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열 번째 시간
담당 선생님을 직접 만나고 왔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처음부터 비대면 상담으로 진행해왔기 때문에 실제 만나는 일은 처음이었다. 작은 화면 속에서 얼굴만 보다 만나려니 기대가 됐다. 나의 모든 걸 속속들이 알고 있는 선생님의 얼굴을 직접 보다니.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할까.
마음의 구멍이 나기 직전 시작한 상담이었는데, 지금은 그 구멍이 나기 직전의 너덜 해진 마음이 꽤나 아물었다고 느낀다. 내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게 과연 내 생에 가능할지 늘 의문이었는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천천히 아물고 새 살이 돋는 것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차오르고 있다. 그렇게 믿고 있다.
상담 과정의 핵심적인 이야깃거리는 대개 사랑이었다. 어머니와의 애착관계에서도 사랑이 꼭 필요하고, 사춘기 때에도 주변의 관심과 친구들의 우정,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짧게는 한 번, 많게는 수십 번 반복한다. 연인, 친구, 가족 그 어떤 관계든 관계의 한 복판에는 늘 ‘사랑하는 마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것들에 종종 마음이 펄럭였다. 마음이 펄럭였던 이유는 간단하다. 늘 사랑에 목말라하며 십 대와 이십 대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사람에겐 자신 있는 감정과 자신 없는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 없는 감정은 바로 약점 감정인 것인데, 본인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내게도 그런 약점 감정이 있다. 기분이 나쁘거나 서운할 때 말하지 못하고 쌓아두는 버릇이다. 싫은 소리 하는 것이 무섭고 상대가 나를 싫어하거나 떠나려 하진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연인에게 그랬다. 그런 감정들이 차오르면 도대체 어쩔 줄을 몰라 그냥 꾹꾹 눌러 담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팡하고 터져버렸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 시절의 나와 비교해봤을 때 지금은 훨씬 안정적이다.
윌스너(윌슨이라는 상담 어플의 답변가)가 되어 활동하다 보니 그렇게 쩔쩔맸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감정에 조금씩 유능해지고 있는 내가 감정에 아직 서툰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는 없을까 싶어 주제를 정하게 됐다. 상담에서 내가 털어놓은 이야기와 선생님에게 들은 조언을 조합해보면 결국 사랑에 앞서 '나 자신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나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을 안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너무나 상투적인 표현임에 틀림없다. 자존감이나 연애에 관련된 에세이를 보면 늘 등장하는 단골 멘트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이 표현이 단골 멘트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모든 걸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있고,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아주 깊이 고민해본 사람은 다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강점과 약점까지 모두 아우르며 이해하고 사랑하는 재능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몰라 서툰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도 서툴 수밖에.
한 달 전쯤 상담시간에 빙고게임을 했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 혹은 나라고 밝히고 싶은 것'을 키워드를 적어 내면 되는 것이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게 대체 뭐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웃음, 해맑음, 눈물, 티를 안 냄, 글쓰기, 사진, 요리, 여행 등을 적었다. 그리고 왜 그 키워드를 적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언제부터 잘 웃고, 잘 울고, 글을 쓰고, 티를 안내는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키워드를 뜯어서 파헤쳐 보니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지닌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한다거나,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 일이 전혀 없었다. 상대(구남친)가 말하는 나의 모습과 단점을 그저 나의 부족한 점이라 치부해버렸다. 태어나서 들어본 말 중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을 들어도 참았다. '내가 정말 부족해서 그런 말을 들은 거야. 내 배려심이 부족해서 갈등이 생기는 거야. 더 잘해야지.'하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받아들이게 되어 그런지 애인(현남친)에게 서운함을 일부러 숨기지 않는다. 상담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상담 과정에서 선생님은 솔직한 게 가장 좋다고 항상 강조하셨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잘못된 감정이 아니며, 그것을 이해해줄 상대를 만났다면 언제든 표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점점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옹졸한 인간이 되는 것 같아 말하지 않으려 해도 얼굴에 다 티가 난다. 질투가 날 때는 은근슬쩍 마음을 전한다. 열등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다며 편지에 적어 주기도 했다. 서운한 게 있어 말을 꺼내려다 말면 애인은 계속해서 말하라고 물어온다. 그럼 나는 마지못한 척 이야기를 토도독 토도독 꺼내놓는다. 서운함을 말하는 건 여전히 부끄럽지만 여러 번 하다 보니 이젠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스물여덟 내 평생 가장 솔직한 사람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렇게 편하고 설레는 마음이 그득하다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없이 솔직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나 자신을 잘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나를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애에 충만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현재의 나는 한계와 약점을 받아들여 보완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 이상 내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그 효과는 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가꾸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즉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문득 찾아온 사랑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게 되면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이 많이 불안하지 않으니 사랑에 솔직할 수 있고 믿음이 세차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사랑에 진심으로 솔직해졌다.
삶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사랑’은 늘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사랑에 앞서, 자신에 대한 이해와 받아들임이 먼저 충족된다면 사랑이 수수께끼이든 뭐든 아무래도 상관없어지지 않을까요. 그가 좋은 것만 좋은 거 말고요. 내가 좋은 것도 좋고, 그가 좋은 것도 좋은 게 되면 사랑이 더 즐겁고 행복해질지 몰라요.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때 관계가 더 건강해집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에게 행복이 더 가까이 닿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