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인 것 같다
구태의연하게 들어왔던 말들이 갑자기 뇌리에 꽂힐 때가 있다. 뭐랄까, 아무 생각 없이 써오던 말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진리 같은 느낌이랄까.
다니던 회사를 관둔 친한 언니와 저녁을 먹고 조금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 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언니의 말을 들으면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라는 상투적인 말이 떠올랐다. 누구보다도 회사 일에 열을 올리던 언니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의외였다. 어쩌면 언니의 시간을 아깝지 않게 만들려고 그렇게 애를 썼을지도.
세상에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회사에서 만나는 100명의 사람들 중 70명은 회사를 다니기 싫지만 별다른 길이 없어 회사를 계속 다닌다. 불안감과 책임감, 기대와 절망 사이 그 어디쯤에서 헤맨다. 28명은 회사를 나가면 개고생이라서 회사에 다니는 걸 감사한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마치 회사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 마냥 안식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게 퇴사든 취미생활이든 회사에 내 시간과 감정이 이대로 종속되어 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움직인다. 그 한 명인 언니가 그렇게 말했다. 시간이 아까웠다고. 그리고 나는 이파리가 100만 개쯤 달린 풀잎 가지를 쥐고 아깝다, 아깝지 않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점을 친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이 시간이 아까운지 아깝지 않은지를 고민하느라 또 아까운 시간을 보낸다.
어른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아이인 고등학생 때는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말하기가 참 어려웠다. 유치원생 때, 초등학생 때는 장래희망을 기입하는 곳에 회사원이나 공무원을 쓰는 친구들이 없었다. 고등학교로 가면서 반에 두어 명씩 그런 애들이 생겼고, 선생님들은 안타까워했다. 선생님도 대안을 제시해줄 수는 없었겠지만. 예체능 계열에 있는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선생님, 외교관, 의사, 교수가 다였다.
나는 세상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알면서도 몰랐다. 그 많은 적성검사와 흥미검사 결과를 받고도 답을 낼 수는 없었다. 적성검사를 하면 나에게 잘 맞을 직업으로 나오는 것들을 보면서 '외환딜러? 네이미스트? 이게 뭔데? 이렇게 쭉 나열해주면 끝나는 거야?' 하고 고이 접어 책장에 밀어두는 게 다였다. 그렇다고 장래희망란에 회사원이나 공무원을 쓰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회사원은 꿈을 꾸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거니까, 꿈 없이 생각 없이 사는 게 들통날 것 같아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꽤 많은 사람들이 다른 것들은 꿈도 꾼 적 없는 것처럼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는 회사원이 아닌 다른 걸 꿈꾼다고 하는 쪽이 소수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회사는 '현실', '안주', '하고 싶지 않지만 하고 있는 것', '어쩌다 보니 되어 있는 것'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회사를 '다닌다'는 표현을 쓰는 거다. '써요, 그려요, 만들어요, 지어요, 가르쳐요'가 아니라 '다닌다'. 회사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은 어디에 있든 저마다의 역할을 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무수히 다양한 종류의 '지금 내가 던져진 곳'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내가 변주를 주지 않으면 그저 그렇게 비슷하게 흘러갈 시간의 대표적인 사례 같은 것이다.
이대로 회사에 쭉 다녀도 나쁠 거 없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회사에는 내가 좋아하는 선배들이 아주 많고, 심지어는 '저런 마음과 태도로 살면 어디에 있든 주인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존경하는 선배도 있다. 앞선 100명 중 미처 설명하지 못한 나머지 한 명이 그런 사람이다. 100명 중에 두 명 있는 사례를 두고 나는 고민을 하고 있는 참이다. 고민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둘 다 되고 싶어서 애쓰다가 이도 저도 안 될까 봐 걱정하는 중이라고 설명하는 게 맞는 것 같긴 하지만.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은 불안하면서도 희망적이고, 아득하면서도 짜릿해 보인다. 지금 있는 곳과 가보지 않은 곳 사이의 간극이 너무 넓어서 어떤 사람은 불안에, 어떤 사람은 희망에 저마다의 추를 맞춘다. 이렇게 살다가 현실에 안주할지도 모르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대뜸 우물 밖으로 몸을 던져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직은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분명 있을 거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건 내가 젊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전까지는 계속 유효해야 할 생각이라는 것을. 아직 당연히 의식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의지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