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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마음이 조금 허기지면 어때

by 김둥둥

'왜 이렇게 허기가 지지?'


며칠 내내 마음에 허기가 졌다. 오늘은 특히 더 의욕이 사라지는 하루였다. 퇴근 후 계획이 있었지만 바로 집에 돌아왔다. 가장 안전한 곳이자 가장 세상과 단절되는 공간인 내 방. 내 원룸.


오늘은 오전부터 줌 수업을 들었는데 꽤나 애정이 가는 수업이어서 즐겁게 수업을 마쳤다. 그러고 상담이 한 건 있어서 학과 교수님께 찾아가 길지 않은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간 김에 학과 사무실에도 들러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간식거리를 주고 잠시 얘기도 나눴다. 그 후 일을 하고 다시 줌 수업을 듣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분명 오늘은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는 내내 또 생각했다. '왜 이렇게 허기가 지지? 배가 고픈가?' 밥도 먹고 집 청소도 하고 나면 좀 나아지겠지 싶었다. 쌓여있는 플라스틱과 비닐 등을 분리수거하고 아침에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했다. 청소기도 돌렸다.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이었다. 그래 밥을 먹어보자 싶어 밥을 차렸고 '연애의 참견'을 틀어놓고 밥을 맛있게 먹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평소에도 끊임없이 잡생각을 한다. 그때 샤워를 하면서라도 물의 온도, 촉감 등 몸에 느껴지는 것들만 온전히 느껴보라던 곽정은 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 어딘가 어둡고 칙칙한 마음을 자꾸 걷어내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나한테 집중해보자는 마음으로 샤워를 했다. 꽤나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책상 앞에 앉아 '이상하게 마음이 허기가 졌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일기를 썼다. 배가 고팠던 게 아니라 마음에 허기가 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셈이다. 그러고 나니까 문득 명상을 5분만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곽정은 씨의 에세이 <혼자여도 괜찮은 하루>를 읽고 명상에 관심이 생긴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시계를 힐끔 보고 눈을 감았다. 편안한 상태에서 호흡을 하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항상 바싹 긴장해서 뭉치는 내 어깨 근육을 편안하게 이완시켰다. 호흡에 집중하면서 내쉬는 숨에 몸의 긴장을 더 푸는데 동시에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손목이 조금 아픈 게 느껴지네', '반바지를 입었더니 좀 춥네.. 하긴 오늘 날이 좀 추웠어', '이렇게 잡생각이 막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뒀다가 다시 나한테 집중하라던데..' , '내 마음이 허기지는 건 내가 계속 혼자 밥 먹고 혼자 잠을 자고 외로워서일까? 그래도 오늘 사람들을 좀 만났는데 왜 그러지', '슬프지는 않은데 뭘까? 모르겠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흘러 보내고 내 호흡에 집중해보자'...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에도 이렇게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내 뇌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잡스러운 생각들까지 감당하고 있는 걸까. 내 몸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고를 반복했다. 몸의 긴장을 풀었던 게 좀 도움이 되었던 건지 눈을 떴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조금 서글퍼지니까 허기가 졌던 건가 보구나. 괜찮아,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지금의 너는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는 거야.


일상 속에서의 호흡도, 명상에서의 호흡도 어쩌면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자기 수행이 아닐까.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걱정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생각의 끝은 보이지가 않으니 말이다.


이만하길 다행이고 행복하다는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전 같았으면 외로움에 압도되어버렸을 텐데 이만큼이나 내가 성장했나 싶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마음이 기특하다. 이제는 더 이상 불안에 잠 못 이루고 싶지 않다. 악몽도 꾸고 싶지 않고, 매일매일을 무난하게 감정의 큰 동요 없이 평화롭고 싶다. 이 상태를 유지하고 더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할 타이밍인 것 같다. 나에게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나 스스로에게 예쁜 옷이 있으면 하나 선물도 해보고 하면서 나를 더 아껴줘보자. 하루에 5분, 10분씩 명상을 하는 것도 좋을 것도 같고.


마음이 허기져도 괜찮으려면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를 긍정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비어도, 허기져도 썩 슬프거나 두렵지 않게 되겠지.


괜찮아, 마음이 좀 허기지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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