고 있었구나.
나는 선생님께 어떤 실천을 해야하는지 질문했다. 선생님은 상담을 끝내기 전 내가 알아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사항을 말해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슬픔과 외로움을 적대시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품어주는 일이에요. 그리고 관계에 대한 기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 중요해요."
늘 피하거나 맞서 싸우며 지내왔다. 그러다 지치면 땅에 철퍼덕 쓰러져버리기 일쑤였다. 이제는 이겨먹을 수 없는 마음을 상대로 싸워내려고 하기보다는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공감하는 ‘슬픔’과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긍정적인 ‘기쁨’ 감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상담의 첫 단추가 무엇이든 일단 끼워보기만 하면 나머지 단추들은 순서에 맞춰 가지런히 끼워질 것이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리든 조급해하지 않으면 된다.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은 조금씩 자기감정에 대해 유능해지고 있다는 증거니까. 이 글이 조금이나마 상처받은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기를 오늘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