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는 것에 스트레스받지 마라
돈이란 딱 잘라 이야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좋게 쓰이면서도 터부시 되고, 원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배신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행복과 불행에 힘을 과시하면서도, 막상 들여다보면 잘못도 없고 감정은 더더욱 없는, 이상한 것이다.
돈에 대한 가치관은 어릴 적 부모의 태도에 의해 형성되곤 한다. 최근에 엄마의 경제 교육에 대한 글을 쓰면서 찾아보게 된 논문에서는 부모의 돈에 대한 교육이 자녀의 돈 경험에 대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인 영향을 발휘한다는 연구결과가 다시금 확인되었다. 예전에 SNS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보게 된 게시글에서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하도 돈, 돈, 해서 싫었는데, 커서 돈을 쓰려고 하니 어떻게 쓸지도 모르겠고, 돈을 쓰는 게 너무 죄스럽더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꽤나 많은 공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스스로 제어를 하는 타입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다. 엄마는 내가 갖고 싶다고 하는 건 다 사줬다. 우리 집에는 값이 나가는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엄마는 집에 들어오는 돈이 많지 않을 때에도 나의 교육에 도움이 된다거나, 추억을 남기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다 사줬다. 컴퓨터도 있고, 피아노도 있고, 디지털카메라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스스로 제어를 했다고 생각했을까?
이제야 추정컨대, 내가 엄마를 너무 잘 알아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건 다 사줬지만, 쓸데없는 것, 잡다한 것을 사는 것은 싫어했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불어펜도 갖고 싶었고, 스테인드 글라스도 갖고 싶었고, 레인보우 브러시도 갖고 싶었는데 엄마가 딱 싫어할 것들이었다. 투니버스나 재능교육 채널에서 광고를 넋을 놓고 보다가, '엄마한테 말하면 싫어하겠지?'라며 내가 그런 것들을 갖고 싶어 해도 되는가 하는 당위성에 대해 생각하다가, 끝내는 갖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다. 아마 말했으면 사줬을 테지만, 내가 나름대로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다는 자존심을 세운 것이었다. 어느새 그 물건에 대한 쓸모를 고민하고 있었고, 당연히 계속 고민하고 고민하다 보면 굳이 살 필요는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48색 크레파스도 있고, 50색 색연필도 있고, 물감도 종류별로 다 있는데, 왜 또 저걸 사고 싶어 해?' 그게 오도되어 돈을 쓰는 것, 무언가를 갖고 싶고 사고 싶다는 생각을 억압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엄마는 아마 생각도 못했을 텐데 자식 키우는 거 너무 힘들다).
이유야 어찌 됐든,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지출에 대한 결정권을 엄마가 아닌 내가 갖게 되었을 때, 나는 돈을 쓸 줄 몰랐다. 옷은 지하상가에 가서 싸구려를 사 입어서 고향에 갈 때마다 엄마가 깜짝깜짝 놀라서 옷 가게에 데리고 가기도 했고, 친구들과의 약속은 있는 대로 잡아서 하루에 약속을 네 번이나 잡고선 먹는 것에는 돈을 펑펑 쓸 때도 있었다. 못 쓰는 게 당연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엄마 허락 없이 용돈을 갖고 직접 사본 것은 떡볶이, 치킨, 과자 같은 게 다였으니까. 그래도 먹는 거에 돈을 쓰는 건 쉬웠다. 그냥 먹고 싶은 것에 돈을 쓰면 되니까. 그래서 차라리 먹는 것에 돈을 쓰기로 했다(엥?). 나의 엥겔지수는 항상 높았다. 다른 것에 돈을 쓰는 건 미뤄두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돈을 제대로 벌기 시작했다. 여전히 돈을 쓸 줄 모르는데, 길고 길었던 학교 생활 끝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생긴 허무한 마음을 소비로 해결하니 누수가 생겼다. 여전히 나는 먹는 것에 말고는 돈을 쓸 줄 몰랐다. 옷장에는 엄마가 사준 옷밖에 없었고, 나는 꾸밀 줄도 몰랐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자고 생각하고선 한동안 저축도 하지 않고 쇼핑에 몰두했다.
그런데 기왕 쓰기로 한 것 당당하게 쓰면 되는데, 어쩐지 나는 당당하질 못했다. 여전히 '필요한 지출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옷을 잘 입는 법을 공부해보고 옷을 이리저리 사 입는 게 재미는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번 돈으로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선언해놓고, 돈을 이미 펑펑 써놓고도 무거운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나에게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예쁜 옷도 사 입으라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졸라맬 때도 있어야 하지만 쓸 때도 있어야 한다. 돈은 목적이 있어서 모으는 것이고, 써본 사람이 잘 쓰는 것이다. 필요할 때는(이를 테면, 집을 산다든가) 네가 알아서 절약할 테니, 돈을 쓰고자 할 때는 잘 써라.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말을 듣고도 마음이 마냥 편해지진 않아서 다시 고삐를 당기곤 했지만, 마음의 여유 공간이 생겼다. 나를 단속하는 것은 나 하나인 것만 해도 충분해서 엄마가 그렇게 말해준 게 도움이 되었다.
돈을 한 번 왁(?) 쓰고 나니 물욕이 해소되어서 이제는 필요한 것도 별로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다. 언젠가 또 소비에 대한 욕구가 도지면 그때는 좀 더 만족스럽게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말대로 돈도 써본 사람이 잘 쓰는 거고, 나는 좋은 것을 누리고 싶은 만큼 절약 모드로 잘 돌아갈 사람이니까.
돈을 아끼되, 쓸 때는 정당한 해방감을 느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