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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

나란히 앞을 보는 사랑

by 김둥둥


나는 사랑에는 서로 마주 보는 사랑, 한쪽만 상대를 보는 사랑, 나란히 앞을 보는 사랑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은 일화를 통해 우리가 사랑하는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첫째. 서로 마주 보는 사랑

내가 생각하는 서로 마주 보는 사랑이란 서로를 갉아먹는 관계를 뜻한다. 서로를 갉아먹는 연애를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있다. 내가 그런 연애를 해봤기 때문이다. 이전에 사귀었던 철수(가명)와는 서로를 무척 아꼈다. 너무 아끼니까(?) 서로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게 정말 많았다. 철수는 작은 것을 챙겨주는 섬세함이 있었다. 그런 섬세함을 본인에게도 똑같이 베풀기를 바랐던 것이 내게는 부담이 컸다. 본인이 내게 베푼 만큼 나도 그에 응당한 것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상처받고 짜증을 냈다.


나도 정상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철수가 많은 의지와 힘이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더 많은 의지를 원했다. 혼자 있는 게 너무 싫었고 그가 항상 나와 같이 있어주기를 은근히 바랬다. 학교에서 하는 활동이 있으면 같이 데려가고, 나와 친한 사람들과 함께 잘 지냈으면 싶어 약속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철수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해내는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탈바꿈시킬 수는 없었는데 그를 나에게 맞추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


서로를 갉아먹는다는 것은 이렇게 서로 본인이 원하는 행동을 해주길 원하는 욕심을 끝없이 가지는 관계인 것이다. 애초에 그와 나는 결이 정말 다른 사람이었고, 누구 한 명 마음이 바로 서 있고 단단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니 서로에게 더 잘해주라며 다그치고 싸우고 울고 난리를 피웠지 않았을까. 서로에 대한 욕심이 많으니 자주 싸우고, 헤어짐도 반복했다. 만날 때는 좋다가도 자꾸만 사소한 문제로 부딪히고, 서로의 생각을 납득시키는 데 상당 부분 시간을 할애하며 종종 다투는 연애는 빨리 접어야 한다. 이런 연애는 득 될 것이 별로 없다. 마음에 생채기만 남기기 때문이다.



둘째. 한쪽만 상대를 보는 사랑

한쪽만 상대를 보는 사랑은 말 그대로 한쪽만 더 좋아하는 관계를 뜻한다. 한 번은 내가 남사친과 만나는 걸 극강으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렇다고 내 모든 인간관계를 끊어낼 수는 없어서 최대한 그를 서운해하지 않게 달래고 가끔씩 모임을 나가거나 남사친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대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지역을 이동해야 했다. 그와의 미래를 그렸다면 다른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며 자취하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보다는 내 앞길이 더 중요했다. 그는 해외에 정착하기를 준비하면서 나도 그쪽으로 자리를 잡기를 원했고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앞을 보고 계속 나아갔던 것이다. 결국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우리는 이별했다. 해외로 떠나버린 그와 언제 어디서 만날지 기약이 없는 만남을 굳이 이어나갈 필요는 내게 없었다.


셋째. 나란히 앞을 보는 사랑

사랑이 오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란히 앞을 보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나란히 앞을 보는 사랑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을 열심히 하다가 옆을 봤을 때 늘 곁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각자 '잘'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애인과 나는 평일에는 잘 만나지 않는다. 우리가 평일에 만나는 건 정말 손에 꼽는다. 내가 그와 사귀기로 마음을 먹고 금요일에 일이 끝날 시간에 맞춰 그의 직장 근처로 찾아갔을 때, 금요일 저녁에 만나 벚꽃을 보러 갔을 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역시 그의 직장 근처 맥주집에서 만났을 때 이 정도가 기억이 난다. 평일에 그는 일을 하고 나는 수업 듣고 일하는 시간으로 굳어져있다. 대신 1~2주에 한 번씩 주말에는 꼭 만난다.


우리는 만나는 문제로 한 번도 다툰 적 없고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 관심이 없어서 바라는 게 없는 게 아니라, 뭐랄까 모든 게 자연스럽게 잘 맞는다. 연애 초반에는 '함께 있기 근성 법칙'에 이끌려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며 그에게 심술을 부린 적이 있다. 외로움에 압도되는 날이 종종 있었던 때라 그에게 무척 서운했다. 사실 내가 말도 안 되는 문제로 걸고 넘어졌기 때문에 다툴 법도 했는데, 그는 내게 이성적이되 감정 섞이지 않은 태도로 나와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당연한 말을 하는 그에게 억지 부리거나 외로움을 무기 삼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 나아지고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한 번씩 애인을 향해 고개가 돌아가도 꿋꿋이 앞을 볼 수 있게 된 건 애인의 덕이 크다.



서로 앞을 보는 사랑은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올바로 잡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랑을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서로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가치관이 맞는다는 것이고, 필요 없는 싸움으로 감정을 소진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연애를 하는 이유는 바로 '나란히 앞을 보는 사랑'을 하며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연애를 하는데 우는 날이 많아지고, 부자연스럽고, 마음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꽤 지속된다면 우리는 그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꼭 사랑을 해야 행복한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사랑이 우리에게 충만함과 행복감을 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서로를 보듬는 사랑을 평생 지속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한다.




2021년의 어느 날 일기 내용


내가 잘 못하는 감정 표현도 점점 할 수 있게 되고, 더 신뢰를 쌓아가는 계기도 만들 수 있어 요즘은 꽤 행복하다. 나는 죽 서로 마주 보는 사랑이 온전하며 행복한 연인 관계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상담을 하면서 상당 부분 내 성향을 알게 되었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왜 '남자 친구'라는 존재에 강한 애착을 가졌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그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외로움이 문득 찾아와도 파도에 몸을 맡기듯 외로움을 막아서지 않는다. 내 안에서 흐르다 지나가도록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같이 있어야만 사랑하는 마음이 잘 전달된다거나 무언가 꼭 같이 해야만 한다는 생각도 덜게 된 것 같다. 연인과 마주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서로 성숙하고 성장해 나가는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도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안다. 그렇게 되니까 불안함과 외로움이 덜 하고, 우는 날도 줄었다.


나는 그 무엇도 잘못하지 않았다. 다만, 나 자신을 잘 몰랐던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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