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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Feb 19. 2021

유쾌한 월세입자와 월세를 받는 재미

만 25세, 집을 사기로 결심하다


 첫 월세입자



 월세는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35만 원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생전 본 적 없는 남에게 월세를 주리라고 생각했지만, 저의 첫 월세입자는 사촌오빠였습니다. 연고가 전혀 없는 곳에 일을 하러 와있었거든요. 보증금을 높게 받고 2년 치 월세 240만 원을 일시에 받았습니다. 받은 보증금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일부 상환했습니다. 중도상환 수수료가 들긴 했지만, 월 납입금을 줄이고, 부채의 규모를 줄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촌오빠는 이직을 하게 되면서 1년을 채우지 못한 시점에 집을 비웠습니다. 저는 그간 모은 돈으로 보증금을 돌려주고, 다음 월세입자를 구할 때까지의 월세를 제외한 월세를 반환했습니다. 이것도 괜찮은 경험이었습니다.



 찐 첫 월세입자와의 유쾌한 이야기




 다음 월세입자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구해졌습니다. 지역 신문에 광고도 내고, 부동산 광고도 게재했는데, 당근마켓을 통해서 월세입자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멘트를 작성, 수정하고 잘 나온 사진을 골라서 업로드했지요. 옵션을 선택해서 광고도 집행했습니다. 집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동네의 동일 평수, 동일 방향에서는 최선의 집 중 하나일 거라는 자부심이 있었지요. 그래서 오히려 광고 방식과 노출 빈도 등이 관건이었는데, 당근마켓이 꽤 괜찮은 수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근마켓으로 거래를 하게 되면 광고 비용이 들긴 하지만 직거래를 하게 되는 것이니 부동산 중개수수료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빠르게 세 사람 정도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중 가장 먼저 계약을 하자고 하는 분과 계약을 진행하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갔습니다.

 

노안

 새로 들어오시는 분은 80대 여성 강어른님(가명)이셨고, 그분의 아들인 김아들님(가명)이 계약을 진행하고 월세를 납입한다 하셨습니다. 카페에서 만나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김아들님은 인상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표준계약서 양식 여분을 4부나 출력해갔는데, 김아들님이 계속 임대인 정보에 본인의 신상을 적는다거나, 날짜를 잘못 적는 등 오탈자를 냈습니다. 눈을 찡그리거나 서류와 눈의 거리를 조절하시는 걸 보아 노안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표준 양식인데 글자가 너무 작지요? 저도 나이 드니까 잘 안 보이더라고요."

 어머니께서 살포시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유, 노안 아닙니다. 아직 그 정도 아닙니다."

 김아들님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눈탱이

 어째저째 서로 신분증을 확인하고 계약을 잘 진행했습니다. 계약서를 쓰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어른님이 신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점도 알 수 있었고, 원래는 김아들님의 자녀까지 3대가 같이 살았는데,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갈등이 생겨 어머니를 따로 편하게 모시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신기하고 재밌었습니다. 집을 사고 월세를 주면서 다른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게요. 다행히 네 번째 서류는 무사히 잘 작성했습니다. 서류를 작성하면서 김아들님이 말하셨습니다.

 "집이 깔끔하고 좋아 보입니다. 인테리어는 얼마 정도에 하셨습니까?"

 "다 해서 천만 원 정도 들었어요."

 "아... 좀 눈탱이 맞으셨네요. 제가 이쪽 일을 해서 압니다."

 "... 하하 그런가요?"

 딱히 나쁘진 않지만, 좋은 건 확실히 아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끝인 줄 알았겠지만 (1)

 "제발 오래 살게 해 주십시오."

 김아들님이 마지막으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래 살아주시면 저희야 좋죠."

 그렇게 계약서 내용을 다 확인하고, 교부하고, 인사까지 잘하고 마무리해서 집으로 갔는데, 20분 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죄송한데, 제가 아까 안경이 없어가지고 눈이 안 보여서 주민등록번호를 똑바로 확인을 못했습니다. 다시 만나서 확인 좀 해도 되겠습니까?"

 

 인상적인 장면은 그림처럼

 그래서 뜬금없이 김아들님이 사시는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이구, 번거롭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들어오시죠."

 "아닙니다, 맘 편하게 확인하셔야죠."

 김아들님의 아내분께서도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어머니와 저에게 감즙도 주셨습니다. 그동안 김아들님이 안경을 착용하시고 계약서의 제 신상정보와 신분증 상의 신상정보가 일치하는지 확인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보증금도 받았습니다. 확실히 확인하고 넘어가게 되어 저도 마음이 한결 편했습니다. 살짝 추운 듯한 10월 말에 어머니와 같이 김아들님의 집을 나오면서 본 가로등을 비롯한 저녁의 장면이 그림처럼 머릿속을 떠도는 걸 보니 인상적인 경험이긴 했나 봅니다. 저는 김아들님의 집에 다시 간 것조차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집을 사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소소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게 좋았거든요.


 끝인 줄 알았겠지만 (2)

 이제 당분간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도 되는 줄 알았는데, 11월에 김아들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다행히 못 살겠어서 나가겠다는 것은 아니었고요. 김아들님의 이름으로 보내줬던 보증금을 다시 돌려주고 강어른님의 이름으로 1000만 원을 다시 보내주면 안 되겠냐는 요청을 하더라고요. 80세이신 강어른님은 공공기관에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도시가스비 할인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나 보더라고요. 그런데 보증금 반환과 재이체의 순서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쪽에서는 제가 먼저 1000만 원을 부쳐주면 그걸 다시 강어른님의 이름으로 보내주는 식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혜택을 위해 요청을 하는 쪽에서 잠깐의 리스크를 감당해야지, 제가 먼저 돈을 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먼저 강어른님의 이름으로 1000만 원을 보내주면, 확인하고 있다가 바로 1000만 원을 김아들님의 계좌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이야기가 잘 되어 해당 순서로 진행했고요. 물론, 언제나 그렇듯 이체 내역에 '계약자변경보증금반환'이라고 기록도 잘해두었고요. 이렇게 생각지 못하게 일어나는 일들도 원칙에 따라 진행하면 어려울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월세를 받았을 때의 기분은

  10월, 첫 월세를 받는 날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오늘 첫 월세를 받는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게 떠올라서 언제 들어오려나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첫 월세가 들어왔을 때의 기분은 뭐랄까, 막 신나지는 않고, 신기하긴 했고,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결연한 의지가 생기는 것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 월세 받아 월세를 내는 저자의 더 깊은 응원이 필요하다면, 동일한 이름으로 출간된 아래의 책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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