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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연애를 해야하는 이유

by 김둥둥


일요일 아침 9시 반 눈을 떴다. 눈을 떴는데 애인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드라마에도 종종 나오는 씬이다. 여자가 자고 있을 때 남자가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따뜻한 눈빛으로 한 팔을 괴고 여자를 바라본다. 드라마는 역시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일어나자마자 누군가 나를 보고 있으면 흠칫 놀랄 수 있다. 전혀 예상못한 상황에서 놀래키는 것처럼. 그러나 내심 나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괜히 기분이 좋다.


오후가 되어서 나는 애인에게 ‘치우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집에서 같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비웠다. 그리고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를 가려고 일어났을 때였다. 나도 다 먹은 컵을 치우지 않고 책상에 올려놓았으면서 애인이 놔둔 상 위의 컵이 거슬렸다. 나도 내가 이상한 걸 알아서 말이 목까지 차올랐는데 주저하다 말을 잇지 않았다. 애인은 내가 주저 거리는 말을 항상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나도 내가 이상한 거 아는데.. 나도 컵 안 치웠지만 오빠가 안 치운 컵이 거슬려.”

"아주 내로남불이네!"


애인에게 나 진짜 이상하지 않느냐, 내가 계속 청소하는 걸로 뭐라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고 장난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서로 스타일이 다른 것 아니겠냐고, 본인이 치우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장을 보고 돌아와서 같이 요리를 하는데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나서 내친김에 이야기를 더 이어나갔다.


“나는 어릴 때 아빠가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걸로 많이 뭐라고하셨어. 그런데 내가 어지르지도 않은 우리 (친)오빠가 어지른 것도 내가 치워야 해서 짜증 내면서 치운 적이 많았어.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가 안 한 거를 치우는 게 싫은가 봐. 오빠가 한 거 치우는 게 몇 번 하면 괜찮은데 그게 계속되면 좀 짜증이 날 때가 있어. 하하 (이렇게 말했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생각이 오늘 처음 든 것은 아니었다. 집 데이트를 하면서 집 정리를 할 때 늘 그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100% 말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말을 해야 이 사람도 내가 뭘 해주었으면 하는지 알 텐데 "아니야. 내가 할게!"라고 자주 말하니까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청소나 정리에 대한 작은 서운함들이 쌓였던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설거지를 해 놓은 그에게 리넨으로 물기를 좀 닦아달라고 말을 했다. 안 그러면 내가 뒷정리를 다 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 말도 지금 생각해보면 작고 사소한 서운함들이 쌓여 내뱉은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은 서운함들이 쌓이는 게 무섭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았는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게 되었다.


예전에 상담받을 때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 있다. 아끼는 상대에게 불편한 감정, 부정적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많이 발전했다. 그는 내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게 기다려준다. 머뭇거릴 때도 계속 궁금해해 주고 말할 수 있게 물어봐 준다. 나의 주저하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면 나는 느릿느릿 말을 꺼낸다. 답답한 순간도 있을 텐데 참을성도 좋지! 그에게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많은 경우 속마음을 결국 말해내고 만다.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심장은 두근댈 때가 아니라 편안하게 뛸 때 가장 행복하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사귀기 초반이 아니고서는 싸웠거나 의심할 때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며 뛰는 것 같다. 극도의 긴장상태가 되어야 심장이 빨리 뛰는데 그 상태가 지속되면 어디 사람이 편히 연애하고 살 수 있을까. 그런데 그는 내 심장이 빨리 뛰기 전에 먼저 나를 안심시켜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와 있을 때 가장 편안하게 심장이 뛴다.


편안하다는 것은 결코 서로에게 질릴 껀덕지를 주는 게 아니다. 같이 있을 때 마음이 편해야 즐겁고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다. 내가 청소에 대한 말을 애인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연애가 어렵지 않고 마음이 요동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심장이 편하게 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무쪼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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