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은 짧은 장마에 이상 고온까지 겹쳐 긴 여름 가뭄이 전국을 덮쳤다. 모름지기 자연재해가 닥치면 자연의 생리를 거스르고 사는 자들보다 자연 가까이에서 순리에 따라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피해가 더욱 큰 인과'불'응보의 역설이 발생한다. 바다는 붉은 빛으로 덮였고, 그 끝이 바다와 맞닿은 강은 푸른 빛으로 덮였으며, 그 붉거나 푸른 빛은 바다와 강에서 밥을 버는 자들의 숨통을 죄어왔다. 심각한 적조와 녹조 현상이 발생한 과정을 두고 온갖 분석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끄덕인 건 '정부의 대규모 토목 공사’였다. 토목 공사 독박설은 군중의 감정몰이로 덮인 과학적 사실 위에 실체 없는 믿음이 또 한 번 엉겨 진실로 굳었다. 사람들에게는 무릇 모든 탓을 돌릴 단 하나의 대상이 필요한 법이다. 정부가 지난 수년 간 벌인 하천 토목 공사는 군중의 공적(共敵)을 만들어내기 위한 최적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었다. 공사로 막힌 물길이 유속을 늦춰 녹조류 번식이 용이했다는...... 강에 퍼진 녹조류는 그렇다치고 남해 연안을 덮은 적조는? 모든 강은 바다로 흘러간다 한들 어찌 강의 흐름이 조수를 좌지우지 하겠는가? 어쨌든 사람들이 믿는 진실에 의하면 정부는 인과'불'응보의 원흉이었다.
"저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철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주남저수지의 서녘하늘을 보러 가곤 했었지요.
그 하늘을 수놓던 철새들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제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을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 또한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우리 어른들의 성급함과 편협함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교수님은 적녹조 현상의 원인 논란이 극에 달하던 그 여름의 어느 날, SNS에 짧은 멘션을 썼다. 주로 20~30대의 젊은 층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 무렵 교수님에 대한 지지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정치와 정치인이라는 단어들이 뿜어내는 혐오감에 대한 반동 치고는 너무 세게 튀어올랐다. 사람들은 선거 바람이 불 때면 으레 그 바람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싣고 오기를 원했고, 이번에는 교수님 스스로 바람이 되어 신세계를 싣고 오리라 믿었다. 오천만 삶 가운데 숨은 수백만 가지 고단함을 어루만져 줄 자는 교수님이라 확신했다. 몇 번의 TV토론회에서 경선 후보의 후보, 경선 후보를 거쳐 대통령 후보가 된 자들이 퍼부은 교수님을 향한 공세는 오히려 역풍을 일으켜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교수님은 SNS나 블로그를 통해 능수능란하게 언제 사그라들지 모르는 사람들의 동정심을 지지로 바꾸었다. 교수님은 오직 정치적 기득권자의 무자비한 공격에 맞서 신념을 지키는 조용한 혁명가의 모습만 보이면 될 터였다. 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그의 믿음이 무엇인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요상한 자본 흐름의 구조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떠한지, 내일보다 당장 오늘 저녁 먹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이 나라 청년들은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교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윤리 교과서를 읽으며 짓는 온화한 미소만으로도 교수님은 이 시대의 바람이 되었다. 참으로 쉬웠다.
