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두번째

작가의 이야기

by 흰머리 짐승

앞에 밝힌 것처럼 박이 책방에 도입한 거래 시스템은 독특하다. 여기저기 여행 다니다가 얻은 아이디어라 했다. 호텔 예약 시스템을 응용했는데 이렇다. 손님이 책방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돈을 낸다. 손님이 치른 책값은 10퍼센트 임차료와 90퍼센트 예치금으로 나뉜다. 일주일 안에 책을 훼손하지 않은 채로 다시 책방에 돌려주면 손님은 90퍼센트 예치금을 돌려받고, 일주일이 지나면 처음에 치른 값으로 책의 소유권을 가진다. 물론 손님이 일주일 안에 읽고(또는 읽지 않고) 돌려준 책은 헌책으로 분류하여 다음 손님이 그 책을 고르면 처음 치러야 할 값이 조금 낮아진다. 역시 박이다. 기가 막히는 시스템 아닌가. 여러 번 읽을 내용이 아니거나 책장에 꽂아둘 필요 없는 책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차라리 도서관이 더 낫지 않느냐고 하면 그럴듯하게 둘러대기는 물론 어렵다. 어쨌든 박의 책방이 부산의 명소로 자리잡은 걸 보면 고전경제학이 전제한 ‘완벽한 합리성을 갖춘 인간’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작가님이 고객에게 설명해야 하는 내용은 대략 이래요. 쉽죠? 어차피 책 옆에 바코드 찍으면 모니터에 다 뜨니까.”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면 어떡하죠?”

내려오기 전에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한 걸 혼잣말처럼 물었는데 박은 무심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오히려 알아보면 매상도 오르고 좋겠구먼. 아 참, 그리고 커피는 저기 저 ‘잠들지 못하는 밤’ 서가 뒤로 돌아가면 내릴 수 있어요.”

여기서 잠깐 박이 ‘물건 떼는’ 취향을 밝혀야겠다. 박은 책이란 우선 쉽게 읽혀야 한다고 했다. 휘이 넘길 수 있는 책 가운데 마음 어딘가에 자신도 모르는 흔적으로 남는 책이 좋은 책이라 했다. 그런 책이야말로 작가의 처절한 고민을 증명하기 때문이라나. 박은 그런 책만 들여 놓고 문학, 과학, 베스트셀러 따위의 기준이 아니라 마음과 연결해 책장을 분류해 놓았다. 이를테면 ‘비 오는 날, 뜻 모를 우울에서 벗어나기’, ‘마주 앉은 연인이 더욱 사랑스러워 보일거에요.’ 같이. 책방이 유명해진 이유에 이런 괴짜 감성도 있지 싶다.

박이 힘주어 말한 인수인계를 얼기설기 끝내고 ‘잠들지 못하는 밤’ 저편에서 커피 두 잔을 내려 마주 앉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구유? 얘기하기 싫으면 말고.”

“다녀와서 얘기한다고 했잖아요. 독일이에요. 거기까지만.”

“나 참, 감질나게시리. 그만 둬요.”

박의 낭만 기질 하일라이트는 이런 때 확실히 보인다. 박은 여러 나라 문학 잡지나 타블로이드 신문(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박의 손에 들어올 정도로 아직도 그렇게 발행 부수가 많을까?)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읽다가 소위 ‘꽂히는’ 콩트나 단편, 만평이 있으면 작가가 어디 있든 찾아내어 작품 몇 개를 받아낸 뒤 번역한다. 번역한 책은 책방에만 꽂아놓는데, 말하자면 전국 어느 서점에서도 살 수 없는 한정판인 셈이다. 박은 그 책들을 보려고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도 있다고 했다. 이 세 가지 독특함이면 요즘 같이 거대 자본이 거의 모든 문화 컨텐츠를 빨아들이는 세상에 작은 책방으로도 먹고 살 수는 있지 싶다. 이야기가 자꾸 샌다. 박의 얘기만 나오면 신명이 솟는 걸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이해하시라. 다시 얘기하지만 박은 내가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게 한 은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요, 작가님 같아요.”

“누가요? 그 독일작가? 얘기 안 한다면서요? 하려면 제대로 좀 얘기해봐요.”

