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나에게 잘 보여야 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각자의 시선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주인공은 틀림없이 나다. 그렇다면 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의 관객은 누구일까? 그것 역시 나다. 이게 좋다, 이건 별로다, 고나리나 하던 관객들이 하나둘씩 극장을 떠나고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남아 웃고 울어줄 단 한 명의 관객은 부모님도, 연인도, 친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인생의 관객이 나라는 사실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인 것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를 살아가기에도 바쁘지만, 그런 와중에도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미래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 그러니까, 지금의 나에게 고마워할까?'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살았던 것처럼 게으르게 살면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원망할 것 같단 생각이 들면 슬펐다. 그래서 때로는 결심을 하고 때로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언젠가 들었던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의 말이 인상 깊었다. '이 일(아마존을 만든 것)을 하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았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은 일'이 있다는 게 참 부러웠는데, 그 후회할 것 같은 일을 만들려면 결국 오늘의 나도 다른 경험을 해나가야 했다. 미래의 나를 위해서, 심지어는 오늘 행복하지 않은, 그러나 행복할 수 있는 나를 위해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인생의 관객인 나를 위해서.
내가 주연인 영화의 관객석에 타인을 아예 들이지 않을 수는 없다. 세상에는 나를 사랑하는 타인도 분명히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온전히 집중해야 할 그들만의 영화가 있다. 또한 모든 관객의 취향에 맞게 살아갈 수는 없다.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들 관객 중에는 본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따분해서 다른 이의 인생을 깎아내리러 온 사람도 있고, 본인은 주인공이 되길 포기한 채 다른 이의 인생에 엑스트라로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다. 이 영화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는 없다. 딱 한 명의 관객의 취향에만 최대한 잘 맞으면 된다. 그 한 명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영화의 순간들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영화는 완벽할 순 없어도 완전할 수는 있다. 정답은 없어도 해답은 있다.
그러니 나에게 잘 보여야 한다. 나를 빛내고 웃게 해야 한다. 그 영화를 보는 내가 빛나는 미소와 글썽이는 눈물을 지으며, 부디 행복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