바람은 지나간다. 온화한 봄바람은 꽃이라도 피우건만 교수님의 바람은 봉오리조차 틔우지 못했다. 대통령 후보라면 응당 내놓아야 할 정책도 없이 여전히 윤리 교과서만 읽고 다니는 교수님에게 의혹의 눈초리가 꽂히기 시작했다. 모래 위에 쌓은 탑이 얕은 물결에 흐르듯 사라지는 것과 같이, 우리 모두를 구원할 것 같았던 조용한 혁명가가 스러지는 모습은 참으로 허무했다. 사람들은 교수님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스스로 답함으로써 교수님을 그들이 받들던 메시아의 지위에서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사람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이 모인 군중이라면 한계는 더욱 낮아지기 마련이다. 교수님이 구원자로 올라섰다가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것은 교수님의 '교수다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집단 인내심의 속성이 더욱 근본적인 이유였다. 이 또한 참으로 쉬웠다.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다. 누가 보아도 유치한 억측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끔 꽤 신빙성 높은 주장도 제기되었다. 형형색색 화려한 색깔을 지닌 옥석들 가운데 숨은 다이아몬드보다 어두운 광산 깊숙이 홀로 빛나는 원석이 더욱 도드라지듯, 그럴듯 한 증거로 뒷받침된 주장들은 실제 그것들이 일으킬만 한 파장보다 훨씬 크게 주목받았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의 왈가왈부를 이끌어낸 주장은 현 정부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전국 단위의 대규모 토목 공사 추진에 교수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국민이 반대했던 사업이었던 데다가 교수님 스스로 그 사업이 잘못되었음을 SNS에 피력한 것이 더해져 그는 겉과 속이 다른 자가 되었다.
논란의 시발점이자 강력한 근거는 달봉선생이 지하 도서관에서 갈겨 쓴 '교수님, 대통령 공부하시게요? - 20120720', 그 한 페이지도 되지 않는 글이었다. 사람들은 교수님의 SNS 화면과 달봉선생의 블로그 화면을 나란히 놓고 달봉선생의 선견지명을 찬양함과 동시에 교수님의 표리부동을 비난했다. 문제의 본질은 교수님이 과연 이 나라의 강과 바다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원인이라 '지목된' 정부 토목 공사의 추진에 역할을 했는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교수님의 또다른 거짓말은 무엇인가 하는 점에 모였다. 달봉선생은 연일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를 차지했다. 출처가 확실치 않은 글들이 달봉선생의 필명을 달고 이곳저곳에 난무했다. 게다가 교수님을 지칭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늘 두루뭉술하여 내게 꼭 들어맞는 것 같은 인터넷 사주풀이와 같이, 교수님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어 달봉선생을 선지자로, 교수님을 위선자로 만들었다. 결국 교수님 또한 경선 후보의 후보, 경선 후보를 거쳐 대통령 후보가 된 자들과 다름 없어진 셈이었다. 교수님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TV토론회 등과 같은 공개 석상에서도 그 논란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결국 그 해 교수님은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밝히자면 교수님의 표리부동 논란이 무르익을 무렵 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대통령 후보를 사퇴했다. 지지선언문에서 교수님은 달봉선생을 염두에 둔 듯 짤막한 소회를 밝혔다.
"저는 아무개 당 아무개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밝히며, 이번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고자 합니다.
……
지난 수 개월 간 겸허한 자세로 국민들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배움이 일천한 탓에 그 방법에 있어 미숙했습니다. 진심을 가지고 국민 여러분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제 노력이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아 침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번 선거가 끝난 후 국민 여러분께서 가지고 계신 그 오해를 풀 수 있는 소통의 자리를 만들 것입니다.
……"
교수님이 지지한 야당 후보는 결국 긴 후보 신분을 떼고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다. 그리고 교수님은 새 정권의 국무총리로 내정되었다. 교수님이 아니 새 정권 총리 내정자가 약속한 소통의 자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 번의 비공개 재판이 있었을 뿐이다. 재판에서 달봉선생은 허위사실 유포를 인정했다. 선생의 유죄 인정은 아주 잠깐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잊혀지고 말았다. '달봉선생', '달봉선생 유죄', '달봉선생 허위 사실 유포'는 자살한 무명 연예인의 이름만큼 빠르게 실시간 검색어 리스트에서 사라져 갔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끄적인 글들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저의 책까지 있다는 것도 이번 조사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컴퓨터가 망가진 지 좀 되었는데 아직 변변한 벌이가 없어 새로 사지 못했거든요."
wanderer18은 달봉선생이 법정을 나오며 마지막으로 한 말을 야구모자를 눌러 쓰고 고개를 숙인 달봉선생의 사진과 함께 자신의 SNS에 담았다. '이게 말이 돼?'라는 촌평과 함께. 세상에는 정말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이 많은걸까, 무슨 말이든 말이 되는 말로 만들 수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