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 열정적인 나에게 취한다~
"예전처럼 열정이 안 생겨."
"뭔가에 열정을 쏟아본 게 언제 적 일인지 모르겠어. 어릴 때는 무슨 힘이 있었던 거지?"
어른이 되고서, 하나의 정해진 일을 하고서 흔히 나눌 수 있는 대화다.
열정이 있다는 건 어떤 뜻일까? 국어사전에서는 열정을 '어떠한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열렬한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그 말이 뭔가 거창해 보이긴 하는데, 감이 잘 안 잡힌다.
내가 경험해본 결과 열정이 있다는 건 쉽게 말하면 무언가를 하는 게 좋아서 피곤을 잊거나 감수하는 상태다. 가장 간단한 예가 밤을 새우는 것이다. 밤새 놀았다? 노는 데에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밤새 공부했다? 공부하는 데에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밤새 일했다? 일하는 데에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피곤해지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심지어는 다음날이 되어도, 그 다음 날이 되어도 다시금 피곤을 감수하고 있다면 그게 열정을 발휘하는 것이다. 나는 한때 밤을 새우더라도 무언가를 할 만큼 열정을 발휘해본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아쉬웠다.
열정에 대해 운명처럼 만난 상대와 첫눈에 반해 불타는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곤 했다. 나는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가만히 있는 와중에도 무언가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게 있어서 홀릭이 되어버리는 상태를 바랐다. 그런데 '운명'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쉽게 열정을 가진다. 왜 그랬을까. 심지어 유아 때는 걷는 것에도 열정을 가진다. 세상만사가 재밌다. 맨날 걷고 싶어 하고 맨날 뛰고 싶어 한다. 햇볕에 드러난 얼굴과 팔다리가 시커메져도, 눈동자만큼은 반질반질 빛난다. 세상을 덜 산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만나는 것들은 다 새롭고 재밌다. 학교에 다니는 것, 학원에 다니는 것, 소풍을 가는 것,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하는 것, 모든 것들이 열정의 대상이 된다. 그 과정을 굳이 만들어주지 않아도, 의무 교육이라는 시스템 안에서도 새로운 경험이 생기곤 한다. 그리고 나의 경우 새로운 경험이 폭발하는 때가 대학생 때였다. 의무가 사라지고 자유가 가장 큰 가치일 때, 기다리고 기다렸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흥분으로 가득 찼던 때, 뭐가 됐든 일단은 달려들고 보는 때였다. 모두가 대학생 때를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때가 자유로웠고, 마지막으로 열정을 불태웠던 때이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자발적으로, 또는 반강제적으로 또다시 의무에 내 몸을 맡기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그렇게 '되어버린' 우리는 왜 열정을 잊고 살아가고 있을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는 너무 많은 것, 너무 큰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무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할 기회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또는 원하는 결과가 있어도 그 과정을 따르는 것을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나를 자극한다. 이 모습은 어때, 저 모습은 또 어때? 그중에 단박에 눈이 반짝일 만한 것은 찾기 힘들다. 여러 자극이 덩어리째 쏟아지지만, 창의적인 무언가를, 나에게 딱 맞춤인 것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실제로 내가 할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에이, 시시하네. 별거 없네. 노력해서 얻으라고 하면 누가 그 말을 못 해. 노력 안 하고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런 게 딱 나에게 맞을 거 같은데. 또다시 눈을 돌린다. 다른 것을 찾는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나는 5년 뒤에도 지금 모습으로 살고 있을 거고, 10년 뒤에도 지금 모습으로 살고 있게 된다. 믿기 어렵겠지만 열정의 대상을 열렬히 강구하지 않으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이, 일단 다시 돌아와 보는 그 일이 가장 열정을 들이고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열정은 드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필연에 가깝다. 노력해야 만날 수 있다. 정말 열정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는 관성, 드러눕고 싶은 중력, 그런 것들을 거스르지 않으면 열정은 생기지 않는다.
열정을 되찾고 싶다면 새로운 자극을 많이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오는 자극 중에 결과가 설득이 되는 게 있다면 과정이 무엇이든 따라야 한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면 글을 써야 한다. 공장을 돌아다니고 영업을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돈을 써야 한다면 돈을 써야 한다. 책을 1000권 읽어야 한다면 미련해 보여도 그렇게 하면 된다.
귀찮음을 거슬러야 한다. 운명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연애로 따진다면 일단 소개팅을 하고 보는 것이다. 소모임에라도 나가보는 것이다. 사람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일도 마찬가지이다.
간절히 원하는 감정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그 감정을 다시 만나는 시점은 일단 미뤄두는 게 좋다. 간절히 원하는 건 기회를 얻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하나씩 만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생겨있는 게 간절함이다. 내가 아무것도 되고 있지 않은데 간절함이 생길 수는 없다. 가능성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절절히 원하게 된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찾아 나서야 한다. 귀찮아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든 글을 쓰든 영상을 만들든 배우고 실천하든 아마도 2-3년 정도는 감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열정적으로, 저마다의 스트레스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일에 애착을 갖고 재밌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2-3년이라는 시간은 희망이 생기는 시점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미 어느 정도 기회와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는 시기, 그 기회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 같은 것이다.
피곤 따위는 잊고 몰입하는 멋진 나에 취하는 그날까지 귀찮음을 거슬러 부지런히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