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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극복하기

성폭행 미수범은 두 발 뻗고 자고 있을까

by 김둥둥 Mar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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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 건강 질환'이다. 학교폭력이나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등을 겪은 아이들이 보통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고 그것을 적게는 수년 많게는 평생을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나도 학창 시절에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이 있었다. 상담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 꺼냈고 내가 가진 불안감, 우울감이 많이 호전되었다. 요즘 나는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상담을 더 지속할지 말지에 대해서 결정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상담 종결 전에 마지막으로 다루고 싶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숙면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트라우마 때문인 것 같다. 그때부터 가위눌리기 시작했으니까. 이미 십몇 년도 더 지난 일이고, 일상생활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내 '수면'을 그만 좀 방해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는 그때 중학생이었다. 그 당시엔 바닥을 치는 내신을 올리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하교 후 집에 들러 좀 쉬다가 학원 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학교를 마친 뒤 집에 갔다. 다니던 중학교에서 집까지는 멀지 않아 걸어 다녔다. 집에 도착해서 제육 덮밥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시원한 날이어서 바람이 잘 들어오게 현관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우리 집은 다세대 주택 2층이었다. 현관문에 달려 있는 장식이 요란하게 소리가 났다. 바람이  많이 부는가 보다 하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더니 후드 집업을 입고 모자를 눌러쓴 검은 머리의 건장한 남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소름이 끼치기도 전에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저 사람은 누구지?'


나는 안방 바닥에 앉아 있었고 거실에 서 있던 그 남자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때 깨달았다. 이 짧은 인생 살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저 사람 나쁜 사람이구나. 하지만 깨달음이 늦었다. 소리를 지를 거면 진작 질렀어야 했다. 그놈은 내 몸을 마구 더듬었다. 아니 저항하는 나를 제압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소리 지르는 내 입을 가차없이 틀어막았다. 나는 있는 힘껏 몸부림치며 외쳤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렇게 몇 분 실랑이를 했을까. 내 격렬한 저항 때문인지 그놈은 갑자기 물러났다. 그리곤 이 말을 하며 도망갔다.


"알겠어. 간다 가."


온몸을 벌벌 떨면서 현관문을 잠갔다. 너무나 무서웠다.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대충 상황을 설명하고 빨리 집으로 와달라고 전화 한 뒤 내 몸을 살폈다. 왼쪽 팔에 교복 셔츠가 찢어져 있었다. 작은 칼을 들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경황이 없어서 무슨 흉기를 들고 있었는지 따위는 볼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와 경찰, 형사들이 집을 찾아왔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가물하다. 경찰차를 타고 보건소로 진술을 하러 갔었는데 그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 몇 명이 찾아와 주었었던 기억 밖에는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청심환을 사다 주셨었는데 그걸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귀신이 칼을 들고 내 몸을 마구 쑤셨다. 그날 밤은 새벽에 일어나 안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잠을 잤다.


그 일이 있고서 형사 두 명이 우리 집 근처에서 잠복근무를 했다.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5일이 지났을까?  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혼자 곧장 가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친구가 교실 청소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집으로 같이 갔다. 그런데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곧장 친구와 집을 빠져나와 큰 골목길에서 형사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다. 바로 인근에 있었던 형사 두 명이 집에 같이 가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창문이 처참하게 깨져있었다. 그놈이 다시 왔다니. 파이프 같은 걸 타고 화장실 창문을 깨고 들어와 우리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아저씨 말로는  남자가 우리  현관문 앞쪽에  창고 같은 공간에 있길래 누구냐고 물었단다. 그런데 그놈은 집을 잘못 들어왔다며 그대로 가버렸다고 했다. 천만다행인    이후로  번도 다시 그놈이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 집은 골목길 아주 끄트머리에 위치한 주택가였다. 밤이 되면 주황 불빛 가로등이 켜지는 어두컴컴한 골목.  밤늦게 학원을 마치고 집을 갈 때면 항상 뛰어서 집에 갔다. 친구들과 전화를 하거나 집에 전화를 하면서 가야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이사를 가자고 말했지만 이사 갈 형편이 안 되어 그 집에서 6년을 더 살았다. 즉 스물한 살에 내가 해외로 떠나기 전까지 그 집에 계속 있었다는 말이다. 그 일이 있고서는 아빠는 내 귀가시간에 항상 전화를 해서 집에 빨리 들어오라고 해주셨다. 사실 그 당시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이사를 가는 일, 상담치료를 받는 일이었을 텐데 어느 곳 하나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더 가족들에게 정을 못 느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 일에 대해 자세히 적어보니 그때 당시 상황이 너무 또렷이 기억난다. 시간이 많이 지나 무뎌지긴 했지만 역시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기억이 되지 않을까. 그때의 나에게 걱정 말라고 말해주면 조금은 나을까 싶어 버터플라이 허그로 내 양 어깨를 두드려봤다.


'얼마나 놀랐을까. 얼마나 불안했을까. 이제 다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이야기를 조금 덜 디테일하게 선생님에게 털어놨고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이어나가기로 했다. 이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담을 하다 보면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잠을 잘 때 무서운 꿈이나 가위에 눌리는 일의 횟수는 줄어 들 거라는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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