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는 시작
그럼에도 불구하고(또는 그래서) 스스로를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전을 계획합니다. 귀동냥해 얻은 정보들을 주욱 늘어 놓는 것부터 시작하죠. 헬스클럽은 왠지 늘 목록의 가장 앞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재미있을 만한 것들을 골라내니 네댓 가지 쯤 남는군요. 여기까지 하고 나니 졸립니다. 자야죠. 혹시나 잊을까 싶어 메모 앱에 기록해둡니다. 어렵사리 휴대전화 비밀번호 패턴을 격파한 김에 페이스북이나 열어볼까요?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페이스북이 나를 위한 영상 알림을 띄워주는군요. 영화 명장면 몇 편 보고 게임 몇 판 하니 뒷목이 뻐근합니다. 정말 자야지, 도전 목록도 추려 놨는데…… 잠자리에 누우니 내일 아침 회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정수리까지 저려 옵니…… 쿨쿨, 쿠울울……
나이가 들긴 했나 봅니다. 며칠이 하루같이 지나는군요. 메모 앱에 기록해 둔 도전 목록을 꾸역꾸역 꺼냅니다. 잊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죠. 가만있자, 뭐부터 시작할까요? 블로그와 인터넷카페, 유튜브를 뒤져보지요. 이 사람이 이런 몸을 만들기까지, 이만큼의 기교, 현란하기 이를 데 없는 솜씨, 빈틈 없는 지식을 쌓아올리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요? 분명 타고난 듯 싶은데 꾸준히 하면 된답니다. 아…… 아…… 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된답니다. 덜컥 믿자 하니 내겐 시간이 없습니다. 마흔이 코앞인데 좀 더 빠른 방법은 없을까요? 내게는 왜 벼락 같은 영감조차 찾아오지 않는 걸까요? 도전 목록을 다시 살펴봅니다. 아무도 모르는 한숨을 삼킵니다. 나는 대체 지난 마흔 해, 뭘 하고 살았을까, 한이 서립니다. 남들은 그토록 바쁜 와중에 시간을 분으로, 분을 초 단위로 쪼개어 배우고 익히고 연습한다는데, 나는 알량한 월급에만 매달려 있었네 싶습니다.
시작하기에, 완성이나 결과도 아니고 고작 시작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뽐낼 만큼 잘 하는 건 더욱 생각나지 않습니다. 대체 난 사십 년 동안 뭘 하고 살았을까요? 나의 부모는 왜 나를 공부 밖에 할 줄 모르는 놈으로 길렀을까요? 돈 걱정 없는 전문직에 웬만한 운동은 모두 섭렵하고, 그림 실력까지 화가 뺨치는 친구 생각이 납니다. ‘대체 내 사십 년과 그 놈의 사십 년은 어떻게 달랐을까?’ 세상은 공평하지 않으며, 신이 있다면 이럴 수 없습니다. 내 눈 앞에 있지도 않은 놈에게 괜히 주눅 듭니다. 뭘, 어떻게, 얼만큼 준비해야 대체 ‘시작’이란 걸 할 수 있을까요? 남들에게 쉬운 일이 내게만 오면 그렇게 몽니를 부릴까요? 그러고 보니 스스로의 의지로 시작해 본 일이 없군요. 네, 없습니다. 내겐 의지조차, 스스로 대지를 박차고 나갈 힘 조차 없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요? 내 부모는 왜 날 이렇게 길렀을까요? 남은 절반의 삶을 힘차게 시작하기 위해 고작 한 손에 꼽을 정도의 과제 밖에 꺼내지 않았는데, 지난 절반의 삶이 송두리째 벌레 같아 보입니다. 졸음이 쏟아집니다. 물색 없이.
’자고 일어났을 때 정말 벌레가 되어 있으면 어떡하지?’[1]
다행히 벌레는 되지 않았지만 벌레가 되어가는 마음으로 한 동안, 살던 대로 삽니다. 길 가는 사람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면 시원할 것 같은데, 이십 년 지기 친구에게조차 말할 수 없습니다. 배부른 돼지의 헛소리로 들릴 게 뻔하거든요. 내 나이란 게 그렇습니다. 취업 걱정, 결혼 걱정, 살 집 걱정은 덜었으니 힘겨움의 토로는 몰래 다시 씹어 삼켜야 하는 토사물에 지나지 않죠. 나서서 걱정해주는 사람도, 책 한 권, 르포 기사 한 줄 써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순전히 아내가 떠미는 바람에 수영을 시작합니다. 안 될 건 뻔합니다. 어릴 때부터 몇 번이나 배웠지만 아직 이십오 미터 헤엄치면 숨이 멎을 것 같거든요. 안 되었던 건 이번에도 안 될 겁니다. 암요. 아버지도 그랬다니까요. 난 자랑스러운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차가운 건 물이요, 나는 그 위에 뜬 맥주병입니다. 그저 오십 분 시늉만 하기로 하죠 뭐. 시늉만으로는 아무래도 심심하던 차에 옆 줄 할머니가 보이는군요.내가 쭈뼛거리며 입수했을 때부터 삼십 분 넘게 바닥에 발 한 번 딛지 않으십니다. 스무 바퀴는 족히 되었나 봐요. 할머니께 여쭈었습니다.
“스무 바퀴는 된 것 같은데 아휴 어떻게 그렇게 잘 하세요?”
침착한 호흡으로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열아홉 바퀴를 돌 줄 알면 돼요.”
“아, 네. 네?”
“열아홉 바퀴를 돌려면 열여덟 바퀴를 돌 줄 알면 되고.”
할머니는 영법을 바꾸어 다시 벽을 박차고 헤엄쳐 나가십니다.
나는 마음을 바꾸어 다시 목록을 꺼냅니다.
지금까지 제 글쓰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브리핑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몇 바퀴 쯤 돌고 있는 걸까요?
수영이요? 정말 서른아홉 바퀴를 돌고 나니 마흔 바퀴를 돌 수 있더군요.
"함께 읽으면 좋을 나만의 시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변신’의 첫 구절,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