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첫번째

작가의 이야기

by 흰머리 짐승
“전화 왔어요. 갖다줄까?”

“네, 그래주면 고맙지요.”

아내는 내 은인이다. 아내 덕분에 요즘 나는 내년에 쓸 이야기 시놉시스를 정리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영감에 사로잡히면 모르지만 계획대로라면 나는 내년 봄부터 단편집에 더할 두 편의 짧은 이야기와 올해 1권을 낸 장편을 마무리하지 싶다. 다시 얘기하지만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모두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내가 멀쩡한 직장을 관두고 문학청년(사실 나는 이 말을 싫어하여 빈정거릴 때만 쓴다.)으로 돌아갔던 시절부터 작가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돈을 벌고 아이들을 키워냈다. 아내의 이야기를 쓰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위대한 모성애를 그린 작품은 이미 남극을 덮은 눈 결정만큼 많기 때문이다. 칠푼이 짓은 그만두고 전화나 받자.

“박기자네. 아이 박기자님, 아니 아니 박사장님이 어인 일로.”

“나 참 새삼스럽게 인사는. 부탁 하나 들어주셔야겠어요.”

“웬 부탁? 나 비싸요. 잘나가는 작가 선생이라고. 하하. 그나저나 생전 부탁 같은 거 안하는 사람이.”

“한두 달만 여기 좀 맡아줘요. 나 어디 좀 다녀오게.”

박기자, 참 지금은 박사장이지, 어쨌든 박은 또 다른 은인이다. 그이와 알고 지낸지도 벌써 십 년이 다되었다. 박이 기자였던 시절에 나는 박의 신문사 신춘문예로 등단했다(물론 그이가 심사에 참여한 건 아니었다.). 낭만 넘치는 문화부 기자로 날리던 박이 칼럼에 내 응모작을 넘치는 낭만과 애정을 담뿍 담아 소개한 것이 내가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계기였다. 첫 장편을 낸 출판사를 만난 것도 박의 입김이 컸다. 박은 지금 기자가 아니다. 방송에도 나오고 5년 넘도록 주말판 고정 칼럼을 쓰던 그이는 어느 날 갑자기 다 때려치우고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 책방을 차렸다. 사실 주로 번역 일로 밥을 버는데 희한한 거래 시스템과 주인장의 철학, 갖춘 책의 독특함 때문에 책방 또한 유명하여 꽤 잘 먹고 산다. 이미 여행 블로그, 책 읽기 카페, 페이스북 같은 데서는 해운대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되었다. 자, 다시 통화에 집중하자.

“지금 나더러 책장사 하라고? 나 참.”

“별 거 없으니까 걱정 마요. 손님이 책 골라오면 가격 시스템 설명하고 그 내용 써 있는 안내장 한 장 책 안에 넣어서 바코드 찍으면 끝인데 뭐.”

“그런데 이번엔 어딜? 어떤 글쟁이한테 꽂히셨나? 그리고 맡을지 말지는 생각 좀 해봐야 해요”

“독일. 나머지는 다녀와서…… 오케이? 언제까지 내려올 수 있어요? 나 1월 2일에 나가야 해. 뭐 별 건 없지만 그래도 오는 손님 어버버하다가 내쫓을 수 없으니까 며칠 동안 인수인계 해야하거든”

박의 입에서 힘차게 튀어나온 인수인계라는 단어에 잠깐 놀랐다. 낭만에 찬 박도 예전 직업 습관이 남아있구나 하고. 그리고 크게 연연해하지 않을 것 같았던 책방 경영에 애착이 있구나 싶어 한 번 더 놀랐다.

“나 아직 내려간다는 얘기 안 했다고요. 아내랑 상의도……”

“늦어도 28일까지 와요. 어차피 작가님도 몇 달 놀거잖아. 따뜻한 남쪽에서 연말 보내요. 이번엔.”

박은 허를 찔러 내 대답을 결정해 버렸다. 박의 말처럼 나는 이 시기에 두어 달 쯤 쉰다. 작품 구상도 하고 무엇보다 글 쓴다고 나 몰라라 했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박은 그걸 아는 몇 안되는 이 중 하나다. 그이는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만 부탁한다. 아니 기꺼이, 즐겁게, 마음을 다하여 도울 수 있는 건 기가 막히게 안다. 그래서 난 언제부턴가 박이 부탁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들어줘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일로 여기기 시작했다. 부산, 부산이라…… 여름이 아니라면 부산도 괜찮지 싶다. 서울처럼 눈이 많이 내려 미끄러운 것도 아니고 그리 춥지도 않다. 서울 만큼은 아니지만 편의 시설도 빠짐없이 갖추어 시골 놀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해운대 바닷가 스타벅스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카페다. 아내에게 물었다. 내 은인은 또 다른 은인의 요청에 화사하게 웃어 화답했다. 은인들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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