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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Jan 12. 2022

엄마, 엄마도 이제 독립해

부모로부터의 독립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부모님 역시 나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빠는 원래부터 독립해서 살고 있었고, 엄마는 여전히 나와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다. 내가 엄마로부터 독립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엄마도 나로부터 독립하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 머릿속에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200%의 확률로 내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엄마는 이따금씩 말했다.

 "오늘 OO이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왔는데, OO이는 자기 엄마 말을 정말 지지리도 안 듣더라. 그런 거 보면 엄마는 딸을 참 잘 만났어."

 엄마가 딸을 잘 만났다고 하는 게 나쁠 일은 아니지만서도, 나는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이제라도 말을 안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 말을 잘 들었다. 엄마가 나 때문에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말뿐만 아니라 그냥 모든 어른의 말을 잘 들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랬다. 당연히 어른의 말이 옳겠지 생각했다. 그게 또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대학교도 졸업한 이후였다. 나는 이제 와서야 말을 잘 들었던 게 후회가 되었다. 늘 말 잘 듣던 애가 갑자기 말을 안 들으면 말을 안 듣던 애가 말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문제로 여겨질 테니까 더 후회가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성인이 된 후로 나로 인해 엄마의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게 싫었다. 물론 부모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겠다. 마음으로는 절대 그 마음을 쫓을 수는 없겠지만 개념적으로는 안다. 근데 자식들 입장도 좀 들어봐야지.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이 더 많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니까. 조금 있으면 걸음을 걷고, 조금 있으면 뛰고, 조금 있으면 말을 하고, 유치원을 가는 것도 대견한 일이고, 혼자 양치를 하는 것도 뿌듯한 일이고, 시금치나 당근을 꾹 참고 잘 먹는 것도 기특한 일이다. 그런데 성인이 될수록,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런 일이 발생하는 주기가 길어진다. 힘든 일이 더 많다. 어릴 때 대통령이라도 되겠다는 포부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마냥 사라지고, 취업도 잘 안 되고, 열심히 준비해서 들어간 회사는 마음 같지가 않다. 그렇게 자식은 늘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삶이라는,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것이 때로는 자식을 울게 하고, 때로는 화나게 한다. 나도 안다. 엄마는 내가 뭐 대단한 일을 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좋은 일을 함께 기뻐하는 것도 부모의 기쁨이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 기댈 구석이 되는 것도 부모로서의 기쁨이라는 것을.

 그런데 그냥 좀 부담스럽다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신경을 아예 쓰지 말라는 건 아닌데,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거다. 가끔은 홱 말을 안 들어볼까 싶다. 엄마에게 말괄량이 딸 백신을 놔주고 싶은 마음이다. 저기 옆 집 OO이를 데리고 와서 엄마 딸 잠깐 시키고 싶다. 그러면 좀 낫지 않을까? 딱히 엇나갈 만한 행동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기왕 마음을 그렇게 먹은 거, 어디 한 번 엇나가 보자고 생각했는데, 또 딱히 그러고 싶은 게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엄마에게 엄포를 놓았다.


 "나 독립할 거야!"

 "... 그러든가? 엄마가 언제 뭐라 했냐?"


내가 딱히 한 게 없으니까 엄마가 뭐라 한 게 없었겠지.


"엄마도 내 생각 그만하고 엄마 생각해. 엄마도 독립해."

"그래, 우리 각자 알아서 잘 살아보자 그럼."


 그러다가 엄마랑 피 터지 게 싸운 투쟁의 영역이 있었는데, 바로 자취와 주식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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