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세번째

작가의 이야기

by 흰머리 짐승
“자기야, 우리 내일 가요. 부산역 한 시 도착이야. 짐이 많으니까 승강장까지 내려와줘야 해.”

“오케이, 그래야지. 두 마리에 짐까지 많으면 힘들겠다.”

“뭐 어떻게든 갈 수 있을거야. 걱정 마요. 아이패드에 만화 잔뜩 넣어놨으니 괜찮을거야.”

아내는 바로 이 정신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뭐 어떻게든.’ 결혼해 얼마 지나지 않아 글을 써야겠다고 했더니 아내는 ‘나 사기 결혼 당한거야? 전도 유망한 청년인 줄 알았더니 현실 감각 전혀 없는 돈키호테였네.’라며 구운 인절미 몇 개를 내 입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오늘 자기가 한 말 주워담을 생각 마. 또 자기가 잘팔리는 소설가가 될 때까지 집은 못 사. 알았지?’ 그러더니 입안 가득한 인절미의 텁텁함 때문에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나의 손을 잡고 담담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얼마 뒤부터 생활비, 내 점심값과 커피값(작업실은 언감생심이어서 한동안 매일 스타벅스로 출근했다.)을 벌기 시작했다. 아내는 ‘뭐 어떻게든’ 가족의 울타리를 지켜갔다.

박이 떠난 지 며칠이 지났다. 휴가이니 날짜에 예민하게 굴 필요 없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레지던스 호텔에서 일어나 책방으로 출근했다. 하룻밤에 이십만 원이 넘는(물론 장기 투숙으로 할인을 받긴 했다.) 레지던스 호텔이라니,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 호사다. 책방 앞에 도착하여 지난 밤 손님들이 문 밖 수거함에 밀어 넣은 책들의 바코드를 찍어 예치금 환불을 마친 뒤, 프렌치프레스로 만든 커피 한 잔과 머핀을 데워 아침을 먹었다. 손님이 끊이지는 않았다. ‘파리 날리는’과 ‘발 디딜 틈 없는’의 중간쯤? 손님이 들어와도 눈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야 어차피 직무 태만 박의 바지 사장 격이니 책임감 따윈 접었다. 박이 전달하라 했던 거래 시스템을 대강 설명하고 손님과 POS(Point Of Sales, 판매 정보 관리 시스템) 사이의 연결만 도우면 바지 사장의 역할은 다한 것이니 나는 계산대에 앉아 주로 책을 읽었다. 좀 더 지나 손님의 들고 남에 익숙해지면 겨울 바다를 산책할 시간도 있으리라 상상하니 산뜻했다. 가만 있자, 문 닫으려면 한 시간 쯤 남았으니 읽던 책이나 마저 읽어야지. ‘그리운 날, 그리운 시간’ 책장에서 뽑은 에세이집. 아무리 남쪽 나라 부산이라도 겨울의 해는 짧아 벌써 어둑하다. 믿을 수 없이 빠른 시간은 새 직장 효과다. ’터억, 쾅’ 책방 문 여닫는 소리에도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저기……”

“아, 네. 어서 오세요.”

나는 무심히 읽던 책을 내려놓고 바코드 인식기를 집어든 뒤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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