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학교 정문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데려왔다. 잘 키워보겠다며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다. 그 작은 생명체의 이름은 삐약이였다. 삐약이에게 모이도 주고 상자로 집을 만들어서 그곳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었던 기억이 난다. 며칠을 그렇게 키우다가 삐약이를 혼자 두고 집 앞 슈퍼에 가는 게 미안해서 데리고 나갔다. 같이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대략 20년 전 내가 살던 동네에는 편의점 같은 건 없었고 동네 슈퍼가 있었는데 보통 그런 슈퍼 앞에는 보글보글 게임이라던지, 싸우는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기들이 두 대 정도 있었다. 그래서 삐약이를 내 옆에 의자에 올려놓고 나는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게임을 다 하고 옆 자리를 보니 삐약이는 온 데 간데없었다.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며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날부터 병아리를 더 이상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삐약이가 어디선가 큰일을 당했을 거라는 죄책감에 마음이 아파 울었다.
병아리가 내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더더욱 안전하게 끝까지 책임질 수 있었어야 했다. 굳이 내가 삐약이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으면 집에 돌아갔을 때 삐약이를 만났을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잘 키워서 닭이 되었다면 식탁에 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지금에서야 든 생각이지만 어린 시절뿐만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줄곧 나만의 삐약이를 곁에 두려고 했었던 것 같다. '나만의 삐약이'라니 너무 유치한 표현이지만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옆에 본인만의 삐약이를 두려고 한다는 걸 안다. 러브 패러독스(연애 관련된 조언을 주고받는 사이트) 질문이나 연애에 대해 말하는 유튜브 영상 댓글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불안으로 인한 집착 혹은 소유욕, 지나치게 의존하는 이유 등으로 연인을 잃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건이나 작은 생명체에도 이렇게 집착을 하고 소유하려는 마음을 가득 품었던 내가 사람이라고 그렇게 안 했을까? 이십 대 초중반에는 내적 불안감도 높았고 질투도 많은 데다 의존성이 높았다. 그래서 여러 시행착오들을 겪어야만 했다. 데이트를 하면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내 투정을 비난하는 사람과 사귄 적이 있다. 애초에 싹이 노란 사람을 부여잡고 왜 휴대폰만 보느냐, 나는 대화하는 게 좋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성립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내 어떤 모습이 모났는지를 찾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 인생'에 내가 먼저여야 했는데 '상대'가 먼저니까 상대가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고 혹여나 버림받지는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런 연애는 하면 할수록 상처받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인식하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지난한 과거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장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의 파도에 자꾸만 휩쓸려 이리저리 방황한다면 좋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길 겨를이 없다. 불안함, 두려움, 외로움 등 여러 복잡한 감정으로 마음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의 감정을 잘 알고 더 이상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지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감정이 요동칠 때는 가스 라이팅 하는 사람과 사귈 때 '그래도 걔는 나한테 잘해줄 때가 더 많아. 내가 의지도 많이 하고 있잖아. 뭐 어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가스 라이팅 당한다는 인식 자체를 못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감정이 중심을 잘 잡고 건강할 때는 그런 사람을 애초에 만나지 않거나 혹여 만났다고 하더라도 금방 미래가 없음을 깨닫고 헤어짐을 고할 것이다.
연애를 할 때마다 불안한 사람, 본인이 불안정 애착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어떤 매개체라도 좋으니 본인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라.
심리상담, 책, 강연 혹은 인간적으로 성숙해서 본받을 점이 많은 멘토나 지인 등 여러 매개를 활용하라. 본인의 상태를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순식간에 성격이 뒤바뀌지는 않겠지만 서서히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많이 가지게 된다. 나는 심리상담을 받고 스스로를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나와 비슷한 것을 경험한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냥 당연한 사실을 늘어놓은 책이나 이야기 말고, 본인이 겪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를 들려주고 위로해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매개이든 상관없다. 그냥 '너 자신을 사랑해라.'라는 말만 던져주는 책 말고, 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느꼈는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말해주는 것을 듣거나 보는 것은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된다.
2. 마음이 안정적이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라.
안정적인 사람은 불안한 우리에게 큰 자양분을 제공한다. 흔히 안정형 애착인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옆에 있는 사람도 덩달아 안정형 애착을 만들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을 잡았다면 본인이 어떤 성향인지를 밝히면 좋다. 미리 어떤 부분에서 신경을 써주면 내 마음이 편하고 너무 행복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솔직한 것만큼 연애에서 좋은 건 없으니까. 그런 말을 했을 때 “그렇구나 알겠어.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지!"라고 대답하거나 대답은 시원치 않아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면 된다.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라면 내가 불안하지 않게 상당 부분 배려해줄 것이다.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성 문제로 속 썩일 일은 물론이고 사소한 감정 소모를 할 일이 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로 감정을 낭비하지 않으니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의 일을 최대의 능력치로 해낼 수가 있다. 서로의 일, 개인적 시간을 존중하며 데이트하는 시간에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 세상 어디에도 100%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가며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니까 좋은 사람이 보이더라'는 이효리의 말이 떠오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