“독일작가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영어로 쓰더라고. 이 사람 콩트나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이 꼭 작가님 ‘K’ 같아요.”

‘K’는 내가 처음으로 출판한 소설집부터 쭉 등장했던 인물이다. 주인공이었던 적은 없다. K는 주인공의 조언자였다. K는 주인공의 변덕에도 끝까지 지지를 보내는 그림자이기도 했다. 주인공은 K의 품에 안기기도 했고, K가 떠난 후 주인공은 울기도 했다. 그런데 독일작가의 주인공이 K와 닮았다고? 그럴 수…… 있지.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박은 말을 이어갔다.

“주인공은 어떤 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아무리 망나니 같아도, 가난해도, 심지어 제 아비를 욕보이기까지 하는데 K, 아니 아니 주인공은 그이 옆에 붙어 있을 수 밖에 없어.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싶었어요. 꼭 작가님 K를 처음 읽었을 때 처럼.”

박은 식은 커피를 물 마시듯 들이킨 후 혹시 내가 끼어들까 급하게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자꾸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가 되는 거 있죠. 왜 기억 나요? 작가님 K를 처음 읽었을 때 내가 퍼부은 거?”

“네? 아…… 네. 아휴, 그 밤에 전화해서는……”

내가 말을 잇자니 박은 다시 꼬리를 잘랐다.

“어찌 그런 여자가 있냐고 내가 그랬잖아요. 주인공이 K에게 뭐랬더라? 아, 맞다. ‘나는 너랑만 자. 다른 애들이랑 놀다가도 밤만 되면 너랑 자고 싶어져. 결단코 나는 너 말고는 밤을 같이 보낸 여자는 없어.’랬나? 무슨 성녀도 아니고.”

십 년 전 얘기를 꺼내면 누구든 무조건 부끄러워진다. 나는 잠자코 들었다.

“이 주인공도 꼭 그 처지야. 연인이 개망나니 짓은 다 하고 다니는데 이 여자는 꿈쩍도 안 해. 몇 달 만에 돌아온 망나니 잠자리에 깨끗한 리넨 시트를 깔아주질 않나, 술에 잔뜩 취해 향수 냄새 범벅인 여자 머플러를 휘감고 와도 욕실을 덥혀 목욕물을 받아주질 않나.”

K든, 독일작가의 주인공이든 왜 항상 기다리는 건 여자여야 하는가? 심수봉 씨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번안하여 현대식으로 편곡하면 빌보드 차트에 오를까?

“그런데요. 결국 이 주인공은 남자를 떠나요. 하얀 리넨에 메모 하나를 남기고. ‘나는 알아.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건 불가능해. 알아. 아는데, 자꾸 그러고 싶어져. 그래서 떠나.’ 하아…… 결국 주인공은 떠나는 순간까지 연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

나는 그제서야 한 마디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런 정서를 공감할까요? 어제의 연인이 아무렇지 않게 오늘의 동료가 되는 세상인데. 남자든 여자든.”

“지금 작가님 자기 캐릭터를 부정하는 거에요? 내가 K 때문에 작가님 스폰서 자청한 거 알아요? 스토리나 메시지 때문이 아니라 K 때문인 거.”

몰랐다. K는 내 이야기에 꼭 필요한 인물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길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K는 내 상상력이 빚어낸 주인공의 날뛰는 감정선과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를 이어주는 닻과 같은 장치인 셈이다.

박이 독일작가에게 이메일을 몇 번 보냈지만 회신은 없었다 했다. 혹시 사기꾼이나 업자(그런데 이런 업자도 있나?)로 오해할까봐 박은 글에 대한 찬사, 책방 주소와 사진까지 붙여 보냈지만 끝내 아무런 대답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헛짓을 거듭하다 어찌어찌하여 작가가 일하는 회사를 알아냈고 박은 거길 무작정 찾아가 기다릴 마음을 먹었다. 박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짓이다. 이튿날, 박은 루프트한자 비행편으로 떠났다. 그런데 아무리 제멋대로인 박이라지만 두 달을 계획하고 떠난 그이가 일주일 후에 돌아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며칠 사이에 부산에서 벌어진 일은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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